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중력 저하가 주로 나나, 여러분이나, 여러분 자녀의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 모두가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를 공격하는 세력은 매우 강하다. 그러한 세력 중에는 거대 테크 기업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이 매일 우리의 주의력에 산을 들이붓고 있다는 것, 전 세계의 집중력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우리는 자신을 탓하고 자기 습관을 바꾸라는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자 그동안 읽은 집중력 개선법에 관한 책들에 전부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청난 구멍이었다. 기존의 책들은 대부분 집중력 위기의 실제 원인을 다루지 않았고, 실제 원인은 대개 훨씬 거대한 세력에 있었다. 나는 그동안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집중력을 훼손하는 12가지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장기적 측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이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 힘이 계속해서 집중력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 P22

그때 머릿속 한 편에서 스페인의 작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Casset가 한 말이 떠올랐다.? "준비될 때까지 삶을 미룰 수는 없다··· 삶은 우리의 코앞에서 발사된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해. 그러면 죽기 직전에 인스타그램에서 ‘하트‘를 몇 개 받았는지 쳐다보며 누워 있게 될 거야. 나는 차에 올라탔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 P36

나도 살을 뺄 때 이 방법을 썼다. 평소에는 탄수화물을 잔뜩 사다 두고 스스로에게 너는 천천히 적당량을 먹을 수 있을 만큼 강인하다고 말한 뒤, 결국 새벽 2시에 와구와구 먹곤 했다. 그래서 탄수화물을 사두지 않았다. 새벽 2시에 프링글스를 사러 나갈 생각은 없었다. 현재에 존재하는 나, 바로 지금의 나는 더 심오한 목표를 좇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자신이 실수를 할 수 있고 유혹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미래의 나를 구속한다. 선택지를 좁힌다. 돛대에 자신을 묶어놓는 것이다. - P37

갑자기 확신이 들었다(살면서 이런 확신은 몇 번밖에 경험할 수 없다). 내가 전적으로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 너무 오랫동안 내 시선을 트위터 피드처럼 아주 빠르고 일시적인 것에 고정하고 살았다. 속도가 빠른 것에 시선을 고정하면 근심에 빠지고 흥분하게 되며, 움직이고 손을 흔들고 고함치지 않으면 쉽게 휩쓸려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면 지금은 아주 오래되고 영속적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바다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있었고, 나의 사소한 걱정이 잊힌 뒤에도 오래도록 이곳에 존재할 거라고. 트위터는 온 세상이 나 자신과 내 작은 자아에 푹 빠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세상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싫어하고, 지금 이 순간 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다는 온 세상이 온화하고 축축하고 우호적인 무관심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바다는 내가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결코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 P42

이상한 것들이 의식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아이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 노래의 도입부가 머릿속에 계속 울려 퍼졌다. […] 스포티파이spouty를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노래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 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해변을 걸으며 직접 노래를 불렀다. 몇 시간마다 내 안에서 낯선 감각이 꿀렁꿀렁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뭐지? 아, 맞다. 평온함이었지. 하지만 내가 한 거라곤 두 개의 금속 덩어리를 놓고 온 것뿐이었다. 이게 왜 그렇게 생경할까? 마치 산통으로 악을 쓰는 두 아기를 몇 년 동안 안고 있다가 유모가 아기들을 대신 맡아주어서 아기들의 비명과 구토가 눈앞에서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 P45

갑자기, 물리적인 신문(범인이 목표물로 삼은 바로 그것)이 비범한 현대적 발명품이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발명품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공포를 유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달리 이 새로운 방식은 관점을 유도했다. - P46

그는 부끄러웠다. 수네는 물리학 교육을 받았지만, 곧 (그가 응용수학 및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있는 덴마크 공대에서) 물리학뿐만 아니라 본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 집중력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에 사로잡혔어요." 그가 내게 말했다. "어째서인지 인터넷 사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죠." 그는 자신이 소셜미디어에서 미국 대선 같은 사건의 사소한 정보들을 몇 시간이고 생각없이 훑으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부모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수네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깨달은 건, 어떤 면에서 제 직업은 모두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일인데, 내가 모두와 똑같은 정보만 얻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는 것, 모두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 P47

