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정말 좋은 사람은 잘 까먹는 사람이다. 다 잊어버려야 한다. - P221
나는 그때 이후 돈을 벌지 않은 적이 없었고 동시에 손에서 책을 놓은 날이 없었다. 살며 부딪히는 모든 일이 내게 스승이었다. 성공하고 실패하며 복기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지독하게 현실적이었고 동시에 비현실적이었다. 사회생활을 위해 졸업장을 따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나는 독학형 인간이다. 누가 자신의 지식을 강요하면 일단 재수가 없다. 배우는 건 나의 선택이고 검증도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 P225
「죽은 시인의 사회」를 생각한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모두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는 엔딩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키팅 선생의 수업 시간이 더 좋았다. 특히 에반스 프리차드의 『시의 이해 Understanding Poetry』 의 서문을 찢는 장면이다. 어떻게 시에 공식이 있으며 누가 시를 재단하는가? 나도 그런 이유로 시집을 위시한 책의 서문이나 해설을 읽지 않고 바로 본문에 진입한다. 인생도 그렇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현인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깨닫는 건 개인의 몫일 뿐이다.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조언은 될 수 있어도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없다. 하루를 마치고 밤에 오늘을 돌아보는 것. 그래. 밤이 스승이다. - P226
나는 『파리 대왕』의 아이들을 생각하고 이마를 찌푸렸다. 다르다는 것. 장애든 가난이든 다르다는 것은 무리에서 밀려나는 일이다. 성숙한 사회는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같이 간다. - P227
둘째 형제는 아버지를 닮아 음악성이 있었다. 악보를 보지 않고도 한 번 들은 곡을 연주했던 아버지처럼 그도 음을 감각으로 찾아냈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로드리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운지법이 그에게 맞지 않아 힘들어할 때였다. "오빠, 세상에 표준은 없어. 내게 맞는 게 표준이야." - P228
이 영화를 이경원 기자에게 바친다는 엔딩 자막이 떴다. 디아스포라가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주류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진입해야 한다. 권리를 인정받는 가운데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소수자인 디아스포라 가정에서 부모에게 냉대받는 소수자 게이, 데이비드 김의 이야기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등이 어떻게 포용으로 나아가는지 말이다. - P245
다섯 명의 후보자 중 데이비드 김만 탈락했다. 한국인도 몰랐던 그가 40% 이상을 득표했다는 것이 경이롭다. 영화는 소수자로 불리는 디아스포라를 통해서 공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치와 종교, 출신지, 성 정체성, 세대 차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다. 영화 엔딩 음악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관객이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본 후 봉은사 절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고층빌딩과 거리의 불빛을 바라보며 쓸쓸했다.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어찌 이민자뿐이겠는가? 우리 안의 모든 소수자를 응원하고 싶다. - P246
생과 사가 화려했던 이들에겐 흥미가 없었다. 천수를 다해 안장된 이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니어도 환호해 줄 이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내가 가는 곳은 꿈 많았을 젊은이들의 묘지였다. 묘비를 읽으면서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곳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사랑하고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가질 수도 있었던, 가질 뻔도 했던 그 모든 것을 생각했다. - P248
사실 나는 박흥식 감독과 작은 인연이 있다. 4년 전인가? 나는 이야기 생산자를 ‘storyteller, storywriter, storyshower‘라고 한 이가 발터 벤야민이라고 기억하고 있 었다. 그의 논문 「이야기꾼」을 출처로 생각했는데 착각이 었다. 문장의 주인공은 박흥식 감독이었다. 그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평론에서 벤야민을 언급하며 ‘말로 이야기를 하는 호머는 storyteller, 글로 이야기를 하는 페터 한트케는 storywriter,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빔 벤더스는 storyshower‘라고 분류했다. - P256
옛날 중국에 ‘만다린‘이란 부자가 살았다. 그는 딸을 귀족 출신의 젊은 장군에게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딸은 하인과 사랑에 빠져 도망갔다. 두 사람은 추격당하면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섬에 숨어든다. 섬에 안착해서 조용히 살았으면 좋으련만 하인의 문필력이 세상에 알려지고 만다. 비천한 하인 출신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병사들을 보내 그를 죽였다. 딸은 자기가 살던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서 타 죽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그냥 동화다. 그들의 사랑에 감탄한 신이 그들을 비둘기로 환생시켰다고 전해진다. 사랑은 죽어야 증명되는 것인가?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부자인 아버지는 신분 상승 욕구를 참을 수 없었고 딸은 사랑을 참을 수 없었고 하인은 글을 참을 수 없었다. - P259
한나 아렌트의 글을 보자.
우리 중에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한참 나눈 후 집으로 가서 가스를 틀어놓거나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기묘한 낙관 주의자‘들이 있다. 우리가 선언한 쾌활함이 죽음을 곧바로 받아들일 듯한 위험스러움과 표리일체임을 그들은 증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생명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며 죽음이 최대의 공포라는 확신 아래 자랐는데, 생명보다 지고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죽음보다도 나쁜 테러의 목격자가 되고 희생자가 되었다. - P262
거리에 ‘기묘한 낙관주의자‘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문득 두려워진다. 사는 게 전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전시에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대 고독의 죽음. 그 대척점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P263
어떤 것도 너무 힘을 주어서는 안 된다. 편지는 점점 옅어지고 흐려져 힘을 준 자국만 남을 것이다. 사라짐은 아름다운 일이다. 예전에 강원도 국도 여행 중 FM 93.1에서 이 노래가 나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들었다.
기억하라, 함께 지냈던 행복한 나날을 그때 태양은 더 뜨거웠고 인생은 행복하기 그지없었지 마른 잎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다 - 자크 프레베르Jaques Prevert 「고엽Les Feuilles Mortes」 중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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