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칠세기 중엽에 플랑드르의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서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로 이주했는데, 도착했을 때는 마침 그 도시가 다시 발생한 역병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던 참이었다. 섬세하고 세련된 취향에도 불구하고, 반 다이크는 남아서 공포를 자신의 주제로 삼았다. 많은 예술가에게 죽음의 광경은 통과 의례이자 인간 생명의 치명적 취약성에 대한 맹렬한 교육이며 영혼의 덧없는 일시성을 들여다보는 창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죽음은 상이었다. 죽음은 니콜라 푸생의 풍경과 오귀스트 로댕의 인물들 뒤에 있다. 죽음은 단테와 베케트 안에 있다. 하지만 아마 카라바조보다 더 흑사병의 심리적 영향을 교묘하게 휘두르며 그처럼 유익하고 창의적으로, 또 그처럼 집요하게 사용한 예술가도 달리 없을 것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 가진 힘은 다윗이 일시적인 승리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 죽음을 뒤따를 것을 안다는 사실에서 얼마간 기인한다. - P128

나는 시에나에서 아직 뭐라 표현할 말은 없으나 지금껏 찾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잘 공명될 시점에 그것이 당도하기도 했다. […] 내가 시에나에, 너무도 단호히 시작되고 끝나는 이 도시에 온 것이 그런 때였다. 나는 매일 도시의 경계까지 걸었다. 북으로, 남으로, 동으로, 서로. 나 자신의 한계를 더듬는 듯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시에나는 너무 다채로우면서도 한결같고 너무 작으면서도 무진장해서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하나의 알레고리 또는 마음의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스쳐가는 모든 영향력과 펼쳐지는 모든 날과 더불어 변화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상이기에, 소박하고 특별하지만 결코 완전히 알 수는 없는, 도시로서의 자아였다. - P132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한 발자국씩 불에 다가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불은 따뜻하고 유쾌했지만, 어째선지 나는 알고 있었다. 불은 나를 소멸시킬 수 있었다. 나는 침묵의 나날 속에서 어쩌면 그것이 불의 진정한 욕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134

나는 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었다. 연마한 스테인리스 스틸에 기타를 연주하는 여성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판화 <터키식 목욕탕>이었다. 여성은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다. 피부는 따스한 색조로 채색됐다. 엉덩이 위쪽에 두 군데 오목하게 팬 자국이 기분 좋게 에로틱하다. 형태를 보아서는 고대의 유물인 듯하지만, 여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왼쪽 허벅지를 보면, 자주 빨지 않아서인지 누르스름해진 흰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데, 그 부분이 유일하게 무언가를 걸치고 있는 부위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알 수 없는 화음을 연주하며 기타의 목을 짚은 손과 손목을 제외하면, 여자는 어느 시대 사람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 P140

나는 무엇이 여자의 손과 손목을 동시대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걸까 의문을 품었다. 제 음악의 효과에 자신이 없거나 아니면 누가 들을까 싶어 걱정하기 때문인지, 여자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다. 왼쪽 가슴은 기타 뒷면에 눌렸다. 이제 막 연주를 시작하는 참이라는 걸 의미하는 듯한 등의 곡선을 헤아리며, 나는 윤을 낸 그 나무판이 처음엔 차갑게 느껴졌을지,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그럴지 궁금했다. - P142

"아, 하지만 내 일생을 세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어. 너무 길어. 적당히 꾸며내야 해. 난 꾸며낸 삶을 정말 좋아하거든."
" 저도 그래요."
"내 개들은 어때?" 그이가 로시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개는 우리가 늙어 간다는 걸 모르니까, 멋지지. 우리가 흉해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개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존재라고 생각해." - P143

죽은 자들에게 살아 있는 자들을 기억한다는 건, 영혼이 육체였을 때 알았던 이들을 여전히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궁금했다. 성인 같은 이들은 천사들의 영접을 받는다. 그들은 재회조차 성직자답다. 그러고는 시에나 공동묘지에 함께 묻힌 부부들 같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남자들 과 여자들이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의 손을 맞잡고 그저 그 눈을 오랫동안, 아니 아마도 영원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방법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 다. - P154

