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정말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하나. 나 자신만을 위한 소비는 하지 않는다
둘. 생필품은 산다
셋. 누군가를 만날 때는 쓴다
넷.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 P17

반소비주의에 대해 공부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건 온전한 내 생각일까? - P53

# 반소비주의
반소비주의는 소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여러 갈래가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소비 형태에 대한 의문을 공통적으로 제기한다. 반소비주의는 현재의 소비 형태가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고, 부유한 국가의 소비가 저개발국과 그 사회의 빈곤 문제에 기여한다고 본다.
특히 과소비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소비자‘라는 말에 부정적이다. 반소비주의자들은 특히 광고 등의 마케팅을 열렬히 반대하며, 박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뜻한다. 미국, 유럽 등은 박싱데이에 특별할인 행사를 많이 한다)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로 정하는 운동을 만들고 전파하기도 한다. 이들은 소비가 사회와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것을 권장한다.
『일자리의 미래』의 작가 엘렌 러펠 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미 1,600 여 명의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90퍼센트보다 더 많은 부를 거머쥐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파도가 밀려오면 멋진 서퍼들은 그곳을 즐기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그렇지 못한, 서핑보드가 없는 사람들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빈부 격차가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이다.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소비 문법을 써내려 갈 수 있으면 좋겠다. - P54

"내일 당장 없다고 죽는 건 없다." - P71

조금 뻔하지만 그럴 때마 다 내가 하는 루틴이 몇 가지 있다.

글을 쓴다.
체중계에 올라간다.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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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독창성은 그러한 전통들을 주어진 그대로 엮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에 맞춰 어느 한 부분이 빠지거나 자리바꿈할 경우 전체가 무너질만큼 꼭 필요한 부분을 골라 적절히 배열하는 플롯에 있다. 플롯의 완벽한 통일성이야말로 호메로스의 문학성에서 으뜸가는 가치다. 자구나 문장의 반복은 독자가 아니라 청중을 위해 하루에 일정량의 시행을 읊었던 음송 시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P22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가 ‘민족시‘라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감히 세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 P23

그가 다가가는 모습은 마치 밤이 다가오는 것과도 같았다. - P27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영웅 아가멤논이 마음이 언짢아서 일어섰다. 그의 심장은 노여움으로 가득 차 검게 물들었고 그의 두 눈은 번쩍이는 불꽃과도 같았다. - P29

이렇게 말하고 크로노스의 아들이 검은 눈썹을 숙이니 왕의 머리에서 신성한 고수머리가 흘러내렸고 거대한 올림포스가 흔들렸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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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기억에 완전한 지식과 완전한 문학이 저장될 순 없지만, 책은 모든 이야기와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 소크라테스가 예언했듯이, 우리는 무식하면서 거만한 자가 되었다. 혹은 글자 덕분에 세상에 없던 크고 똑똑한 뇌를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의견을 지닌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창안한 다양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나머지는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며,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 쟁기와 검은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사뭇 다르다.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 - P154

글로 쓰인 말이 죽은 기호이자 환영이며 구술성의 사생아일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글로 쓰인 말에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안다. 이 이야기를 소크라테스에게 들려주면 좋으련만. - P156

레이 브래드버리 (Ray Bradbury)의 화씨 451은 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제목으로 삼은 소설이다. 그는 미래파적 환상을 위해 그다지 미래파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 P156

반역자들은 추적의 대상이다. 그들은 도시 주변의 숲이나 길거리, 오염된 강변이나 버려진 기찻길로 도망친다. 그들은 유랑자로 행세하며 계속해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책을 모조리 외워 머릿속에 담아다니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이 책을 지녔으리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기억하고 싶은 책이 있어 그렇게 했을 따름이다. 우리는 하나씩 만나기 시작하여 함께 여행하고 이 조직을 만들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구술을 통해 책을 전파할 것이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책은 다시 쓰일 것이다. 사람들은 한 명씩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낭송할 것이고 또 다른 암흑의시대가 올 때까지 책을 출판할 것이다. 암흑의 시대가 다시 오면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이 도망자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목격하고 자신의 눈속에 책을 간직한 채 기나긴 탈주의 길을 걷는다. - P156

중세 유대인 사회에선 배움의 때가 오면 성대한 기념식을 했다고 한다. 공동체의 과거와 기억을 아이에게 책으로 가르치게 되는 순간에 말이다. 오순절이 오면 스승이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히브리어 알파벳이 적힌 칠판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읽으면서 학생이 따라 읽게 했다. 그러고는 칠판에 꿀을 바르고 학생에게 그 꿀을 핥게 했다. 그것은 말이 학생의 몸에 파고 들어가는 상징이다. 또 껍질을 깐 찐달걀이나 파이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달콤하기도 하고 짜기도 한 알파벳을 맛보며 글자는 학생의 일부가 되어갔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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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수세기 후 스페인 시인 미겔 에르난데스(MiguelHernández)가 말에 대한 자신의 강박을 밝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말을 사랑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말이 지닌 힘, 말이 잘못 쓰일 수도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했다. - P149

