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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ㅣ 파랑새 청소년문학 7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예령 옮김, 박형동 그림 / 파랑새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뒤돌아보건데 난 사실 학창시절 방황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학년때부터 쉼없이 자율학습으로 학교에서 늦게 끝나고, 대학입시를 위해 방학도 없이 찜통 더위 속에서도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보내는 등 매일 수업에 쩔어 살았던 기억 속에는 속으로만 삭혔던 기억이 더 많지만 말이다. 학교에 매여 있어야 하다니 청춘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무언가 울컥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교실 풍경 속에서 하지만 같은 반 학우들이 있었기에 나 또한 일탈을 꿈꾸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니 그게 당연한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책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무척 설레였다. 의외로 얇고 작은 사이즈의 책이지만,<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라는 제목으로도 호기심이 일어 책을 펼쳐보고 싶은 충동으로 후다닥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얇은 사이즈라고 금새 읽을 것 같았는데 역시 수상작가인 만큼 읽으면서 곱씹어 음미할 부분이 많아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어느날 아침, 륄라비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가방에 짐들을 대충 꾸리고 멀리 있는 아빠에게 편지를 쓴 륄라비는 다쳐서 병석에 누워있는 엄마가 잠든 시간에 집에서 나온다. 햇볕이 뜨거운 날 륄라비는 도시를 벗어나 인적이 드믄 곶에 이르러 지하 참호를 따라 내려가다 <나를 찾아보시오>라는 글에 호기심을 느끼며 바위를 타고 올라가며 수학문제를 풀듯 교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수영할 곳을 찾아 마음껏 수영도 하고, 자유롭게 마음껏 거닐며 시간을 보낸다.....
햇볕이 뜨거웠고 하늘과 바다가 빛나는 그런 날, 별안간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은 륄라비가 "이놈의 심장, 정말 성가셔!"라고 한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참으로 가슴에 와서 콕콕 박히는 시적인 문체들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사실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왜 이 소녀가 학교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는지, 일탈을 꿈꾸게 된 이유가 확실히 나오지 않아서 궁금증이 커져갔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후반부를 읽으면 그녀를 그저 가출한 비행 청소년정도로 여기는 교장선생님이 등장하고, 그녀가 마음을 열수 있었던 선생님이 초반부에 낯선 <나를 찾아보시오>라는 글을 통해서 등장한 수학선생님인 필리피 선생님이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소녀가 학교라는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바다에서 노닐며 또 힘들지만 바위에 오르는 모습, 그 안에서 먼 곳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편지를 쓰는 모습,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륄라비의 모습에서 일탈을 꿈꾸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내 어린시절이 살짝 떠올랐다.
륄라비처럼 나도 내 물건을 챙겨서 풀이 자란 언덕 위 커다란 바위에 올랐던 기억들. 무엇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게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었고 또 성장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듯 하지만, 삽화도 곁들여져서 중학생 정도라면 륄라비의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일탈을 꿈꾸는 그 시절처럼, 소녀의 모험이 내 마음처럼 와 닿을 것 같다. 수준높은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라고 딱딱하게 생각하기보다,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소녀의 짧은 모험으로 접하면 참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