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이야기
로이드 모츠 외 지음, 차동우 외 옮김 / 전파과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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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음악을 배울때는 모차르트의 교향굑 41번 '쥬피터' 라든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작품과 그 저자를 한데 묶어서 배운다. 그래서 작품은 모를지언정 바흐라든가 베토벤이라든가 슈베르트 같은 이름들은 익숙해지는 것 같다. 나는 과학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러데이와 맥스웰, 톰슨을 모르고 전자기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길을 돌아돌아 가는 것이다.  헤르츠를 알아야 전파를 이해할 것이고 뉴턴을 알아야 고전물리를 자기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다시 또 읽게 된 것은 중3 아들의 과학 1단원이 전기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축전기와 저항, 전류, 정전기의 대전현상 같은 것으로 시작해서 전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과서의 설명과 실험만으로는 전기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과학 선행이 되어있지도 않고 평소에 과학 서적을 읽지도 않았던 아들은 요즘 말로 1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1780년대 이탈리아의 과학자 볼타에 의해 전류의 흐름이 발견되었고 전류에 대한 연구와 전지를 만드는 기술연구가 뒤따랐다. 그후 페러데이에 의해 전자기 유도현상이 발견되었고 맥스웰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합하였다. 헤르츠는 전기가 파동을 만드는 것을 실험으로 밝혔으며 이것은 전파공학의 시작을 알렸다. 1899년 톰슨에 의해 전자가 발견되었고 그 이후로 전자의 성질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기의 힘을 인간이 이렇게 쓸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여러 유명한 천재 과학자들에 의해 물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은 거의 이시기에 만들어졌다. 길어야 200년 정도의 역사인데 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1993년에 산 이책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옆에두고 궁금한 부분을 찾아 읽기에 정말 좋다. 이번에 세번째 읽는 것인데 빈 곳이 채워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이해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물리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 방법으로써 음악작품이나 미술작품을 배우듯이 각각 물리학자들의 생애와 그들의 업적을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 학교에서 채택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입시용교육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궁금증을 갖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이제 25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물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다.

대학때 물리를 지지리도 못했는데 다시 한다면 그때보다는 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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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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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언급된 작품은 거의 백편이 넘을 것 같다.

 하나하나의 글이 아름답기 때문에 감동하고 넘어가다보면 나중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아 후반부 부터는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작품과 구절이 있는 쪽수를 메모하며 읽었다.

 그중 194p에는 정전이 된 어느 밤 오빠의 등에 엎혀 초를 사러가며 보았던 하늘의 은하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유독 밤을 좋아한다. 특히 12월의 그 깜깜하고 촉촉한 밤이 좋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중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조지 윈스턴의 December는 12월 뿐만이 아니라 밤의 신비속으로 빠지고 싶을 때 즐겨들었던 음악이다. 중학교때 처음 접한뒤로 나를 그 시절의 그 느낌, 그 생생한 차가움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음악이 되었다.

 최근 몇년간 December를 잊고 살았는데 194쪽의 은하수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그 생생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234p 에는 까뮈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 별들이 드리운 밤을 눈앞에 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이 구절도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정말 별과 깜깜한 밤을 좋아하는가보다.

 314에는 희귀한 불치병으로 꼼짝없이 누워지내야 하는 한 환자의 '소망'이라는 시가 수록되었다.

그 시의 한구절이 너무 슬펐다.

 

   " ...하느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책을 읽은후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에게 책을 읽는 것은 여행이고 자유였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곳,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의 언젠가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들의 정신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의 고독을 대하는 의연함과 슬픔을 이겨내는 담대함을 배웠다. 진주조개같이 삶을 진주로 만드는 법을 배워온것 같다.

 

 요즘은 문학작품을 잘 읽지 못한다.

 아이들 숙제로 내주는 책을 같이 읽는 정도로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중3 아들의 국어 수행 과제로 나온 책이다. 

 삶이 너무 궁금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설레고 그래서 가슴이 터질것 같던 젊은 날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 오히려 감성이 안정되니 요즘은 과학이나 수학, 역사 같은 지식위주의 책이 더 재미있다. 그래도  명작동화 전집을 한권씩 뽑아 읽으며 잠들었던 초등시절, 한권에 천원하던 글방문고를 사모으는 재미로 고전을 읽던 중학교시절,  공부에 치여지낸 20대를 지나고 굶주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던 30대까지... 문학이 없었다면 나는 살 수 있었을까?

 

 고 장영희 교수님의 이 책에 대해 더 많은 감상을 써야하는데 나는 내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이 열리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한 사람임을 느끼게 되어서인것 같다. 예전에 책을 좋아하던 한 여자아이는 마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서로 만날 수도 없는 소설속 사람들 혹은 문학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터질것 같고 눈이 시큰해진다.  이런 감정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지 장영희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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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개정판 ㅣ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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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중3 아들의 수학 수행평가로 학교에서 정해준 책이다.

 책이 배달되고 아들은 관심이 없고 또 내가 먼저 책 구경을 시작했다.