하단 오른 쪽에 있는 쌍만이 제삼의 인물, 더 나이 든 인물을 만류하는 듯한 젊은 수녀를 동반하고 있다. 젊은 수녀는 다가오는 수도사와 인사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려는 듯이 더 나이 든 자신을 팔로 감싸고 있다. 이들이 멀리서만 사랑할 수 있었던 연인,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일 수도 있을까? […] 나는 디 파올로가 그들의 편지를 읽었고, 편지 쓰기를 ‘질병‘이라 주장하며 편지를 쓰지 말라고 요 구했던 아벨라르의 절박한 탄원을 알고 있었으리라 확신했다. 반면에 엘로이즈는 관습에 대한 위반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타남과 사라짐에 관심을 가졌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이 가까이 있을 때보다 아주 멀리 있을 때 그들의 그림을 더 아낍니다. 부재하는 친구들의 초상화를 보는 것이 즐겁다면 (…) 편지는 얼마나 더 즐겁겠나요." 그리고 그에게 요구할 때, 그녀는 놀랄 정도로 탐욕스럽다. "당신에 관한 모든 걸 낱낱이 알려 주세요." - P154

여기서 디 파올로는 진정한 지옥이란 불의 지옥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 알아봐지지 못하는 지옥이라 생각 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기를, 그로 인해 우리 기억의 힘을 재발견하고, 마침내는 의도와 표현 사이, 감추어진 감정과 그 외적 형태 사이에 놓인 위안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그 그림은 이걸 안다. 그 그림은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알아봐지는 것임을 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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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땅이 발을 받쳐 들고 돌아왔다. 금빛으로 석양이 물들었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투박하게 빛나는 빛 속에 일고여덟 냥쯤 되는 막대가 차곡차곡 빽빽하게 쌓였다. 아이의 발이 석양 속에서 춤을 추었다. 온기가 발을 파고들고 가슴과 배까지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온기에 부딪혔다. 온기가 사람들을 옥죄었다. 위신구의 집, 오래된 푸른 벽돌과 기와, 켜켜이 세월을 쌓은 혼돈의 빛이 광야에서 처음을 맞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빛이 좋아서 신은 밝음과 어둠을 가르고 밝음은 낮이라, 어둠은 밤이라 불렀다. 저녁이 생기고 아침이 생겼다. 그렇게 갈라졌다. 어둠이 오기 직전은 황혼이라 불렀다. 황혼은 참 좋았다. 닭은 횃대에 오르고 양은 우리로 돌아갔으며 소는 쟁기를 벗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멈추었다. - P13

사람들은 땅에 흩어져 있었다. 하늘에 새가 날아다녔다. 멀리 황허에서 비릿한 물비린내가 풍겨왔다. 새로 갈아엎은 밭이 햇빛 아래서 황적색으로 반짝거렸다. 대지에서 내뿜는 천년 묵은 온기와 향내가 비단처럼 나부끼고 연기처럼 빛 속에 흩날렸다. 땅 위의 사람들이 노곤함에 쪼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 P21

사람들이 낡은 신발을 버리듯 책을 가져왔다. 모두들 한 권, 혹은 몇 권씩 책 더미에 던졌다. 책 더미가 높아졌다. 태양도 높아졌다. 책 더미가 커지자 태양도 커졌다. 책 더미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누렇게 바랜 빛깔이 가을 들녘의 숨결에 섞여 떠다녔다. 책 더미가 그렇게 자꾸 높아졌다. 책 더미가 그렇게 자꾸 산 구룽만큼 높아졌다. - P36

"문학적 성과가 매우 뛰어나더이다. 그러니 교화 지구에서 인민을 위한 진정한 혁명 문학작품을 써주시오." 성도를 떠나던 날 나를 뽑은 부서 동료들이 전부 배웅을 나와서 입을 모았다. 당신은 스스로의 명예와 성과, 명성으로 개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 당신 가족과 아이, 친구는 우리가 잘 돌보겠습니다. - P43

모두들 죄를 짓고 말았다. 모두의 죄란 무당 600근을 생산할 수 없다고 단정한 거였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모래가 돌이 되고 미풍이 폭우가 되고 말았다. - P48

