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앞두고는 늘 불안하고 떨립니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채지만. 때로는 아무도 눈치 못 채게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건 좀 외로운 일 같아요. 그럴 때 저는 늘 저의 정신적 의지처, 국진이 형을 찾아갑니다. 제가 준비하는 공연을 한 번 봐 달라고 부탁했어요. 마치고 형에게 물었어요. "형, 뭘 고치면 좋을까요?" "걱정하지 마. 내가 봤더니 너 타고났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 • 그러나 제 마음을 한결 더 편하고 든든하게 만든 건, 어쩌면 대책 없는 듯 들릴지도 모르는 국진이 형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이었어요. - P125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사범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쭈뼛거리며 인사했습니다. 왜 안 나오느냐고 물으셔서 아무 말 못 하고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을 읽은 건지, 그날 이후 사범님은 가끔 관장님 몰래 당수나무 아래에서 제 자세를 잡아 주고, 멋진 태권도 동작과 품세를 알려 주었습니다. 태권도 동작뿐만 아니라 쿵푸, 쌍절곤, 봉 기초 기법을 알려 주기도 했는데, 동네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르는 새로운 동작들이었습니다. 사범님과의 시간은 제게 자부심 그 자체였습니다. 두세 번이었지만, 개인 지도였으니까요. (웃음) 사범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때의 동네 당수나무 아래, 사범님의 환한 웃음과 발차기를 할 때 터져 나오던 "팡!" 하는 소리 그리고 바람을 맞으며 사범님을 바라보던 그 큰 당수나무 아래 그 자리와 그 시간이 제게는 일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131
조선시대 왕들은 견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조는 격쟁을 시행했습니다. 격쟁이란 그러니까, 신문고가 형식상의 제도가 된 뒤 이를 대신하여 일반 백성들이 임금이 행차하는 길가에 나가 꽹과리와 징을 울려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거예요. 그게 당시에 거의 유명무실해졌는데 정조는 시행했다고 합니다. 지나가다가 "꽹" 소리를 들으면 왕이 행차 행렬을 세우고 억울한 사정을 묻습니다.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물어보고 백성이 진짜 억울한 일을 당해 하소연하면, 대기하고 있던 관리가 이를 받아 적었다고 해요. 그렇게 3,000건 넘는 민원을 처리했다고 기록에 나오는데, 이걸 보고는 제가… 휴, 저는 왕으로 뽑아 줘도 그렇게는 못 삽니다! - P165
2019년, 제가 <오늘밤 김제동> 방송할 때라서 기억해요. 그때 당시 국방부 차관이 서울에 마련된 제주 4·3 항쟁 추모 공간을 방문해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 기억합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고요. 무고한 희생에 대해 사과의 마음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국방부가 4•3 항쟁 발생 71년 만에 사죄한 거죠.
그런데 재심을 맡았던 변호사님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그 사죄도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해요. 당시 국방부가 낸 공식 입장문에는 "사죄‘라는 단어가 없었던 거죠. 유족들이 항의하자, 국방부 차관이 유가족들을 찾아와서 비공식적으로 사과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4•3 항쟁 과정에서 오랫동안 누명을 쓰셨다가 재심 끝에 70여 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는 판결들도 나왔어요. 너무 늦었지만 열여덟 분의 제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국가 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죄받고 명예를 회복하신 거예요. 제가 <오늘밤 김제동>을 진행할 당시 제작진과 상의해서 생방송 중에 그분들 이름을 한 자 한 자 다 불러드렸습니다. "000 무죄." "000 무죄." - P168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말은 너 그 사람 정말 좋아했구나" 라는 인정의 말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한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였으니까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이라고, 누군가 제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줄 때 제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 P174
어느 날은 브라만의 집, 요즘으로 치면 부잣집을 가게 됐는데, 그 사람이 부처님에게 심한 욕을 했대요 "너는 사지 멀쩡한 놈이 맨날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살거냐?" 그런데 이 말을 듣고도 부처님은 빙긋이 웃을 뿐이었어요. "넌 이렇게 욕을 먹고도 기분이 안 나쁘냐?" 이 질문에 그제야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집에 손님이 와서 당신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당신이 안 받았어요 그럼 그 선물은 누구 겁니까?" "내가 안 받으면 그 손님 거지." 그랬더니 부처님이 다시 이렇게 말씀하세요. "맞습니다. 욕을 많이 하셨는데, 제가 안 받으면 그 욕은 누구 겁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문이 탁 막혔어요. 그걸 요즘 말로 하면 뭘까요? ‘반사‘입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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