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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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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과정_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그래,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씩은 품고 살아..."
구역질 나는 집을 나와 보호시설인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자란 열일곱 '영재'.
시설을 나가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무책임한 아버지 집으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초조하다.
-영화 <거인>
무책임한 부모가 보육원 시설에 맡긴 고등학생 '영재'가 나이가 차서 시설에서 나갈 준비를 하게 되자, 불투명한 미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재난 영화로 슬프고도 암울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는 성실한 목수였으나 심장병으로 일을 그만둔 실업자로 주치의가 근로 부적격 판정을 내렸음에도 정부로부터 구직을 강요당한 인물로 나옵니다. 수급자, 그가 실업자이자 수급 신청자로서 겪는 어려움과 수급을 신청하고 취소 통보를 받는 과정에 그는 고된 노동의 반복이 계속 됩니다. 책에는 이러한 두 가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 이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는 무관심과 차별 사이에 머물며, 정치적 수사와 예산 압박을 오가며, 엄격한 자격 심사와 최소한의 지원 수준으로 타협되어왔다.---P.26
가난은 동서고금의 현상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를 빈곤이란 개념으로 문제화하고 이에 개입하기 위한 대상으로 빈민을 구성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라고 합니다.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이런말은 뉴스에서나 들어보았던 말입니다. 이 말은 물질적 결핍에 대한 차가운 기준에 익숙한 한국의 시민들이 '빈곤'의 계량화가 간단하다고 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회, 정치적으로 합의된 빈곤의 기준은 따로 없다고 합니다. 빈곤 개념은 사회마다, 학자마다 사뭇 다르게 사용되며 그렇기에 국가별 빈곤 대책도 천차만별입니다. 오랫동안 빈곤의 지형을 탐구해온 인류학자 조문영은 빈곤을 '과정'으로 본 책 <빈곤과정>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빈곤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우선 나와 내 가족의 삶에 달라붙을 수 있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배고픈 삶, 전망 없는 삶에서 기어 나오는 공포, 분노, 무력감이 자기비하로, 피붙이에 대한 폭력으로 치닫습니다. ”쪽방촌, 고시원, 다세대주택, 임대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지척의 가난을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이 책은 인류학자인 내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빈곤을 학술적·실천적 주제로 등장시켜온 과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국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한 우리나라는 늘어나는 기대수명에 높은 학업성취도로 전례 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입니다. 하지만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의 굳어진 빈부 격차로 경제성장이 국민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깨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빈곤 과정>을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의 여러 현장을 기웃거리면서, 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빈곤을 새롭게 발견하고 쟁점화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무허가 판자촌, 공장지대, 슬럼화된 노동자 거주지 등 빈곤의 전형성이 도드라진 현장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빈곤의 역사성과 관계성에 주목했고, 대학 수업, 이주자들의 공간, 국제개발과 자원봉사 무대처럼 서로 이질적인 현장에서 빈곤이 실존의 불안으로 현상하는 공통성을 포착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역시 가난한 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먹을 물과 식량도 부족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인류학자가 본 빈곤에 대한 개념과 다양한 관점을 통해 우리 시대의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