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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로 가는 길 - 이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영적 가르침
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14년 11월
평점 :
지하드, 성전.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 테러 사건 뉴스를 접하면, 신의 이름아래 벌이는 폭탄 테러 사건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어떤 종교이기에, 무슨 권력과 힘이 그리도 세어서,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리는 차 앞에
우뚝 설 수 있듯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서 자신의 신과 이념을 위해서 영혼없는 로보트(Robot)들 처럼 사건, 사고들을
그렇게 쉽사리 자행하며, 세상을 경악하게 할 수 있을까, 무서웠다.
뇌가 없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힘이 그들을 그토록 목숨까지 내 버릴 정도로 크고 셀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지배적 이었다.
이슬람은 이렇게 오해와 무지로 인해, 잘 알지 못하는 종교앞에서 무조건적으로, 발생된 사건의 결과물만으로써 판단되어지는,
무지막지한, 인간답지 못한 종교로써, 최소한 무서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오해와 의문으로 장막을 둘러치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만은, 그랬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구의 끊이지 않는 영토 분쟁을 일으킬 때에도 도대체 저기에는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
-했었다. 그들 만의 뿌리 깊이 박혀있는 원한의 가시가 대체 무엇인지를.
p114
어떻게 유대 민족처럼 창의적이고 지적인 민족이 시온주의와 아랍의 갈등을 그토록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을까?
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국 아랍과의 우호적이 협력이 수반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음을 모르는가?
종교도 역사도 한 두 개의 실마리로 실타래가 풀려지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어떤 종류의 책이 도움이 될 지 선뜻 손 내밀기에도 여의치 않았고, 가볍게 풀이한 책은 시간의 효율성에는 플러스(plus) 가
되어질 지 모르겠으나 결국 그 지루하고 장황한 역사와 종교의 뿌리를 쉽게 이해할 수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의 골짜기가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나의 깊은 골짜기에 적어도, 작은 출발점이 되어 줄 책을 만났다.
<메카로 가는 길>, 유럽에서 나고 자란 오스트리아인, 무함마드 아사드가 바로 그 반가운 책이었다.
이 책을 난, 우여곡절 끝에 음미하게 된 경우이다. 첫 번 째 기회에서는 아쉽게도 닿지가 않았고, 우연히 도서관 책꽂이
맨 아래칸 자리에서 누군가가 몰래 책 들 위헤 살짝 얹어 놓은 것을 발견하고야 만다. 밑줄도 긋고 마음대로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었으나 기한이 정해진, 돌려줘야 할 책이었다. 그러다가 세 번 째 기회가 닿았다.
시간을 두고서 곱씹어 보아도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가 처음으로 모험을 강행해 볼 수 있는, 광활하고 뜨거운
햇살 아래의 사막을 횡단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혹시, 이슬람 종교에 국한해서 종교를 설명한다거나 심히 종교적일 뿐 이다 거나 경전인 코란을 읽고 해석하는 책이
아닐까 라고 기대하거나 원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한 형제들처럼 소중히 아끼며 여행자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던 이슬람 속 부족 사람들, 삭막한 모래 폭풍 속의
건조함 만이 사방천지인, 한 우물 안의 물을 함께 나눠 마시던, 낙타 등에 매 달 물 푸대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나며.
부족들간의 각자들만의 특색은 있지만 메카를 향해, 그 곳 만을 생각하고 오직 한 곳으로만 향해 있던 사람들......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하며 동행하던 자이드 와 길 안내인들, 타는 듯한 사막 속에서 죽을 고비도 넘기기도 했고, 메카에
함께 닿았었던 여행에서는 아내마저도 잃었던 저자, 진솔했고 탁월했던, 프랑크푸르터 자이퉁 소속의 특파원.
부족들 간의 세력 다툼과 영국, 이탈리아 등의 외세의 압력, 샤우드 왕가와의 친밀한 교류, 서서히 동화 되어 가던 이슬람......
저자가 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두 문화를 바라 보면서 어디서 잘 못 되었는지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어느 한 쪽이 우세하고 다른 한 쪽은 열등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 물질 문명의 발달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또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p121 - p122
서서히, 끈질기게 거리를 좁혀오는 저 서구의 손길 앞에서 자이드나 자이드의 동족이 얼마동안이나 영혼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막도 밀려드는 서구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다. 과연 이슬람 세계는 서구의 영향력에 밀려 전통의 틀 뿐만 아니라
영적 근원마저 잃게 될까?
이렇듯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저자의 시선은 이슬람 문화에서 영적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p261
갑자기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기차가 철도 위를 요란하게 달리는 소리. 아직은 상상하는 단계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
있는 소리다. 영국은 인도로 가는 육로 확보를 위해 철도를 건설한다는 구상을 세워 놓고 있었다. 지중해 연안부터 페르시아
만까지 철도가 건설되면 제국 통치에 필수적인 교통망이 형성된다.
저자가 이슬람 세계를 보고 들으며 여행할 그 시기는 1920년 - 1930 년대... 마치 우리네 구한말 열강 속에서, 러시아, 청나라,
일본, 미국등에 둘러싸여 몸부림 치던 바로 그것과 유사하게 오버 랩 되는 순간이었다.
이 외에도 저자의 모험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슬람 세계에 분열을 가져온 수니파 와 시아파 의 갈림길, 이 책을 통해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 프랑스가 점령하면서 깨진 평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지하드,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을 했다는 말도......
그리고, p 367
이슬람을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던 바로 그 순간,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데 조금씩 그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적어도 내게 있어 종교를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같은 신념을 품은 사람들과 이슬람이라는 여로를 함께
걸으면서 내가 선택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협력한다는 뜻이었다.
이슬람은 살아가는 방식이지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마르의 게릴라 전사들은 1300 년 전 예언자의 동료들이 그랬듯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자유롭게 추구하고자 땅에 피를 흩뿌리며 항쟁하고 있었다. 악전고투하는 그들을 돕는 것은
내게 기도를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이슬람에 대한 표현이 감동적이었다.
이 책으로 이슬람 세계의 배경과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