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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 제공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식민주의와 불가능한 우정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 1938타이완 여행기는 일본인 소설가 타이완인 통역사가 함께한 1년간의 여행기로 식민지 상황과 여성이라는 현실 속에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이야기 입니다. 2024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타이완 작가의 작품으로 기대가 됩니다.
"식민주의와 불가능한 우정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
한번에 두 개를 먹으면 잘 안 씹히고, 반 개를 먹으면 씹을 때 만족감이 없는 짭짤한 씨앗 볶음 과쯔,히카식 쌀국수 간식, 비타이박, 황마의 어린잎으로 끓인 탕, 무아인텅 이 책은 마치 미식 여행을 방불케하는 특별한 풍요로움을 선사해 줍니다. 하지만 미식 여행을 넘어 일본인 소설가와 타이완 통역사가 함께한 1년간의 여행으로 두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소설의 배경은 일제가 국가총동원령을 내렸던 1938년 식민지 타이완입니다.
소설은 요괴먹성을 타고난 미식가 아오야마의 여정이 인상적입니다.
아오야마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딘가 익숙한 불편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오야마는 소설이 제국의 선전 도구가 된다면 "펜을 버리고 도망가겠다"면서도 "제국의 강경한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삶을 윤택하게 하는 철도 등의 건설 사업은 칭찬할 수밖에 없다"거나 "제국이 강제로 옮겨 심은 벚나무는 불쾌하지만, 아름다운 벚꽃에는 죄가 없다"고 늘어놓습니다. 이 말에 거북해 하는 왕첸허의 기분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저 '친구가 되고 싶다'며 끊임없이 왕첸허에게 추파를 던지고, 거듭 낙담할 뿐. 두 사람은 어긋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일까요?
일본인 화자의 눈으로 정교하게 그려낸 아름다운 소설
일본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는 자신의 소설 '청춘기'를 각색한 동명 영화가 타이완에서 상영되자 타이완 총독부 초청을 받아 타이완을 방문합니다. 통역을 맡은 왕첸허와 함께 1년간 타이완 곳곳에서 보고 듣고, 현지 미식을 만끽하는 이야기 속에 두 여성은 식민자와 피식민자,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역사소설이자 연애소설로도 생각됩니다. 우리를 "아오야마와 왕첸허의 관계 속으로 초대하고 시대를 넘어 일제강점기로 초대하며 또 12가지의 미식의 세계로 초대하며 오늘날의 타이완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라고 김이삭 번역가의 말합니다. 2024년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을 수상한 양솽쯔의 장편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입니다. 타이완 작가로는 처음 이 상을 받은 양솽쯔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독자에게 화답합니다.

타이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요리들!
“이 이야기야 말로 연회다. 열두 장에 걸친 요리와 함께 옛 타이완의 문화와 풍속 뿐 아니라 달콤쌉싸래한 두 여자의 마음까지 맛보는, 장장 1년에 걸친 대연회” – 박서련(소설가)
일본어뿐만 아니라 여러 언어에 능통한 첸허는 치즈코와 같은 한자 이름을 쓰며 비슷한 또래의 미혼 여성으로 공통점이 많이 치즈코는 금세 마음을 여는데 더구나 영민하고 온화한 성격의 첸허가 결혼을 앞두고 교사직을 그만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두 사람은 함께 여행하며 식도락을 즐기지만 첸허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치즈코가 첸허에게 함께 일본으로 가자고 제안해도 값비싼 기모노를 선물해도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지치코는 첸허의 짐심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녀가 왜 마음을 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느날 여학교에서 일본인 학생과 타이완인 학생 사건을 조사하던 중 두 사람은 표면적 갈등 뒤에 숨겨진 진실한 우정을 발견 하지만 식민자와 피식민자라는 현실적 한계가 자신과 첸허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이들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가는데 ...
식민주의, 젠더, 정체성, 언어와 문학적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이 소설은 타이완 문학을 세계 문학의 흐름 위에 올려놓은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식민지 여성의 삶에 허락된 선택지가 있었을까? 그 시대상과 음식들을 상상해 보면서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