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의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Gorgias)는 이렇게 썼다. "말은 강력한 군주다. 아주 작고 보이지도 않는 몸으로 가장 신성한 일을 한다. 두려움을 없애고, 고통을 없애고, 기쁨을 느끼게 하며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그리스인의 생각은 복음서에도 나타나는데, 아주 아름다운 구절이다. "말씀 한마디면 내 몸이 나을 것입니다." - P262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서 ‘깜둥이’라는 욕을 지워버린 교수들도 알고 있듯이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동 청소년 도서는 복합적인 문학작품인가, 행동 지침서인가? 수정된 허클베리 핀은 어린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중요한 교훈, 즉 거의 모든 사람이 노예를 ‘깜둥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고 그런 억압의 역사로 인해 그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책에서 부적절해 보이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고 해서 청년들이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쁜 생각을 인식할 수조차 없게 만들 수도 있다. 플라톤의 생각과 달리 사악한 인물들은 아이들이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하는 전통적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이다. 언젠가 아이들은 악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그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부터 대량 학살을 저지른 폭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 P269
미국의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는 "교화적인 책만 읽는 사람은 안전하지만 희망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좋은 소설을 읽게 된다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책을 읽는 경험의 일부다. 안도감보다는 안절부절 못함이 훨씬 더 교육적이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문학을 성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문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세상을 설명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젊은이들이 책을 내던지고, 페루 작가 산티아고 롱카글리올로(Santiago Roncagliolo)가 말하듯, 수많은 사람을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는 플레이스테이션 앞으로 달려간대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 P269
책이 위험하고 살인적이며 불안거리라고 상상할 수도 있지만, 책은 훼손되기 쉬운 물건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는 사이, 어느 도서관이 불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판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팔리지 않는 책을 파쇄하고 다른 책을 찍어내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홍수로 인해 귀중한 책들이 물에 잠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물려받은 책을 컨테이너에 폐기한다. 벌레 군대가 무한한 우주 같은 선반을 돌아다니며 턱을 벌려 종이 터널을 뚫고 알을 낳고 있다. 누군가는 권력을 지키는 데 문제가 되는 책을 제거하고 있다. 불안정한 지역에서는 파괴적 약탈이 계속되고 있다. 또 부도덕하거나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책을 불 태우기도 한다. - P275
검열 당국이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불태우기로 결정했을 때, 조이스는 반어적인 말투로 그 불길 덕분에 연옥을 더 빨리 지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즈음 야만적인 나치는 독일의 수십 개 도시의 광장에서 ‘분서‘ 작전을 수행했다. 무수히 많은 책이 트럭에 실려 옮겨진 뒤 파괴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책을 불 속에 집어 던졌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새로운 지도자들이 ‘타락했다‘고 판단한 5500명 이상의 작가의 작품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는 유대계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1821년 했던, "책을 태우는 곳, 그곳에서 사람을 태우게 될 것이라"라는 예언의 전조였다. 이 유명한 구절은 『알만조어(Almansor)』라는 극작품에 있는 글인데, 이 작품에서 불에 타는 책은 코란이고 방화범은 스페인의 종교재판관들이다. - P276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은 그들의 보물 창고가 조직적으로 약탈되고, 불타고, 무너져가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용서할 수 없는 시대착오 속으로 나치가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암울한 시기에 바흐친을 모방하며 허무주의와 블랙 유머의 희생자가 된 지식인이 보이는 것 같다. 강박적 흡연자였던 그 러시아 작가는 매일같이 퍼붓는 폭격에 두려워하며 아파트에 갇혔다고 한다. 그에겐 담배가 있었지만 말아 피울 종이가 없었다. 결국 그는 10년 동안 공들인 에세이 원고로 담배를 말아 피웠다. 한 장, 한 장 피우다 보니 원고의 상당 부분이 없어졌다. 모스크바에 또 다른 사본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전쟁이 나면 소실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폴 오스터가 각본을 쓴 매혹적인 영화 「스모크」에서 윌리엄 허트가 전하는 일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들이라면 이 생존 이야기의 절망적 유머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결국엔 그들이 지키고 있던 책들은 공기, 연기, 입김, 신기루로 변하고 있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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