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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파괴자들 - 학교를 배신하고 열정을 찾은
정선주 지음 / 프롬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학교에 대한 새로운 생각
:::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다수는 학교는 꼭 다녀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배우고 잘 해야 한다는 것을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식이 자신의 창의력을 죽이고 재능을 펼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도 모른채.. (16쪽)
학교 밖으로, 를 외치며 저자는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학교에 관한 인식에, 어쩌면 새롭지 않을지도 모를, 학교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 이 책에 관심을 갖거나 읽어 보려고 손을 뻗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이미 학교 교육에 대해 의심이나 환멸, 의문이 조금은 있어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정형화 그 자체, 칠판에 써 놓은 정보나 지식을 노트에 베끼고 외우고 꼭 그만큼만 시험을 내고 맞추는, 어찌 보면 로봇 양성소와 같은 천편 일률적인 방식이 바로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유학을 했거나 글자 깨나 읽었다던 지식인 이라는 사람이 선생이 되고 제자를 길러내면 그 고정적인 방식으로 그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그것으로 계속 이어 내려져 왔던 것이다. 그렇게 한 세대 뒤쳐져 있는 교육에 따라 가기 싫어도 발 맞추며 따라가 주어야 하는 구조, 언제까지 이렇게 이어져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끊기지도 않을, 변하지도 않을 대열에서 이탈자가 보이고 있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던, 어린 학생들이 학교 시스템의 느린 구조와 집단 교육 방식에 맞추기를 거부하고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된 사례들이 바로 그것이다. 수학, 과학, 언어 분야 혹은 창의력 부분에서 뛰어나고 독특한 사고를 지닌 학생들이 너무 많은 질문들을 학교에서 해 보았자 제대로 답을 구할 수도 없고, 늘 같은 방식에 흥미를 잃은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우리 처럼 " 남들 하는 만큼, 남들 따라 해야" 하는 사회에서 대열 이탈의 문제는 두려움과 조바심 때문에라도 불안에 떨게 되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용감한 결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은 현상 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이긴 하나 이런 발전적인 결단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서 결국은 변화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방법이었고 뻔한 결과를 보인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남들이 하고 있는데 어찌, 라고 하면서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경향,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 둘 시작해서 남다른 결과를 보이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이 책, 학력 파괴자들의 출현은 좀 더 일찍 나왔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은 이미 그런 사람들이 많고 정형화된 틀 에서 벗어난, 남 따라 하지 않은 유별난 사람들이 꽤 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졸업장을 가져서, 특정 직업군의 무리에 합류해서 꼭 그 길 만이 행복한 것 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기준은 내가 만든다. (4 장 소제목)
자기 만의 삶을 완벽하게 스스로 설계해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설렘을 안겨준 소개였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무어의 소개, 그 밖에 학교의 지루함을 못 견디고 뛰어 나와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실예는 학교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반기를 든 셈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개혁을 위한 반기, 자기 주장을 하고자 하는 용기와 자신감이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 속의 16 세기, 조광조 사건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젊고 영특한 인재의 개혁 의지는 기존 질서와 벽에 부딪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꺾이운다. 장벽이 너무나 높았다는 사실만 일깨울 뿐이다. 조광조 본인 조차도 옥 안에서 왜?, 라고 물으며 어리둥절해 했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하니 반기와 강한 자기 주장에 대해 가히, 모난 돌 정 맞은 꼴 이 되었던 순간도 있었다.
이에 반해 무어 감독, 그야말로 종횡무진 했었던 모양새를 보여준다. 비리, 부패, 사회적인 문제의 고발을 언론 매체를 통해, 영화 제작을 통해 설쳐 대고 들쑤셔 대었음에도 그의 신변에는 무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작용했던, 자유의 힘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어떤 결과가, 어떤 사회적인 파장이 있었을까? 학원, 학교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시를 지었던 초등학생,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았었다. 그 아이는 시, 라는 문학적 도구로써 사회적인 고충과 애로점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었는데 윤리, 도덕, 가정 문제로까지 파고들어 가며 한 동안 그 가족들에게 따가운 시선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남 과는 다른 시선, 다른 방식들을 돌봐 주고 고려해 볼 줄 아는 관중들의 시선도 아직은 틀 속에 박혀 있어서 똑바로 생각해 볼 줄 아는 정신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멀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수행하는 자, 바라 봐 주는 자, 모두 틀 속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저자는, <왜 중퇴자들을 주목하는가?> 에서 지금의 학교가 놓치고 있는 것과 미래에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를 고찰하게 했다.
세계의 유명한 중퇴자들을 통해서 오늘의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부분 중의 하나로써 <학력파괴자들>의 일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