말라버린 우물처럼 밤이 깊은 지 오래였다. 달이 머리 꼭대기에서 허공에 맺힌 얼음처럼 냉랭한 기운을 내뿜으며 하얗게 빛났다. 방에서 들리는 피곤에 전 코골이 소리가 비 오는 날 흙길에 생긴 진창처럼 누렇게 질퍽거렸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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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집단 매장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기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집단 매장이 흔하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집단 매장이 편의주의적 발상인 것은 분명하다. […] 하지만 다량의 시체 안치 또는 처리의 역사는 어째선지 땅을 선호해 왔다. 아마 거기엔 단순한 편의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리라. 어쩌면 그 단어 자체가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묻기‘는 부정하기, 무언가가 사라지도록 애쓰기이니까. 한 개인은 존엄한 장례와 멋진 묘석으로 기려질 수 있겠지만, 스물이나 백 같은 큰 숫자가 개입된다면, 또는 1996년 6월 29일 카다피 독재 정권의 명령에 따라 불과 몇 분 사이에 천이백칠십 명의 정치범이 처형당한 뒤, 쓰러진 바로 그 자리, 교도소 땅에 묻힌 트리폴리의 아부 살림 교도소 같은 경우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집단 매장 행위는 적어도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목적, 즉 증거를 보이지 않게 만들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증거를 한곳에 모음으로써 더 유효하게 만들고 그 성취의 규모를 증대시키려는 목적의 달성에도 관련된다. 그리고 아마 그 순간 생존자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마음속에서 취약하나마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 도덕성 같은 것은 서로 얽힌 채 쌓인 그 무질서한 시체들이 적어도 홀로 깊은 곳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서 기묘한 위안을 받으리라. - P124

유럽에서 일부는 정말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갑작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역병의 지배는 신이 선하지도 자비롭지도 않다는 최종적인 증거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얻을 수 있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쾌락을 생에서 얻겠다"고 맹세하면서 투키디데스를 안내인으로 내세웠다. 그들은 술에 취해 필요한 것을 훔치고 절제 없이 마구잡이로 사통했다. 런던의 어느 보고자는 "한 집에서 죽음의 격통 아래 울부짖는 소리와 바로 옆에서 술을 퍼마시고 창녀와 관계하며 신에 대한 불경을 지껄이는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고 썼다. 여기서부터 유럽의 기독교 세계와 문화는 바뀌었다. 마치 유럽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내내 죽음의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듯했다. 유럽은 그 깨달음이 예술로 표현되기를 원했다. 유럽은 망각을 두려워했다. 유럽은 그 공포를 믿었고, 그 공포를 소통하며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역병은 상상력에 외상을 입혔다. 모든 것이 죄로 물들었다. - P125

무슬림 세계에서도 비슷한 쾌락주의와 영적 유책성 반응이 일어났으나 주변부에만 머물렀다. 주된 반응은 결정론적인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그 유행병을 폭풍이나 홍수와 다를 것 없는 재난이자 저항하고 견뎌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 병은 분노한 신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관장하는 운명의 명을 받고 왔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븐 바투타가 쓴 다마스쿠스 기록에서 보듯이,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 속에서 안정과 위안을 찾곤 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까지 형성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심이 자라났다. 죽음의 참상에 직면하고서 아랍과 유럽 사회 모두가 운명론에 더 취약해졌다. 상상력과 가치 구조 자체가 변했다. - P126

알베르 카뮈가 그 역병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그래서였다. 그는 역병의 극단성을 신뢰했다. 그는 인간 본성을 조명하는 역병의 힘을,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 쓴 인물이라도 되는 듯이, 그 인간 본성을 폭로하는 역병의 힘을 믿었다. 카뮈가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끌렸던 것이 유토피아였다. 세계의 저주는 이상주의자들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상주의자는 역병만큼이나 설득하기가 어렵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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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톤레사프의 평원, 여전히 그녀는 알아본다.
지평선의 한 점, 당신이 만나게 될 지평선의 그 지점은, 비록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한다 해도, 아마도 가장 적의에 차 있지는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할 그런 곳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 P9

너를 밀어낸 것이 결국 다음 날 너를 끌어당기도록 끈질기게 요구해야 해. 이것이 그녀를 내쫓으면서 어머니가 말한, 그녀가 이해했다고 믿은 것이다. 그녀는 끈질기게 요구하고, 그 말을 믿고, 걷고, 절망한다. 나는 아직 너무 어려, 나는 되돌아올 거야. 어머니는 말했다. 만약 네가 되돌아오면, 밥에 독을 넣어 너를 죽여버릴 테다. - P10

