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부족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대요.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갈 때 왼쪽 어깨를 세 번 털고요. 오른쪽 어깨를 세 번 털고요. 그리고 제자리에서 세 번 뛰고요. 그런 다음에 집에 들어간대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종교 의식입니까?" 그랬더니 그건 아니래요.
"왼쪽 어깨에 붙어 있던 내가 미워하던 사람을 털어내고, 오른쪽 어깨에 내가 죽이고 싶은 인간들을 털어내고, 내 몸에 붙어 있었던 모든 원망과 분노를 털어내고, 집에 들어갈 때는 나 혼자 들어가서 쉬겠다는 의미예요. 내가 만약 그 사람들을 집에 데리고 들어가면 내가 그 인간들하고 함께 자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이 들려준 얘기가 되게 와 닿았어요. - P191

인간은 언제 철이 드는 걸까요? 저는 제가 마흔이 되면 철이 들고 좀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젊은 날의 저는 마흔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감정 통제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흔이 되기만 하면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절로 인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무엇보다 이성에 대해 가슴 뛰는 것이 다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흔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그때랑 달라진 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이성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무시당하면 발끈하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웃음) - P200

저는 자기 경계가 확실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국가 간에도 국경이 있는 것이고 개인 간에도 경계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가끔 경계를 넘는 질문을 너무 많이 합니다.
"너는 언제 돈 벌 거니?"
"언제 결혼할 거니?" - P205

"아저씨, 가짜 뉴스는 어떻게 구별해요?" 어떤 학생이 이렇게 질문해서 저도 잘 모르지만 제가 아는 선에 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하는 생각으로 봐야 하고, 그다음에 ‘이걸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하고 자기 마음도 한 번 돌아봐야 하는 것 같아요.
진짜 뉴스, 가짜 뉴스를 판별하는 것은
그런 다음에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P208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궁금해하며 적극적으로 읽는 순간 자기가 주인이 되고, 그때부터 ‘진짜 읽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같은 책을 세 번은 읽습니다. 한 번은 문장을 읽고, 두 번째는 그 책을 쓴 저자의 시대와 역사와 배경을 알고 난 다음에 왜 이런 말을 했을까를 생각하며 다시 읽습니다. 세 번째는 그 책을 읽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읽습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이 대목이 좋을까?‘
‘나는 왜 이 대목이 싫을까?‘ - P209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자립 청년들에게 밥솥과 이부자리와 김치를 보내는 일을 다른 분들과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마련한 자리에서 한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가진 돈은 많지 않지만 이런 곳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아요. 지금까지 저도 알게 모르게 받아 왔으니까요."
가계부의 소비 항목에 아주 자랑스럽게 ‘기부금‘이라고 적었다고 했습니다. 제일 큰 지출 내역이지만 지출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서 함께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게 제가 아는 ‘무지출 소비‘입니다. - P220

제가 아르바이트로 고2 때부터 아스팔트 가루 치우는 일도 했습니다. 도로 가에 보면 콘크리트 배수관이 있는데, 그 관 안에 들어 가서 낙엽을 꺼내는 것도 제 일이었습니다.
그때 같이 일하던 분 중에 지금의 제 나이 정도 되는 어른이 있었어요. 팔에 문신도 있고, 좀 무섭게 생겼던 것 같아요. 지금이야 문신을 유행처럼 하기도 하지만 그때 제 눈엔 무서워 보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니까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플 나이잖아요.
그때 늘 아침 9시쯤 되면 참을 주거든요. 한 달 내내 보통 빵하고 우유를 주는데, 자기 몫을 말없이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저 아저씨 혹시 우유를 못 드시나? ‘밀가루를 먹으면 설사를 하나?‘, ‘이거 못 먹어서 날 주나?‘ 당시엔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달 내내 자기 빵을 제게 주어서 별 생각 없이 받아먹다가 언젠가 그 근처를 지나갔는데 그때 그 아저씨가 우유와 빵을 드시는 걸 봤어요. 그제야 알았어요. 못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저한테 준거예요. 양보한 거죠.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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