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괴로울수록 필사적으로 즐거운 척하려고 한다는 말이 「앵두」에 있었다. 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여서 사는 게 슬퍼질 때는 반대로 가볍고 즐거운 스토리를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에휴, 이런 부분에서는 한숨을 길게 쉬어 주어야 한다. 이런 진심도 몰라주고 이제 다자이도 경박해졌다며 사람들이 자기를 하찮게 여긴다는 문장을 읽다가 아찔해졌다. 한없는 슬픔과 절망에서 나오는 귀여움이어서. 뭐랄까… 처절한 귀여움이었다. 그렇게까지 귀여우려면 얼마나 슬퍼야 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술을 마시는 것도 그런 걸까? 괴로울수록 필사적으로 즐겁고 싶어서 마시고, 사는 게 슬플수록 가볍고 즐겁고 싶어서 마시고.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걸까? 그러다가 가끔은 귀여워지기도 하고 그러는 걸까? 물론 귀여움을 알아봐 줄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 P103
도로시 파커는 불우한 삶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신랄한 위트로 유명했던 20세기 미국 작가다. 국내에 번역된 게 없어서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다.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나 그녀가 남긴 말들은 좀 알고 있는데, 이게 꽤 웃기다. 이를테면 이런 거. 자기가 죽으면 묘지에 이렇게 새겨 달라 했다고 한다. "이 글자가 보이면 당신은 너무 가까이 온 거다"라고. 하하하. 정말 이렇게 웃었다. 웃기지 않나? 죽어서도 자기에게 너무 붙지 말라고 경고하는 사람이라니. 나는 이게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 아니라 웃으라고 한 말 같고,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그렇다. - P112
‘도로시 파커‘들과 도로시 파커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고 그러는 건 딱 질색이지만 도로시 파커의 이 시는 읽고 싶다. 술마시고 춤추고 웃고 거짓말하고 사랑해라, 밤새 휘청거리며, 내일이면 우린 죽을 테니까! (그런데 아, 안 죽었네?) - P117
그렇다. 좋은 소설은 이런 것이다. 읽는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 상처일 수도 있고, 깨달음일 수도 있고, 소설의 무엇을 따라 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의 인물처럼 옷 을 입거나, 말을 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먹고 마시기. 나는 그래서 늦여름에,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곧 이 여름이 끝날 거라는 작은 희망을 붙들며 버티고 있는 이 계절에 진 리키를 마신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그들이 진 리키를 마시기 때문이다. - P138
여름은 좀 그렇지 않나. 어떤 일이 벌어질 것만 같고, 벌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저질러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여름은 뜨겁다.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 다. 이열치열이라지만 이 소설은 뜨거운 소설이 아니다. 서늘하게 뜨겁다. 아니, 그보다는 온화하게 뜨겁다고 해야겠지. 나는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와 진 리키를 좋아한다.
『책 읽어 주는 여자』라는 프랑스 소설이 있다. 남다른 목소리와 책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자산으로 맞춤형 책 읽기를 해 주는 여자가 나온다. 얼마 전, 칵테일을 골라 드리며 생각했다. 나는 술 읽어 주는 여자인가? 직업으로 할 만큼 소명 의식이 있다든가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이런 인용문과 함께 시작된다. 여자는 누구나 뭔가 정신 나간 듯한 구석을 지니고 있고 남자는 누구나 뭔가 우스꽝스러운 구석을 지니고 있다고. 자크 라캉이 한 말이라는데, 꽤나 그럴듯해 보인다. ‘A는 B이고, C는 D이다‘ 같은 문형은 단어의 자리를 바꿔도 무리가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C는 B이고, A는 D이다‘로, 그러니까 이렇게. 남자는 누구나 뭔가 정신 나간 듯한 구석을 지니고 있고 여자는 누구나 뭔가 우스꽝스러운 구석을 지니고 있다, 라고.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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