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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 제공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내딛는 한 걸음이 될 책”
공공인류학은 공공영역에서 중요한 문제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을 위해 실천적으로 모색하는 분야라고 합니다. 일제강제노동 희생자들은 일본 훗가이도 지역으로 강제 징용되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한국인 희생자들입니다. 이 책은 실천인류학의 개척자 정병호 교수님의 책으로 일제 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 30년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귀한 유작으로 단순한 강제노동 발굴기의 기록은 넘어 한국, 일본, 재일동포와 대만 청년들이 함께한 동아시아공동워크숍등 정병호 교수가 실천한 화해와 시간의 연대를 담은 뜻깊은 책으로 기대가 됩니다.
젊은이들은 친구가 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바다 건너 만나러 다니며 유학도 갔다. 사랑하고 결혼도 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시민운동가, 연구자, 교수, 작가가 됐으며 한일 관계를 비롯한 동아시아 평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중이다. 지금은 그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이 일에 합류하고 있다. ---p.18
한일 양국에 있는 민간인들의 노력 속에 '홋카이도 강제 징용자'들은 광복 70년 만에 유골이 되어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유골 115구는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도쿄, 교토, 히로시마, 부산을 거쳐 파주 서울시립묘지에 꾸며진 '70년 만의 묘역'에 안치되었고 이 책은 그 지난 과정을 따라갑니다.
30년간 8차례 발굴, 115구 귀환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 시민 3천명이 현장에서 쓴 희망의 역사!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고향인 홋카이도로 귀향해 중이 된 도노하라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한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 도노히라를 알게 된 건 오가와 선생과 그의 부인인 사나에 선생 덕분이었습니다. 현지 조사를 할 때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훗가이도에 가게 되었고 조 선생이 아이누 사람인 오가와 선생과 사나에 선생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천시받던 아이누 장례를 잘 치러준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숲속에 묻힌 유골을 찾아내 불교식으로 화장해 모시고 있었는데, 그 대상이 조선인이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댐 공사 때문에 끌려와 그곳에서 모질게 노동하다가 사망했습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일본을 찾은 정병호 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도노하라스님의 사연을 듣고, 그와 함께 유골 발굴 작업에 나서기로 결심했지만 시간이 필요했고 그는 교수가 된 후 1997년 학생들과 함께 홋카이도로 찾아 유골 발굴 작업에 나섰습니다.
정병호 교수는 1997년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을 조직해 일본 홋카이도 일대에 묻힌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에 나섰다. 그는 2015년엔 한국 대표로 희생자 유골 115구의 '70년 만의 귀향'을 이끌었다. 정 교수를 기리기 위해 국내외 동료와 제자들이 힘을 합쳐 정 교수가 남긴 구술녹취록을 바탕으로 '긴 잠에서 깨다'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권 유린 실태·강제노동 희생자 규명 첫 시도“

"여러분 모두 좋은 뜻으로 잘하고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셨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범죄 현장이자 그 범죄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증거로서 의미가 될 만큼은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나도 유골 문제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논문 쓰는 게 급합니다. 빨리 논문을 쓰고 한국에서 교수가 되면 학생들과 다시 오겠습니다." 그 약속을 1989년 가을에 했고 약속을 지킨 것은 1997년 여름이었다.---p.49
여러 학계 사람과 시민, 지역 사회까지 참여해 힘을 불어넣은 단체로, 그가 꿈꿨던 ‘하나’가 되는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 그 자체였습니다. 이 책은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화합과 평화였습니다. 정병호 교수는 슈마리나이 현장에서의 유골발굴을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 재일동포와 대만의 청년들까지 동아시아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숙연해집니다.
”부드럽고 약한 사람들 사이의 고리가 결국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좁고 야트막한 구덩이 속에 관도 없이 쪼그린 자세로 꺾여 들어가 있는 주검. 두개골 파열의 흔적이 역력한 주검. 나무뿌리에 뒤엉킨 채 지나간 세월 속에 삭아버린 뼈마디” 1997년 7월, 유골 네 구가 출토됐다. 일본 혹한의 땅 홋카이도 지방 슈마리나이 인공호수 인근, 일본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향해 가던 때인 1938~1943년 댐 공사가 이뤄지던 현장이었다.
법의학자들이 말할 때 그 어떤 죽음에도 이유와 사연이 있습니다.이는 죽음은 결코 남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한이 얼마나 컸을까요?그의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요? 국가와 사회로부터 외면받은 이들을 지나치지 않고 유골을 발굴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힘든 여정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특별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