 책의 두께와 제목을 보았을때 이 책을 다 읽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하루밤 지나면서 책을 마칠 수 있었다.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새벽에 너무 졸려 끝을 보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국이 푹 끓을 동안 책을 다시 잡을 정도였다. 물론 이 책에 나와있는 수학적인 내용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한편의 영화나 소설을 보는 듯 흥미진진했다.

 페르마라는 17세기의 천재 수학자가 던진 문제를 풀기위해 300년이 넘는 동안 많은 수학천재들이 도전하는 이야기들과 수학이 발전하는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주인공은 물론 앤드루라는 영국 출신의 수학자이다. 그는 10살에 도서관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접했고 운명처럼 자신이 풀어야할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뒤 30년동안 그는 혼자서 간직한 도전을 완성하기 위해 고독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현대수학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지식들이 나타나고 그것을 100페이지가 넘는 논문속에 통합시키며 결국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다.

 페르마의 정리는 1993년부터 1994년에 걸쳐 증명되었다.

 수학은 겉으로보면 너무 냉정하고 딱딱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참 아름다운 학문인것 같다.

 이 책에서도 수학의 우아함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계산이 복잡해지고 컴퓨터가 진화해감에 따라 컴퓨터가 공리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하니 수학자의 열정과 수학의 아름다움은 이제 박물관에 남겨진 유물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주말에 무한대를 본 사나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것은 20세기 초의 라마누잔이라는 인도의 수학자에 대한 것이었다. 수학은 나의 지력으로 이해하기 너무 어렵지만 진리에 가장 가까이 간 것 같아서 경외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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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 채만식 장편소설 ㅣ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1
채만식 지음, 이주형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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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사회상은 착찹하다. 자본을 조금이라도 쥔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더 불리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없는 사람들은 자본에 매여 모든걸 다 빼앗기고마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영감탱이들이 남의 집 귀한 어린딸을 유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일어났고 열 살이 조금 넘는 아이들을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도 그래도 있었다.  돈이 있는 집의 아이들은 일본이나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돌아오지만 그들을 써줄 나라가 없다. 그들은 일본에 굽히고 들어가 관리라도 하나 해보든가 아니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 볼 수 있지만 집에 돈이 있다면 이러저러하다 주색잡기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사회주의도 하나의 중요한 운동이었고 여기에 몸담는 지식인들도 많았다. 봉건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가 온통 뒤섞여있는 혼란의 시대가 일제식민지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채만식은 여러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외면하지 않으려했고 그것을 이 책에서는 풍자라는 형식으로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채만식은 지식인이 사회와 역사인식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주요한 비판대상은 자신의 동물적 욕구만을 채우려고 하는 윤직원이라는 영감이다. 그는 일제가 자신을 재산을 지켜주기에 좋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런 세상이 태평천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증손자와 동갑인 어린 기생을 탐하는 것에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며 타고온 인력거꾼에게 삯을 지불하는것에도 아깝다고 느낄만큼 덕이 없는 인물이다. 그의 자식과 손주들은 주색잡기에 빠져 살고 있으며 누구하나 나라 걱정을 하거나 주변의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다.  채만식은 그러한 행태를 비판하며 물질적이고 동물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서 생각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라고 촉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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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 염상섭 장편소설 ㅣ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
염상섭 지음, 정호웅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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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분량이 많다. 당연히 등장인물도 많다.

 작가는 그들 하나하나를 생생한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건들은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 처럼 상상이 되고 그들의 목소리도 실생활에서든 영화에서든 한번쯤은 들어본 것 같이 들려온다.

 작가가 그들을 바라보는 감정은 연민같다.

 만세전의 이인화나 삼대의 조덕기 같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편안하게 성장했기 때문인지 염상섭의 작품에는 극단적인 분노나 울분가 보이지 않는다.

 염상섭은 그 시대의 두 부류였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친일과 항일에 있어서도 염상섭은 중립적이었을 것 같다. 그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해방후 서라벌예대의 학장이 되었어도 그는 출근하는 날 보다는 집에 칩거하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살림도 넉넉하지 않아 상으로 받은 시계를 팔아야할 정도 였다고 한다. 지식인의 곤궁한 삶에 대해서는 '두파산'에 잘 나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토마스만이 떠올랐다. 그 역시 독일의 문학가로 형인 하인리히 만이 사회문제에 적극적이었던 것에 반해 그것을 예술로 형상화하기 노력했다.

 나는 소설의 목적 또한 다른 예술분야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술성의 추구이다.

예술성이란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담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화해시켜 개인적 차원의 완전함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때 염상섭의 작품은 목표에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나 감정은 사실 언어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이나 미술이 그런 정동을 표현하기에는 더 쉬운 수단인것 같다. 언어는 이성의 활동으로 여겨졌었다. 이성의 힘으로 비이성적인 것까지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소설을 누구나 쓸수는 있지만 걸작이 나오기란 확률적으로도 매우 적다. 그만큼 고된 작업일것이다.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고 마음과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면 그것은 소설이 제 할 몫을 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염상섭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 분명한 생기는 그가 뛰어난 소설가이며 예술가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염상섭은 진정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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