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없이 누워 있는 시신 위에 위그는 그녀의 임종 직전에 기다랗게 땋아 놓았던 그 머리카락을 잘라 놓았다. 죽음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인가? 죽음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만, 머리카락만은 그대로였다. 눈, 입술, 모든 게 흐려지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변색조차 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통해서만 살아남는 것이다! 벌써 오 년이 흐른 지금, 죽은 아내의 땋은 머리는 그렇게나 소금기 있는 눈물을 쏟았는데도 거의 바래지 않았다. - P14
위그는 항상 그 큰 응접실에서 아내의 머리카락을, 여전히 그녀의 존재로 남아 있는 그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보려고 지금은 소리가 나지 않아 그저 놓여 있을 뿐인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 그건 잘린 머리채, 부서진 사슬, 난파에서 건져낸 밧줄이었다! 머리카락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모발을 부식시키고 빛이 바래게 하는 습한 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는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순진하다고 할 수 있을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냈다. 그는 투명한 크리스털 보석상자 안에 땋은 머리를 그대로 넣어두고 매일 소중히 섬겼다. 그에게도, 그리고 주위에 침묵하며 존재하는 것들에게도 이 머리카락은 주변의 그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고 집 안의 영혼인 것처럼 보였다. - P19
평온해진 그는 덧창과 문을 닫고 보통 때처럼 땅거미가 질 무렵의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가랑비가, 가을 끝자락에 자주 오는 비가, 수직으로 내리는 가는 비가, 훌쩍거리며 물을 엮어내고, 대기를 시침질하며 평평한 운하를 바늘로 뒤덮어버리는, 끝없이 펼쳐지는 축축한 그물에 걸린 새처럼 정신을 사로잡고 얼어붙게 만드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 P20
기묘한 방정식이 성립되었다. 죽은 도시는 곧 죽은 아내임이 틀림없었다. 그가 지닌 엄청난 슬픔의 감정이 그런 환경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견뎌낼 수 있는 삶은 이곳에서의 삶뿐이리라. 그는 이 도시에 본능적으로 왔다. 다른 곳에서의 세상은 어찌나 떠들썩하고, 속닥거리고, 축제를 부추기고, 수천 개의 소문을 엮어내는지. 그는 무한한 고요와 더 이상의 살아간다는 느낌을 줄 수 없을 정도의 단조로운 삶이 필요했다. 육체적 고통 앞에서 왜 침묵해야 하고, 병실에서는 왜 숨죽여 걸어야 하는가? 왜 소음과 목소리가 붕대를 헤쳐 놓고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 같을까? 정신적 괴로움에는 소음도 고통이 된다. 생기 없는 운하와 길거리가 풍기는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위그는 마음의 고통을 덜 느꼈고, 죽음을 좀 더 부드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운하를 따라 나타나는 오필리아의 얼굴을 한 죽음을 다시 찾아내고, 멀리서 들리는 가냘픈 종소리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더 나은 상태에서 죽음을 다시 마주하고 그것에 더 귀 기울일 수 있었다. - P23
그는 진지하게 오랫동안 자살을 생각했었다. 아! 그 여인을 그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를 향해 있다! 그가 항상 쫓아다니던 그녀의 목소리는 지평선 끝에, 너무나도 멀리 잠겨 있다! 그 여인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그녀를 전적으로 따르게 하고 온 세상으로부터 그를 분리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해의 열매처럼 입안에 영원히 재의 맛만을 남기는 사랑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 P26
위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슬픈 기분으로 노트르담 성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회상을 끄집어내 방금 보고 온 무덤의 형태로 만들고, 그것에 다른 얼굴을 넣어 상상해보려 했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던 망자들의 얼굴은 점차 변질되고 유리를 씌우지 않아 분말이 날아간 파스텔화처럼 흐릿해진다. 그렇게 우리 안에 간직된 망자들은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 P28
그가 묵묵히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유품으로 간직해둔 아내의 머리카락에 키스하러 가거나 몇몇 초상화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도 이제는 죽은 아내의 이미지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닮은 살아 있는 그 여인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두 여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치되었다. 마치 운명이 그를 동정하여 그의 기억에 지표를 제시하고 망각을 거스르는 공범이 되어 시간이 흘러 이미 누렇게 변질 되어 희미해진 판화를 새로운 복제본으로 대체하는 것 같았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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