연구팀은 매번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메커니즘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저 시스템에 정보를 더욱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정보를 더 많이 주입할수록 사람들이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다.
"왜 이러한 가속화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설명입니다." 수네가 말했다. "그저 오늘날의 시스템에 정보가 더 많은 겁니다. 100년 전을 생각해보면, 뉴스가 이동하는데 말 그대로 시간이 걸렸어요. 노르웨이의 피오르에 크나큰 재앙이 발생했다면 피오르에 있는 사람들이 오슬로까지 내려와야 했고, 누군가가 그에 관한 기사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 기사는 아주 천천히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 P51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수네는 자기 삶을 탈바꿈했다. 트위터를 제외한 모든 소셜미디어를 끊었고, 트위터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만 확인한다. 텔레비전 시청도 중단했다. 더 이상 소셜미디어로 뉴스를 보지 않고, 대신 신문을 구독했다. 책도 더 많이 읽는다. "아시겠지만, 자제력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한번 고친다고 영원히 고쳐지는 게 아니에요." 수네가 말했다.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건 그게 계속되는 싸움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노력이 삶을 대하는 방식에 철학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보통 우리는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해요. 하지만 우리가 행복할 때는 약간 어려운 일을 할 때거든요.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는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거예요." 수네가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나 자신에게 더 어려운 것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가 오각별을 싼 이불을 풀고 비단을 열고 붉은 종이를 벗긴 뒤 오각별을 언덕 꼭대기에, 태양을 마주 보게 세웠다. 태양이 너무도 밝았다. 하늘이 시리도록 파랬다. 대지가 너무도 고요해 구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오각별이 붉은빛을 뿌렸다. 직경 한 자 여덟 치 반에 두께 두 치 석 푼인, 새로 제철해 검푸른 색을 띠는, 뒷면에 아이의 이름과 생산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는 별. 앞면을 빨갛게 칠한 별. 옅게 풍기는 페인트 냄새와 붉은빛이 세상에 퍼지고 세상을 밝혔다. 오각별이 신기한 비탈 정상에서 세상의 불처럼 타올랐다. - P234

아이가 웃었다.
종교도 해보고는 "신기한 비탈입니다" 하고 말했다.
"아니야."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가 없는데 그 어머니가 어떻게 예수를 임신했는지 설명할 필요 없다." 그러고는 오각별을 종이와 비단, 이불로 싸고 수레를 끌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 P234

성장의 사무실은 생각만큼 넓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커다란 방 두 칸에 크고 오래된 붉은 책상. 책상 위에는 신문과 문서,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놓여 있었다. 창턱에 놓인 전화기, 하얀 회벽. 벽에 걸린 중국 전도와 세계 지도, 국가 최고 상부의 초상화. 그리고 소파와 침대. 생각했던 것만큼 널찍하거나 깔끔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게, 성장이 널찍하거나 깔끔한 걸 원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았다. 원하기만 했다면 분명 널찍하고 깔끔했을 거였다. 성장인데, 성에서 가장 높은 상부인데, 그가 한마디 하자 성 전체가 강철 제련에 뛰어 들었는데, 또 한마디 하자 성의 나무가 전부 베어졌는데, 또 한마디 해서 방 두 칸을 깔끔하고 널찍하게 만드는 게 어려울까? - P249

성장이 걸상을 아이 앞으로 끌어당겨 아이의 눈을 똑바로, 친근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을 압박해 무당 1만 근을 생산할 수 있는 실험밭을 가꾸게. 밀 이삭을 조 이삭만큼 키우고, 밀 낟알을 옥수수 낟알만큼 키우면 자네를 데리고 헌납하러 도성에 갈 걸세. 그러고는 톈안먼과 창안제를 둘러보고 완리창청에 오르고 이허위안을 유람할 걸세. 쯔진청도 가고. 아, 중난하이 배도 있군. 자네 혹시 아는가? 국가 최고 상부는 전부 중난하이에 있다네. 거기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지. 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모두 중난하이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자네가 무당 1만 근을 생산할 수 있는 실험밭에서 조 이삭보다 큰 밀 이삭을 재배하면 내가 자네를 데리고 베이징을 유람할 걸세. 쯔진청에 묵으면서 국가 최고 상부와 기념사진도 찍도록 도와주겠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는 방 안이 하얀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았다. 무수한 천사가 허공에 서 있고 사방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찬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 P253

