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규정짓는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규정을 모두 벗어던지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쉬운 길이다. 좋게 보면 자유롭고 유연해 보일지 몰라도, 흔해빠진 무원칙의 편의주의이기도 하다. 나는 나름의절도가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최소한으로 지키고자 하는 선이 있어야 때때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쩌면 모든 윤리는 최소한의 윤리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는 하지 않겠어"라는 자세이다. 그 최소한이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 - P51
팜유는 어떨까?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밀림이 파괴되면서 오랑우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죽는다. 그렇다면 비건이 팜유를 먹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을까? 이렇게 확장하다 보면 끝도 없어진다. 그래서 비건에게만 모든 부담을 지우고 완벽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 - P53
비건을 해보면 한 사회의 편견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를 발견한 기분이 든다. - P57
철학자 레비나스는 얼굴의 윤리학을 말한다. 그는 "얼굴은 하나의 명령"이라고 했다. 얼굴은 그 자체로, 언어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죽이지 마라, 형제여, 자매여..." 모든 열굴은 그렇게 말을 한다. 사형대에서도 사형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처형을 한다. 우리는 얼굴 있는 것을 먹는 꺼림칙함을 본능적으로 안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식탁에 생선을 내어놓을 때 얼굴 부분을 가렸다고 한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성찰하게 해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한때 얼굴이 있었던 생명이라는 걸 환기해주는 성찰의 효과. - P64
인간끼리 소유하는 제도가 노예제였다. 이 부적절한 소유 관계는 철폐되었다. 이제 그 어떤 근로자도 사용자의 소유가 아니라 상호 계약 관계에 있을 뿐이다. 왜 동물은 여전히 사유재산이 될 수 있을까. 동물은 아직도 노예, 또는 노예보다도 못한 물건이다. 농장의 소는 식품, 펫숍의 강아지는 반려상품, 보신탕의 개는 보양상품, 아쿠아리움의 돌고래는 관광상품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농장의 돼지는 식품노예고, 관광지의 당나귀는 운반노예, 펫숍의 고슴도치는 반려노예이다. - P68
고기 먹는 걸 규제한다고?! 당신은 여전히 개인영역 침해라고 버틸지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음식은 개인 취향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식탁 위의 개인주의를 곧잘 침해한다. 채식하는 사람들에게 시비거는 장면을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지 모른다. 절대 그냥 놔두거나 넘어가는 법이 없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사견이나 소감을 피력하거나, 핀잔을 주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한 농담을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들이대며 충고를 하려고 한다. 덮어놓고 못마땅함을 표현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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