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아사다 지로’하면 나오키상 수상작인 ’철도원’이 떠오른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철도원은 내가 한창 대학원 논문으로 바쁘게 움직이던 해엔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라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의 소설과 데뷔는 참으로 독특하다. 책의 표지 뒷면에 나온 그의 약력에서 ’1951년 도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갑자기 집이 몰락하면서 불량소년이 된다고 한다. 이후 설국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에서 몰락한 명문가의 자제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라는 문장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아뭏든 그렇게 그는 소설가가 되어 이제는 수상작가로도 명성이 알려질 정도라니 가히 꿈을 이룬 작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벤치에 앉은 두 사람. 할아버지와 손자는 이 책 속에서는 주인공들이다.

앞 표지에는 두사람이지만, 뒷표지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빈 의자. 책 속에서 할아버지에게 은행을 줍자고 해서 나왔던 그 모습이리라.

 

이번 작품에는 아사다 지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청춘의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8편의 단편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모두 연결이 되어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인 ’이노’,  ’할아버지’ 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금은 사라진 도쿄의 가스미초(霞町)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쓰인 이 소설은, 전에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곳의 지명이랑 같아서 더 재미있게 몰입하게 된 소설이다. 완전히 번화가가 되어버려 고급 술집이나 백화점이 들어선 ’麻布(아자부)하면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고, 도쿄하면 삭막하고 사실 주택가보다는 높은 건물이나 번화가가 더 생각나는 곳인데, 사진관을 가업으로 2대째 운영하던 그곳을 추억하며 아련한 시절의 청춘과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향수같은 느낌을 주는 참 따스하고 아름다운 소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고 어용(고위 대관들을 찍어주는 전문 사진사를 말하는것) 사진사로 고관대작들의 사진을 주로 찍었던 잘나가는 시절이 있었던 할아버지. 나이가 드심으로 치매가 있어서 가끔 소동과 실수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통해서 할아버지의 삶이 하나 둘씩 퍼즐 맞추듯 되살아난다.

 데릴사위로 2대째 사진사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 사진을 가업으로 2대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아버지는 할아버지와는 사제 지간으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진에 대한 또 다른 열정을 불사르며 드디어 그랑프리를 수상하는데 힘들게 찍은 풍경사진이 아니라 그것은 할아버지를 찍은 노스승이라는 작품이라는 것도 기억나는 대목이다.

각 이야기는 이노의 눈으로 소개가 되고 있으며, 그의 가족 특히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전쟁으로 죽은 그의 삼촌, 할머니와 할머니의 첫 사랑 등 가족 모두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일들이 하나하나 실타래 풀리듯 엮여져 있는 이야기들 속에 이노의 고등학생 시절과 사랑과 청춘이 이 책을 더욱 몰입하면 할수록 참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할아버지가 이노와 친구들의 졸업사진을 찍어주시며 한 대화가 참으로 기억에 남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가족들의 모습과는 참으로 다른 부분들이 있긴 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데릴사위를 들이는 풍습, 일본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문명의 발달로 인해 신제품들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몇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시니세(老店)’들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남녀간의 사랑이나 관계도 우리나라의 생각들과는 다르고, 대학입시의 풍경도 좀 다르고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생각들도 다르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마도 청춘과 가족이라는 부분에서는 무척 따스한 인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주인공 이노의 따스한 가족사와, 이노의 청춘이 새록새록 다가오는 참 재미있는 구성의 소설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따스한 노란빛의 은행잎 앞에 놓인 벤치가 있는 표지가 읽기 시작했을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책을 덮으면서 더 선명해지는 그런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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