아이가 귀로에 올랐다. 그렇게 광할한데 그 혼자뿐이었다. 마음이 언짢아서 더 넓게 느껴졌다.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세상이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마치 하늘에서 넘어진 것처럼 태양이 하늘에서 새어 나오듯 기울어졌다. 겨울이었지만 사람을 따뜻하게, 뜨겁게 달궈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한 눈에, 매끈하고 쓸쓸한 대지가 은백색과 황금색으로 빛났다.
땅이 발을 받쳐주어 아이가 돌아왔다. - P258

평평하게 넓은 대지를 노랗고 하얀빛이 가득 메웠다. 한 사람, 검은 점 하나가 점점 커졌다. 99구와, 광활한 들녘의 용광로와 연기는 여전히 처음처럼 서 있었다. 아이가 점점 가까이 갔고 대지가 그의 발을 받쳐주었다. 지난 보름이 몇 년 전처럼 느껴졌다. 성도에서의 일, 성에서 만난 상부 인사가 아이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정오 무렵이 되자 햇살이 정수리에서 고꾸라지며 몸을 덮쳐눌렀다. 아이의 몸이 온통 땀투성이가 되었다. 갈증에 사방을 둘러보던 아이가 광야의 움푹한 곳에서 어렵사리 눈을 찾아냈다. 눈으로 갈증을 푼 뒤 길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P259

하늘은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순백은 황금색을 머금었다. 끓어오를 듯한 순백, 광활한 대지의 겨울 속에는 바람 한 점 없이 숨 막힐 듯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 적막 속에서 아이가 신기한 비탈에 앉아 잠시 쉬고 나자 하늘에서 하얀빛이 사그라졌다. 계곡 속 시냇물 같던 천사들의 노랫소리도 사라졌다. - P2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가 하라는 대로 하면, 새사람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선발할 때 음악에게 별 다섯 개를 주어 보내주십시오." 학자가 말했다.
아이가 얼굴을 빛내며 단호하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에게 아주 많은 꽃을 주어 얼른 100송이가 되도록 하지."
일이 또 그렇게 이루어졌다. 황허가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땅으로 밤의 한기가 스며들었지만 천막 안은 따뜻했다. 학자가 다시 천막을 나가 그 차가운, 불꽃의, 겨울밤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배웅했다. 학자가 밤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제방에 서서 불 속을 내 달리는 용 같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 용광로 불로는 절대 말릴 수 없는 그 강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열기가 넘쳤다. - P192

아이, 제 말을 들으십시오. 반드시 들으셔야 합니다. 앞으로 며칠 내에 어떻게든 음악과 학자에게서 열 송이, 스무 송이를 제하십시오. 특히 그들이 위신구를 떠나는 첫번째 사면 명단에 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분명 그들은 간통범으로 죄악을 저지른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모두들 부릴 수 있으며, 당신의 권위가 의심 받는 일 없이 신의 지팡이나 지휘봉처럼 견고할 것입니다. - P199

빛이 있으라고 하자 빛이 생겼다. 신이 빛이 좋고 밝은 것을 보고 빛과 어둠을 갈랐다. 사람들이 쉽게 지치는 것을 보고 해가 있을 때는 일하고 해가 지면 쉬라고 했다. 황혼이 깔렸다. 불그레한 석양이 예전에는 서쪽 마을 입구의 대추나무에 걸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 대추나무는 강철을 만드느라 태워졌다. 나무가 전부 용광로로 들어갔다. 세상이 반들반들해 밝은 빛이 아무 막힘 없이 천지를 뒤덮었다. 차단되지 않는 석양빛이 핏물처럼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 P205

"3~4일 내에 이 식칼처럼 단단하고 청명하게 울리는 철을 만들어야 하네. 그 강철을 가지고 성에 가야 해. 그런 철을 만들 수 없다면 더 이상 성도에 갈 생각은 말게."
태양이 사라졌다.
땅거미가 깔렸다.
세상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 P207

