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소주를 마시며 내 입맛을 무진장하게 확장시켜왔다고 자부한다. 미각적 도약을 거듭한 결과 이제 개고기에서 삭힌 홍어까지 못 먹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게 내가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날로 늘려나간 것과 반대로 우리 어머니는 어느 날 돌연 금욕적인 종교에 입문해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날로 줄여나갔다. 그토록 즐기던 육고기는 물론이고 생선이나 해물조차 거부하는 순수한 채식주의자가 되신 것이다. 어머니는 오래 전의 나처럼 고기 한 점, 멸치 한 마리라도 국물에 들어가면 귀신같이 알고 뱉어내신다. 아마 내가 어머니로부터 예민한 미각을 물려받은 것이겠지만, 그 유난한 편향이 시간상 거꾸로 진행된 탓에 마치 어머니가 나의 어릴 때 미각을 물려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도 어머니는 종종 내가 편식하던 시절에 저질렀던 부끄러운 짓 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내며 기쁨에 젖곤 하시는데, 그 말씀들 속에는 그토록 까다로웠던 딸의 귀족적인 입맛이 짐승의 수준으로 타락한 데 대한 은근한 비난이 숨어 있는 듯도 하다. - 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