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도 없이, 부루퉁해서 눈물로 이어진 장면들을 기억한다. 그 당시 P.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에게 무엇을 원했는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어찌 되었든 내 욕구와 내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했던 임신 중절을 어쩌면 희생처럼, ‘사랑의 징표‘처럼 그가 인식하기를 강요했을지도 모르겠다. - P46
몽도르에서 보낸 일주일을 생각할 때마다, 암흑으로 뒤바뀐, 눈부시게 내리쬐던 1월의 태양과 눈을 떠올렸다. 원초적 기억은 우리에게 과거의 삶을 모두 어둠과 빛, 낮과 밤이라는 기본적인 형태로 보게끔 하기 때문이리라. - P48
12월 31일, 몽도르에서 파리까지 나를 데려다주기로 한 어느 가족의 자동차를 탔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부인이 잠깐 다락방을 임대했던 여자가 유산한 얘기를 했다. "밤새 신음 소리를 냈지." 그 여행에 대해서는 비가 내리던 날씨와 이 문장 하나만이 남았다. 이 문장은 이런 부류에 속했다. 끔찍하면서도 안심하게 하는, 다소 특징 없는 그 문장들은 내 차례가 되어 일을 치를 때까지, 마치 의지할 무언가처럼 나와 함께하며 나를 시련으로 이끌었다. - P49
여자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검경을 유일하게 가져올 수 있는 다음 수요일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여자는 내게 비눗물이나 청소용 세제 같은 것이 아니라, 탐침관을 넣을 터다. 비용은 400프랑이며 현금으로 줘야 한다고 거듭 확인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해 두려고 했다. 친근감 따위는 없었다. 말을 놓지도 않았다. 게다가 신중했다.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여자는 핵심만을, 마지막 생리 일자, 비용, 시술 방식에 대해서만 말했다. 이렇게 순수하게 물질적인 방식은 낯설지만 안심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감정이나 도덕의 문제는 아니었다. 경험상 P.-R. 부인은 딱 필요한 대화만 해야 시간 낭비나 혹은 생각을 바꾸게 할지 모르는 눈물과 감정의 토로를 피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 P51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 이 문장, 이 사건을 따라 늘어서 있는 다른 문장들처럼 지극히 평범할 뿐 아니라, 생각 없이 큰 소리로 내뱉었다. 이 문장은 내 안에서 매번 폭발해서 터져 버린다. 아무리 반복해 봐도, 사회 정치학적 분석도 그 폭력성을 완화할 수 없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라고 고함을 퍼붓는 고무장갑을 끼고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를 순간적으로 본 듯싶다. 그리고 아마도 당시 프랑스 전체를 웃게 했던 페르낭 레이노의 촌극에서 따왔을 이 문장은 계속해서 세계와 나의 계급을 나누고, 마치 몽둥이라도 사용한 듯 의사들을 노동자들고 중절한 여자들에게서 분리시키고, 지배자들과 지배받는 이들을 분리한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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