학자가 작은 걸상을 잡아당겨 앉았다. 학자의 행동과 견해 때문에 종교와 다른 두 교수는 놀라는 한편 질투를 느꼈다. 철을 상납하러 갔기에 아이가 지구 대표로 성에 간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았음에도 아이와 다니는 내내 왜 그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천막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렸지만 안에서는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크릴 창문을 통해 눈송이가 떨어지자마자 붉은 온기에 녹아 도르르 말려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종교 등은 학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종종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바라보았다. 흘러내리는 물처럼 선명하면서 도르르 감긴 안타까움이 그들 얼굴에 배어났다. - P218

종교는 성경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탄생 일화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수레를 끌면서 눈과 빛 속에서 길을 찾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셉은 나사렛의 목수였고 그의 약혼녀는 당신이 가져간 그 그림 속의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아직 젊었지요. 그런데 요셉과 결혼도 치르기 전에 갑자기 임신을 한 겁니다. 요셉은 고민 고민 하다가 마리아가 부정했으니 파혼해야겠다고 결심하지요. 그런데 신이 꿈에 나타나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태중의 아이는 신의 권능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태중의 아이를 너의 아이로 길러라.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란 메시아란 뜻이고 메시아란 환난에서 영원히 구원해 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 P229

아이가 수레를 밀었다. 비탈길은 보통 비탈처럼 약 40도 경사에 수십 미터 길이였다. 평소대로라면 숨을 고르고 힘껏 끌어야 했을 텐데 수레가 비탈 아래에 이르렀을 때 아이와 종교가 힘을 쓰기도 전에 평지보다 더 가볍게, 작은 힘에 스르르 굴러갔다.
오르막길이 내리막길 같았다.
종교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종교를 보았다.
두 사람은 힘을 주지 않고도 수레를 끌 수 있었다. 수레는 천천히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비탈을 올라갔다. 아이와 종교 둘 다 무척 신기해했다. 그리고 함께 웃으며 손잡이를 잡고 수레를 따라 걸었다. 밀지도, 끌지도 않는데 수레가 비탈 정상까지 혼자 굴러갔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문 입구를 청소한 사람이 누구지?" 중년의 교수가 나오자 아이가 작은 꽃 두 송이를 주었다.
"누가 마당과 내 숙사 입구를 청소했나?" 또 다른 교수가 나오자 아이가 작은 꽃 세 송이를 주었다.
"대문에 축하 대련을 써 붙인 사람은?" 예순여덟 살의 언어학자가 나섰다. 소년같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 앞으로 나간 그는 고개를 수그리며 굽실거리는 한편 머리를 돌려 주변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모두들 웃음을 띤 채 선의의 격려와 박수까지 보내는 게 아닌가. 아이가 이번에는 작은 꽃 두세 송이 대신 어린애 손바닥만 한, 작은 꽃 열 송이에 해당하는 중간 꽃 두 송이를 주었다. 중간 꽃을 받을 때 언어학자의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지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등 뒤로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지더니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 P150

음악을 뒤따르게 하면서 제2열 3숙사에 도착하자 아이가 입구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베려고 애쓸 필요 없다. 아무래도 손쓰기 어려울 테니까. 다른 사람들과 제철하러 황허 강변으로 갈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니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개조받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전부 음악이 대신 해야겠어. 어쨌든 두 사람은 다정한 한 쌍이니까. 당신이 안 가도 음악은 가야 해. 음악이 가면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해야겠지. 당신 일은 전부 음악이 대신할 거다."
아이가 말을 마친 뒤 뒤돌아서 갔다.
말이 방 안에 인질처럼 남았다. 대문 입구에 도착한 아이는 하늘색과 대열을 살펴본 뒤 다시 호루라기를 불고 손짓하며 대열을 북쪽으로 출발시켰다.
과연 99구의 동쪽 담 모퉁이를 돌 때 학자가 뒤쪽에서 따라왔다. 다리가 부러진 뒤에도 주인을 쫓아가는 불쌍하고 불쌍한 개처럼 절뚝거리며. - P161

