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칼날에도 잘 드는 부분이 있듯이, 하나의 음성에도 특히 모욕적인 억양이 있다. - P852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까마득한 심연 위로 걸려 있는 부서지기 쉽고 가파른 모래언덕을 기어오른 경험이 있는 사람, 손과 손톱과 팔꿈치와 무릎과 발밑으로 받침점이 끊임없이 벗어나 도망치는 것을 느껴 본 사람, 그 반항적인 절벽 표면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하는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전진하기는커녕 자꾸만 뒤로 밀리고, 위로 오르는 대신 더욱 깊숙이 빠져들고, 정상을 향한 몸부림이 거듭될수록 추락의 확신이 굳고,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동작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더욱 위험에 처박으면서, 심연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껴 본 사람, 그리고 밑에서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는심연 속으로 추락할 때 뼛속으로 침투하는 음산한 냉기를 느껴 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그윈플레인이 느끼던 것을 느낀 사람이다. - P853

그의 웃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들이 저지른 범죄이며 그가 당한 고초입니다. 경들의 범죄를 이제 그가 경들의 면상을 노리고 던지며, 그로 인한 고초를 경들의 낯짝에 토하고 있습니다. 제가 웃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울고 있습니다. - P854

높은 곳에 있는 것은 기울고, 낮은 곳에 있는 것은 갈라집니다. - P856

그곳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되, 가루가 되면 영영 다시 일어설 수 없다.


그곳에서는 갈채였던 것이, 이곳에서는 저주였다. - P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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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들 중에는 주변에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지구와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미안한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나도 주위에 미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떠올린다. 때로는 노예해방 운동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건도 하나의 해방 운동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현 시스템의 부당함을 알리는 일은, 당장은 남들의 죄의식을 자극하거나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말하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깟 부담이나 불편한 시선쯤은 감당할 수 있다. - P83

"동물 한마리라도 살릴 수 있다면 맘같아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죠. 저도 원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지만, 동물들을 살리는 데, 그리고 지구를 살리는 데 찬밥 더운밥 가릴 순 없잖아요?" - P97

이것이 진지한 비건의 일상이다.
절망은 길고 꾸준하고, 희망은 파편적이고 멀리서 명멸한다. 파졸리니가 묘사한 반딧불처럼 잔존한다.
진지한 비건의 심정은 되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은 노예제 사회에 살고 있는 노예 반대론자들의 심정, 홀로코스트 시대를 살던 쉰들러 씨의 마음이다. ‘아, 저 돈이면 생명하나를 살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비건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산다. 그들은 마치 미래가 지금-여기 이미 도달한 것처럼 살며, 그러지 않고선 버티기도 힘들다. 그들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간다. - P100

영화 <레인메이커>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선을 넘으면, 선은 지워진다." - P105

가령, 빈곤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바로 그 빈곤 때문에라도 비건을 해야 한다. 지금 전세계 곡식의 40퍼센트 이상(미국은 70퍼센트)이 누구에게 가고 있는 줄 아는가? 사람이 아니라 소와 돼지 등 가축에게 가고 있다. 이렇게 불평등하고 비효율적인 식량 생산 구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이다. - P107

인간의 윤리를 동물의 행동생태에 기초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연의 원리로 흔히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벗어난 ‘문명인‘으로서 높은 수준의 윤리, 상호배려와 인간성을 이뤘음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동물 착취를 정당화할 때는 인간의 우월함과 특별함을 들먹이다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싶을 때는 "우리 역시 어쩔수 없는 동물일 뿐"이라며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은 편의주의적이고 비겁하며 앞뒤가 안 맞는 태도이다.
자연의 원리를 본뜨고 싶다면 좋은 것들을 선별해서 본받아야 할 것이다. 가령, 동물들은 먹을 만큼만 먹는다. 사자는 재미로 사냥하지 않고,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두지도 않는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다른 동물을 공장 규모로 가두어두고 노예처럼 착취하지 않는다. 생태계 파괴를 일삼으면서 자연의 일부분만 임의로 본떠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의 모순에 갇힐 뿐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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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미래 속으로 울려 퍼지는 과거의 메아리이다. 혹은 과거 위로 드리운 미래의 그림자이다. - P807

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오늘은 전부였다. - P816

「당신 누구요? 어디에서 나오셨소?」
그윈플레인이 즉각 대답했다.
「심연에서.」 - P838

도대체 한가한 자에게 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서 빼앗고, 배부른 자에게 주기 위해 거지에게서 빼앗으며, 군주에게 주기 위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다니! - P847

