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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느리고 머뭇거리는 호흡의 문체 덕분에 숨차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느릿느릿 잡아끄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내게는 너무나 낯선 공단의 주변을 걸었고 시골의 엄마가 해주는 밥상머리, 밀물과 썰물이 오고가는 바닷가, 그리고 한번도 직접 들여다본적이 없는 우물 곁에 가보았다.
글자를 깨우치면서부터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서정이니 서사니 하는 말들의 의미를 명확히 가르지 못하는 나이다.
그럼에도 편하게 빠져들수 있는 책과 너무 숨이차서 도저히 따라잡을수 없는 책은 구별해 낼 수 있다.
가끔은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나 흘러넘쳐, 나는 멀뚱히 그의( 혹은 그녀의) 도취된 상태를 바라보고만 있을때도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인 경험을 자기 감정을 담뿍 담아 풀어놓는 작가들의 글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읽고난 지금 나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성적이라는 것이다.
100%여성적..
어떻게 이렇게 공격성이 없을까..
어떻게 이렇게 삶에 밀접하게 닿아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연약한가..
어떻게 이렇게 투명한가..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러운가..
어떻게 이렇게 꾸밈이 없는가..
어떻게 이렇게 진실한가..
여성성의 본질은 이런것이구나..
나는 여성이라하지 않고 여성성이라 표현했다.
여성성이란 여자에게 깃들어있을수도 혹은 그 반대의 성에 내려 앉았을 수도 있다.
호전적이고 공격적이며 뭔가 일을 벌여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남성성에 밀려 어딘가에 쳐박혀있던 여성성이, 김치가 익으면서 생긴 기포가 밀폐용기의 단단한 뚜껑을 밀어올려 김치국물을 흘려보내듯,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그 존재를 알리려한다.
그 여성성이 있기에 세상은 안정이 되며 아이들은 자라나고 우리의 고단한 마음은 위로를 받는다.
살림하는 손에 깃들여진 그 여성성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시대의 그런 부름을 타고났을지도..
우리의 엄마에게.. 우리의 땅에.. 우리의 가족에게 우리를 데려다 주려고..
신경숙은 그 안의 가장 순수하고 정직하며 마음이 열려있는 열여섯의 그녀를 불러냈다.
눈물이 날것같다.
왜그런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내안의 여성이 이제야 그 존재를 인정받고 기뻐하며 그동안 참아온 서러움을 눈물에 담으려 하나보다.
강한것, 큰것, 움직이는것, 명령하는 것, 변화하는 것, 앞으로 나가가는것만이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그 반대의 것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이젠 인정할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