태양이 동쪽 대지의 지평선에 금물처럼 엉겨 붙어 하늘과 땅을 하나로 찰싹 붙여주었다. 강가에서는 서릿 빛처럼 차가운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혹은 몇 번뿐이었던 새 울음이 동쪽 하늘에서 눈부신 불꽃을 불러낸 뒤에는 더 이상 성기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울렸다.
태양도 빛이 한데 어우러졌다.
평원의 모래사장도 하얀 소금이 한데 어우러졌다.
사람들의 땀도 얼굴에서, 몸에서 한데 어우러졌다. - P162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들이 말 떼가 승리를 향해 내달리는 것처럼 뛰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웃음과 환호성이 파도처럼 강가를 휩쓸어 황허 강변의 천년 적막을 깼다. 황허 강변을 들끓게 만들었다. 젊은 강사가 제일 먼저 도착해 아이와 실험이 쌓아놓은 가마 위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와 하고 소리쳤다. 작렬하는 선홍빛이 석양을 봉화대 저편에 깔린 먼지처럼 흐릿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제일 뒤처진 학자가 절뚝거리며 앞쪽으로 걸어가 자신의 범포 가방을 줍고는 달려가는 사람들과 구호, 환호성, 그리고 붉은 깃발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꼭 깨무는 그의 얼굴로 소금웅덩이에 겨울 안개가 깔리듯 짙은 망연함이 깔렸다. - P166

아이가 그 커다란 16절지 책, 벽돌처럼 두껍고 검붉은 표지의 딱딱한 양장본을 받았다. 표지에 ‘자본론‘이란 제목과 아주 긴 저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공문에서 가장 추천하며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명시한 책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밥그릇만큼이나 그 책이 익숙했다. 하지만 한 번도 다른 사람이 그의 밥그릇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책을 들추자 스무 장쯤 뒤에 과연 가로 2촌, 세로 3촌, 깊이 1촌 정도 되는 구멍이 있었다. 구멍의 네 변이 작은 『성경』에 꼭 들어맞았다. 『성경』은 표지 없이 속지만 있었다. 글씨가 파리똥만큼 작은 게 꼭 열을 지어 자석으로 달려드는 검은색 강모래 같았다. 책을 덮고 아이가 종교를 흘겨보았다. - P172

아이가 천막 곳곳을 둘러보았다. […] 그런데 한창 둘러보고 있던 중에 오른쪽 누군가의 네모 칸에 꽃이 한 송이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화단의 화초 사이에 푸르스름한 석판이 깔린 것처럼 민둥민둥했다.
이름을 보니 학자였다.
붉은색들 속에 학자의 네모 칸만은 치솟는 화염 속 어느 한 부분에만 물이 뿌려진 듯했다. 여기저기서 펄펄 끓어오르는 불길과 상관없이 서쪽 범포 한구석, 학자의 칸만은 황량하고 조용했다.
그 민둥민둥한 범포 조각에 아이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날 동안 학자의 네모 칸이 단 한 송이도 없이, 붉은색 가운데 깊고도 검은 우물처럼 남아 있는 줄 몰랐다. 펄펄 끓던 아이의 마음이 끄느름히, 천천히 식기 시작했다.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삿 근방 하늘 밑 어딘가에 먹을 수 있는 진흙이 있다는 걸 어머니는 알고 있어요? 뽀삿강에서 범람한 그 광경이 이상하게도 바로 당신들을 사로잡는 그 범람한 흙을? 채석장의 폭발과 까마귀 떼가 폭발하듯 날아오르는 것을 언젠가 나는 당신에게 얘기할 거야,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다시 볼 것이고, 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는 나이고, 그리고 당신과 나, 우리는 아직 살아 있지 않아? 당신 아닌 다른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며, 누가 나의 이야기를 들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당신보다는 당장 부족한 양식을, 그것을 더 바란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사람이 누가 있을까? 며칠 동안, 몇 주 동안 시시각각 그녀는 있지도 않은 음식을 생각하고 열망한다. 그녀는 그녀를 내쫓은 무지한 여자에게 말하러, 돌아갈 것이다. 나는 당신을 잊어버렸어. - P22

그녀는 잠을 잔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한밤중이다. 그녀는 야릇한 일을 본다. 그녀는 아이가 생선을 먹어버렸음을 알아차린다, 아이는 그것마저 빼앗아갔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 저녁 굶주림은 극에 달할 것이다. 굶주림은 대체 무슨 일을 벌일 작정인가, 그녀가 결코 원하지 않는 어떤 일을?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먹으러 바탐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 다음 나는 영원히 그곳을 떠날 거야. 그녀는 더운밥을 원한다. 그녀는 원하고, 이 세 마디를 말한다. 더운 밥.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그녀는 한 줌의 흙가루를 그러 모아 입안에 넣는다. 다시 한번 그녀는 깨어난다. 그녀는 입 안에 그것을 집어넣었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밤의 어둠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다, 흙가루는 거의 더운밥이었다. - P24

