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아주 좋아. 내 관심사는 이거다.
단편소설을 써야지. 문제는 ‘계획‘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든다는 사실이다.
비가 내린다.
"아, 삶은 얼마나 느리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아, 아폴리네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나는 얼마나 지루한가.
그냥 도망쳐버릴까? 어쩌면. - P59

빗줄기, 비가 퍼붓는다. 점심이 늦춰졌다. 햇살을 머금은 비로 불투명해진 창문. 아름다워졌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화를 잘 내고, 태양에 매혹된 눈부신 비, 전날 풀이 베였다는 데 위안을 느끼는잔디밭, 이 자리에 있다는 데 잠시나마 위안을 느끼는 나……
"비가 온다, 참 멋지네, 사랑해, 우린 집에 있자, 이런 늦가을 날씨에는 우리끼리 있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을 테니."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카르코의 시가 맞을 거다. <집시 여인과내 사랑>.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집에 있으리란 건 확실히 알겠다. - P60

담배 파이프가 손에서 미끄러져 창가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파이프가 우연히 심연의 가장자리에 멈추기를 기다렸다. - P62

프루스트를, 스완의 열정을, 행복해하며 다시 읽는다.
진정한 행복은, 진실과 산문이 일치하는 순간처럼 드문 일이다.
나는 문학에서 발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포크너를 읽으며 한 번도 진짜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 이유다. 그가 만들어낸 괴물들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 눈에 대서양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마지막 문장이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 혼자 쓸데없는 말놀이를 하는 대신 단편소설이나 써야겠다. - P77

마지막으로, 넓은 잔디밭과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주의 깊게…… 불안에, 아니면 마약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수백 명이 있고, 신경이 쇠약해진 사람들이 올 겨울에, 내년 여름에 이 풍경을 바라볼 것이다.
병은 정말 최악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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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글쓰기란 우리가 글을 쓴 뒤에 무엇을 썼는지 발견하려고 애쓰는 일이라고 한다. 마치 발밑에 있는 바닥이 금이 가는 걸 느끼듯이 말이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시작하는 여타의 일들과 다를 게 없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 운전을 하는 일, 어머니가 되는 일, 그리고 살아가는 일처럼 말이다. - P11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책을 사고파는 국제적 시장이 존재하지않았다. 오랜 문화생활이 누적된 도시에서 책을 사는 일은 가능했지만 청년기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직 책을 살 수 없었다. 자료에 따르면 왕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갖추려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살 수 없는 책은 몰수했다. 탐나는 책을 손에 넣으려면 목을 자르거나 수확물을 쓸어버려야만 했던 때도 나라의 숭고함이 사소한 양심의 가책보다 중요하다며 명을 내렸다. - P13

책은 시간의 시험을 뛰어넘으며 장거리주자임을 입증했다. 우리가 혁명의 꿈에서 혹은 파국적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책은 거기에있었다.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하듯이 책은 숟가락, 망치, 바퀴, 가위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한번 창조된 이후로 그보다 나은 게 등장하지 않았다. - P16

책은 오래전에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어느 전쟁에서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 우리는 귀중한 창조물이면서 한 줌의 공기 같은 말을 지켜내고자 투쟁했다. 혼돈에 의미를 부여하고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명한 픽션들을, 무지라는 견고한 바위를 거세게 긁어대는,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는 늘 잠정적인 지식을 말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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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려는 마음이 시작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정말 고통스러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나를 감시한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다른 짐승을 감시하는 짐승이다. - P19

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틀림없이 1958년의 어느 행인이 정신분열로 이렇게 천천히 추락하는 걸 막아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있을 것이다. - P43

내 전문 분야는 ‘그는 잔에 커피를 부었다. 커피에 우유를 넣고 설탕을 넣고, 어쩌고 저쩌고’인 것 같다. 서글픈 일상, 프레베르, 뷔페, 소중하디 소중한 이 시대? 사르트르, 아무도 착하거나 악하지 않다. 하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지루함, 날개 아래로 고개를 감춘 아름다운 사랑, 그것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
왜 알려고 하나 등등.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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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제
(순진하게) 그래, 그런 것 같아…… 술기운이 배에서 올라오는군…....


아니, 술기운이 자네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네. 도대체 이 근처 어디에 늪지대가 있단 말인가? 우리 고장이 소(小) 카스티야‘라고 불리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린가? 너무 건조한 지방이라 말이야!

베랑제
(몹시 귀찮고 피곤한 듯) 그럼, 난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지? 혹시 그놈이 자갈밭에 숨어 있었나……?
아니면 마른 나뭇가지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자네처럼 관념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추리는 대개 오류로 끝나지. 그 점을 알아 두게! 그런 역설들이 지겹지도 않은가……? 자네 말은 진지하지가 않아, 그럴 자세도 능력도 없지만 말이야! - P31


(베랑제에게) 이봐, 자네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생각하게, 그럼 자네도 존재할 걸세. - P38


(베랑제에게) 자넨 본래부터 허풍쟁이였군. 거짓말쟁이라고. 인생에 흥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베랑제
누구?


자네의 귀여운 직장 동료 말일세. 방금 이곳을 지나갔던 아가씨. 자네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어.



(베랑제에게) 자넨 그녀에게 이런 처량한 모습을 보여 주길 원치 않았지. (베랑제의 제스처) 바로 이점이 자네가 모든 일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야.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데이지가 술주정뱅이에게 매력을 느끼길 기대하나?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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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올라오면서 쇠약해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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