배가 불룩해진다. 배는 옷을 잡아당기고 매일 그만큼 더 옷이 치켜져 올라가, 무릎을 내놓은 채 그녀는 걷는다. 생소한 주변 경치 속에서 그녀의 뱃가죽은 아주 고운 결을 짓고 있어, 돌들 사이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배는 굶주린 이빨을 들이밀 음식을 생각나게 한다. 비가 자주 내린다. 비 갠 후 굶주림은 더욱 심해진다. 배 속의 아이는 덜 익은 벼, 망고, 모두를 먹어 치운다. 정말 이상한 점은, 먹을 것이 없는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이다. - P16

채석장, 땅바닥에서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그녀는 잡아당긴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굵은 다발로 뽑혀 나온다. 그녀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머리카락일 뿐이다. 그녀는 배 그리고 굶주림과 함께 그 앞에 있다. 그녀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굶주림이다. 그녀는 더 이상 고개조차 들리지 않는다, 대체 길 위에서 그녀가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시 자란 그녀의 머리카락은 물오리 보풀과 다름없다. 그녀는 이제 더러운 여승처럼 되었다. 진짜 머리카락은 더 이상 돋아나지 않는다. 머리칼의 뿌리는 뽀삿에서 이미 죽어버렸다. - P18

그녀는 게운다. 배 속의 애를 토해내려고, 애를 빼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망고의 신물이다. 그녀는 많이 잔다. 그녀는 잠자는 여자가 되었고, 그것은 충분치가 않다. 밤이고 낮이고 배 속의 아이는 계속 그녀를 먹는다. 그녀는 배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갉아먹는 소리를 듣고 아이가 살 뜯는 것에 귀 기울인다. 아이는 그녀의 넓적다리, 팔, 뺨을 먹어 치운다—그녀는 그것들을 찾는다. 톤레사프에 머물 때만 해도 있던 두 뺨의 자리에는 움푹한 구멍만 있을 뿐이다—, 머리칼의 뿌리, 모두를 먹어 치우고,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이는 그녀의 굶주림, 그것을 먹어 치우지는 않았다. 쓰리듯 뜨거운 배 속의 불은, 마치 졸릴 때 비치는 벌겋게 달아오른 태양과 같다. - P19

그녀는 잠잔다. 나는 잠자는 사람이다.
불이 그녀를 깨운다. 그녀의 배는 화염에 타오른다. 그녀가 토해내는 것은 피다. 더 이상 신 망고를 먹지 않고 덜 익은 벼만 먹어야 한다. 그녀는 찾는다. 자연이여, 이 생쥐를 죽일 칼을 다오.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강바닥의 둥근 조약돌들 외에는. 그녀는 몸을 돌려 자갈 위에 배를 댄다. 들끓던 배 속이 멈추고, 멈추고, 완전히 멎는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몸을 일으킨다. 다시 배 속이 들끓기 시작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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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당대에 처벌을 피하는 경우에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사건 현장을 감식하듯이 살인사건을 기록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폭로한다. 하지만 오세이지족의 살인사건들은 지금도 너무나 잘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역사적으로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망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가족들은 뭔가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많은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만, 그런 조사에는 끝이 없다. 그들은 의심을 품고 살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친척이나 오래된 친구나 후견인을 의심한다. 그들이 실제로 범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P403

나중에 매콜리프는 해리 대신 시빌의 의붓아버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결론이 옳은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는 할머니를 죽인 범인이 누군지 증명하지 못했다." 매콜리프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나의 문제로 인해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역사에서 너무 많은 페이지를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 거짓이 너무 많고, 너무 많은 문서가 파기되었고, 당시 할머니의 죽음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너무 적었다. (…) 살해당한 인디언의 가족들은 지나간 범죄에 대해 응분의 처벌을 내리고 만족감을 느낄 권리가 없다. 심지어 자신의 자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조부모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처럼." - P404

저물녘이라서 하늘 가장 자리가 이미 어두웠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시 풍경 너머의 초원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이 땅에는 피가 가득해요." 웹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했다.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바람 속에서 계속 바스락거렸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 하느님이 카인에게 했던 말을 웹이 되풀이했다.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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