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란 얼마나 기이한가, 또 얼마나 부당한지. 인간은 죽을 때까지 외모만 보고 자신을 판단하는 타인을 견뎌야 한다. 생김새가 평범하면 평범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어쩌면,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외모를 갖게 되는 건 아닐까. - P21

그때 이디스는 이 생각의 흐름 아래서 또 다른 흐름을 발견했다. 드디어 혼자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그 꿈이 좌절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만의 작은 아파트를, 생기 넘치는 거실을, 단 한 명의 하인과 열쇠를, 책 한 권을 들고 난롯가에 앉은 저녁 풍경을 그려 보았다. 이제 아버지의 편지를 대신 쓸 일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갈 일도 없으며, 집안 가계부를 작성할 일도, 아버지와 함께 공원을 산 책할 일도 없다. 이제야 비로소 기르고 싶었던 카나리아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디스로서는 허버트와 캐리, 찰스, 윌리엄이 저마다 돌아가며 어머니를 맡아 주기를 바랄 수 밖에. 그녀는 가족의 뻔뻔한 태도에 충격받았으나 스스로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P27

케이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를 오해했다. 사실 가족 모두가 레이디 슬레인을 – 그녀의 상냥함과 이타심, 공적 활동 까지도 – 오해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내도 여전히 타인을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케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이디스만 신이 나서 속으로 방방 뛰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미치지 않았고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조용히 캐리와 허버트의 간섭을 저지함으로써 그들을 궤멸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즐거웠다. 부드럽게 양손을 맞잡고 속삭였다. "잘한다, 어머니! 계속해요!" 일말의 분별력으로 함성을 자제할 뿐 이었다. 새로 발견한 어머니의 말솜씨도 눈부셨다. 레이디 슬레인은 대화할 때 말을 삼가는 편이고 의견을 내놓는 일도 없는 데다가, 뜨갯거리나 자수품 위로 머리를 숙이고 표정까지 감춘 채 가끔 "그러니?" 하고 대꾸할 뿐이라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의 알 수 없었으니, 그런 말솜씨는 그날 아침에 연달아 이어진 놀라움 속에서도 적잖이 놀라웠다. 이디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다정하고 세심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내심 자기만의 세상을 품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것을 관찰하고, 눈치채고, 비판하고, 묻어 뒀을까? 레이디 슬레인은 바구니를 뒤적이면서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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