헤시오도스는 더 이상 귀족정치의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전쟁에서 모두의 노력으로 얻은 것을 아가멤논이 혼자 챙긴다며 비난한 못생긴 테르시테스의 후손이다. - P150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말하기를, 수 세기 전 주사위, 체커, 숫자, 기하학, 천문학, 문자를 창안한 이집트의 신 토트가 이집트의 왕을 찾아가 그 발명품들을 신하들에게 가르치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소크라테스의 말을 옮겨본다. "그러자 이집트 왕 타무스가 글쓰기가 어떤 효용이 있냐고 묻자, 토트가 대답했다. ‘왕이여, 이 지식은 이집트인들을 더욱 현명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이다.‘ 그러자 타모스가 말했다. ‘토트 신이시여, 글의 아버지로서 그것의 장점을 말하시는군요. 글쓰기를 배우고 기억을 소홀히 하면 망각이 유발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책만을 신뢰하여 외부로부터 기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글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지혜의 외연입니다. 진정한 교육 없이 책을 이해하게 된다면 현자가 아니면서 현자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 P152

소크라테스는 대담자가 승복한 상황에서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글로 쓰인 말은 제가 똑똑한 양 그대와 얘기하는 것 같지만,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뭔가를 물어보면 글은 그저 했던 말을 되풀이할 따름이다. 책은 스스로를 변론할 능력이 없다" - P152

2011년 사회심리학 선구자인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는 한 실험에서 지원자들의 기억력을 측정했다. 그들 중 절반은 보존할 데이터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몰랐다. 그런데 정보가 컴퓨터에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정보를 익히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런 기억의 이완 현상을 ‘구글 효과‘로 부른다. 우리는 원 데이터가 아니라 그 데이터가 있는 위치를 기억하려고 한다.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그러나 이는 거의 대부분 우리의 기억 밖에 저장되어 있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게으른 기억은 정보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주소록이 되는 건 아닌가? 알고 보면 우리가 구술 시대의 기억력 뛰어난 선조들보다 무지한 건 아닌가? - P153

플라톤은 책에 대한 스승의 평가절하를 근거로 글을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비판을 그의 책을 통해 읽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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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을 둘러본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러시아산 가죽 소파에 앉은 마리아가 텅 빈 정원을 향해 열린 쪽문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한 손을 라디오 위에 올린 채, 미동 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게레가 자신을 보지 않는 그녀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마리아가 꾸민 태도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무방비한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것은 드문 일이면서, 그와 함께 있을 땐 짓는 법이 없는 표정이었으므로 어쩌면 비밀스러운 모습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는 좀더 슬프고 상념에 젖어 보였다. 공허한 모습이었다. - P122

걸어가면서 앞치마를 벗어 벽난로 모서리에 걸어둔 그녀가 벽장에서 유리잔 하나와 식전에 주로 마시는 드라이 마티니 한 병을 꺼내 한 잔 가득 따랐다. 상념에 잠겨, 곧 한 잔을 더 따랐다. 그녀는 잔을 들고서 가스레인지로 다가갔다. 마지못해 한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고서 나무 스푼으로 냄비를 휘저었다. 그녀의 시선이 벽을 따라 못으로 고정해둔 할인마트의 거울로 이어지다,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차갑고 조금은 적대적인 얼굴로 자신을 대면했다. 스푼을 내려둔 손이 턱으로, 머리카락으로 올라갔다. 간단한 동작으로 풍성하게 볼륨을 만들어보았지만, 거기엔 눈에 띄는 흥미도 열의도 없었다. 꼼짝하지 않고 아득히 머물러 있는, 권태와 무관심 그 자체인 얼굴이었다. 그러므로 오만한 눈꺼풀 아래 맑고 단단한 눈에서 너무나 둥글고 응축된 눈물이 아무런 전조 없이 연달아 솟아올랐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은 괴로움이 아닌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귓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 P131

게레는 어디선가 두려움에는 냄새가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 그건 진실일 거였다. 그리고 어쩌면 개가 그에게서 그런 냄새를 맡은 게 아닐까? 밤에, 홀로 침울한 방에서 옷을 벗으며 게레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팔과 어깨에 코를 갖다 대보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피부에 서 식별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치의 냄새 였다. 낮엔 그 저주받은 직위를 거부한 것 때문에, 저녁엔 그걸 받아들이려 했다는 이유로 그는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게다가 이 수치심이란 것은 냄새는 물론이고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 P157

그는 등나무집 문 앞의 고리버들 의자에 일광욕을 하며 토요일과 일 요일을 보냈다. 속옷 바람으로 때때로 《레키프》나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사둔 세네갈에 관한 책 따위를 던지며, 휘파람으로 그녀와 동시에 종적을 감춘 개를 불렀다. 이 번 주말엔 죄다 바다로 몰려간 모양이었다. 촌티 나는 의자에 앉아 태양이 흉측한 구릿빛 문양을 새겨넣도록 내 버려둔 채 오지 않는 개를 부르는 사람은 이 동네에서 게레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는 이 불운 속에서 어떤 위안을, 심지어 기쁨까지 느끼고 있었다. - P159

그는 천천히 발을 돌렸다. 순간 밤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미풍에 흔들리는 밀밭, 광재 더미에 뒤섞인 운모의 희미한 빛 같은 것들이. 열흘 만에 처음으로 그는 기분이 좋았다. 터무니없는 느낌이지만 확실히, 어디에선가 그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정의가 혹독하고도 분명하게 응답을 보내온 것 같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저 우연히 골칫거리에서 벗어난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꼭 운명이 그의 편을 들어주기라도 한 듯이, 내면의 누군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어깨를 펴주는 것만 같았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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