밤이 오면 그 어느 누구도 자기의 구석에 낮을 간직할 수 없습니다. - P848

죽이는 행위,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자의 노고이다. 사람들의 웃음이 때로는 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웃음이 폭력 행위로 변했다. - P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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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에는 호수를 내다볼 때마다 호수 바닥의 위치가 다른 호수들보다 훨씬 높은, 산기슭 높은 곳에 있는 호수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해가 뜨자 호수는 밤새 걸치고 있던 안개 옷을 여기저기 벗어던지고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거나 매끄럽고 맑은 수면을 드러냈으며, 안개는 마치 비밀 야간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는 유령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숲 속으로 사라졌다. 호숫가 나무에 영근 아침 이슬은 산기슭의 나무에 매달린 이슬처럼 유달리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듯했다. - P129

’세상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들은 광활한 지평선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 이라고 말했다. - P131

"매일 자신을 새롭게 하라, 다시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하며 영원히 새롭게 하라." - P132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 무엇보다도 나를 고무한다. - P134

우리가 실체만을 주시하고 그 실체를 우리가 아는 사실과 비교하는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삶은 동화나 천일야화에 나오는 연회 같으리라. 우리가 필연적이고 존재 이유가 있는 것만을 존중한다면 길거리에는 음악과 시가 울려퍼지리라. 우리가 침착하고 현명한 인간이 될 때 위대하고 가치있는 것만이 영원하고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사소한 두려움과 쾌락은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이 얼마나 상쾌하고 멋진 일인가. 인간은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어 허식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면서 판에 박힌 일상과 습관을 확립하고 공고히 하지만 이 모두는 여전히 허구적인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삶을 즐기는 어린이들은 진정한 삶의 법칙과 인간관계를 어른보다 더 분명하게 식별하는 반면, 어른들은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데 실패하고서도 경험을 통해, 즉 실패를 통해 자신이 더 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 P139

수천 년 동안 반복된 여름은 그리스 대리석 조각에 가을의 황금빛 자취를 남겼지만 그리스 문학에 남겨진 빛의 자취는 그보다 더 농익고 눈부시다. 문학은 평온한 천상의 기운을 천지에 전파하여 세월이 지나도 그 기운이 녹슬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이며 후대에 물려주기에 가장 적합한 유산이다. - P148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편의상 글을 배운다.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거래를 할 때 사기당하지 않기 위해 계산하는 법을 배우듯이 말이다. 그러나 보다 고차원적인 독서는 우리를 향락으로 어르고 고결한 재능을 잠들게 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한 채 까치발로 꼿꼿하게 서서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을 바치는 숭고한 행위이다. - P149

지혜가 있으면 관대함을 배우게 된다. - P153

우리는 육체적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정신적인 황폐함을 치유하는 데는 인색하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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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규정짓는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규정을 모두 벗어던지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쉬운 길이다. 좋게 보면 자유롭고 유연해 보일지 몰라도, 흔해빠진 무원칙의 편의주의이기도 하다. 나는 나름의절도가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최소한으로 지키고자 하는 선이 있어야 때때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쩌면 모든 윤리는 최소한의 윤리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는 하지 않겠어"라는 자세이다. 그 최소한이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 - P51

팜유는 어떨까?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밀림이 파괴되면서 오랑우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죽는다. 그렇다면 비건이 팜유를 먹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을까? 이렇게 확장하다 보면 끝도 없어진다. 그래서 비건에게만 모든 부담을 지우고 완벽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 - P53

비건을 해보면 한 사회의 편견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를 발견한 기분이 든다. - P57

철학자 레비나스는 얼굴의 윤리학을 말한다. 그는 "얼굴은 하나의 명령"이라고 했다. 얼굴은 그 자체로, 언어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죽이지 마라, 형제여, 자매여..." 모든 열굴은 그렇게 말을 한다. 사형대에서도 사형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처형을 한다. 우리는 얼굴 있는 것을 먹는 꺼림칙함을 본능적으로 안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식탁에 생선을 내어놓을 때 얼굴 부분을 가렸다고 한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성찰하게 해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한때 얼굴이 있었던 생명이라는 걸 환기해주는 성찰의 효과. - P64

인간끼리 소유하는 제도가 노예제였다. 이 부적절한 소유 관계는 철폐되었다. 이제 그 어떤 근로자도 사용자의 소유가 아니라 상호 계약 관계에 있을 뿐이다. 왜 동물은 여전히 사유재산이 될 수 있을까. 동물은 아직도 노예, 또는 노예보다도 못한 물건이다. 농장의 소는 식품, 펫숍의 강아지는 반려상품, 보신탕의 개는 보양상품, 아쿠아리움의 돌고래는 관광상품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농장의 돼지는 식품노예고, 관광지의 당나귀는 운반노예, 펫숍의 고슴도치는 반려노예이다. - P68

고기 먹는 걸 규제한다고?! 당신은 여전히 개인영역 침해라고 버틸지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음식은 개인 취향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식탁 위의 개인주의를 곧잘 침해한다. 채식하는 사람들에게 시비거는 장면을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지 모른다. 절대 그냥 놔두거나 넘어가는 법이 없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사견이나 소감을 피력하거나, 핀잔을 주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한 농담을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들이대며 충고를 하려고 한다. 덮어놓고 못마땅함을 표현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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