그녀는 떠난다. 그 일을 해낼 장소, 한 구멍을, 아이가 나올 때 아이를 받아낼, 아이를 완전히 떼어낼 누군가를 찾아 떠난다. 그녀를 쫓아낸, 피곤에 지친 어머니를 찾는다. 어떤 핑계로도 되돌아와서는 안 돼. 이 여인,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 이 아침, 수만 리 뻗은 산맥도, 우매한 당신을, 순진한 척 당신을 찾아가는 걸 막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 놀라 당신은 나를 죽이는 일도 잊겠지. 더러운 여인, 모든 것의 원인인 당신, 나는 당신에게 이 아이를 돌려줄 거야. 그리고 당신은 아이를 받겠지. 나는 당신을 향해 아이를 던지고, 영원히 도망칠 거야. 이 새벽빛과 함께 어떤 일들은 마무리될 것이고 다른 일들이 다시 시작되리라. 그러므로 이 탄생을 주관할 이는 그녀의 어머니, 바로 그녀다. 그리고 이 탄생으로부터 그녀, 나이 어린 소녀는 다시 한번 태어나리라. 새 혹은 꽃 만발한 복숭아나무로? - P27

소나기가 닥친다. 아주 잠시 내린다. 대사는 창문에 드리워진 발을 걷으러 간다. 갑작스레 소나기가 그치고 몇 분 동안 햇빛이 반짝 빛난다. 그리고 두꺼운 구름층 속 구멍이 다시 막힌다. 고요한 질풍 속에 정원의 그늘이 뽑혀 나간다. - P47

인도인 하인이 샤를 로세트를 깨운다. 반쯤 열린 문으로 약빠르고도 조심스럽게 머리가 나타난다. 주인께서는 일어나셔야 합니다. 눈을 뜬다, 잊어버렸다, 매 오후 그렇듯이 캘커타를 잊어버렸다. 방은 어둑하다. 주인께 차를 가져 올까요? 우리는 장밋빛의 여인, 장밋빛의 책 읽는 여인, 멀리 있는 파드칼레의 칼날 같은 바람 속에서 프루스트를 읽는 장밋빛 여인을 꿈꾸었다. 주인은 차를 원하시나요? 주인은 편찮으신가요? 우리는 이 장밋빛의 여인, 미, 책을 읽는 장밋빛의 여인 곁에서 일종의 권태를 경험했으며, 이 지역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다른 것, 매일 아침, 여름 계절풍 동안 비어 있는 테니스장을,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로지르는 흰색 반바지 차림의 여인을 꿈꾸었다. - P51

바탐방의 노래, 때때로 나는 커다란 물소 등 위에서 잠을 잤다. 어머니가 준 가득한 더운밥. 어머니, 역정에 찬 바짝 마른 어머니가 별안간 그녀의 추억에 벼락을 친다. - P70

헤어진 아이는 끊임없이 반복해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고, 다시 눈을 반쯤 떴다가 잠이 든다,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른 여인들의 몫이다. 나 외에 덤으로 너, 불필요한 짝이야, 우리가 헤어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조금만 뛰어도 동그란 머리가 등에 걸린 자루에서 빠져나와 매달려 흔들렸고 천천히 걸어야 했다. 이제는 뛰리라. 너무 큰 돌은 피해야 했고 땅을 쳐다보아야 했는데, 이제는 피하지 않으리라 하늘을 쳐다보리라. 의사는 아이에게 다가가 주사를 놓는다. 이 아이는 조그맣게 아픈 소리를 낸다. 소녀는 보건소에서 치료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이의 찡그린 표정이 그녀를 똑같이 찡그리게 했다. 걷는 동안 그녀의 어깨에 자국을 냈던 무게. 아이가 살았건 죽었건 결코 그 이상을 넘지 않을 정확한 그 무게가 그녀를 잡아당긴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