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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시절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책을 읽을 때 가장 기쁜 순간을 꼽으라면, 유명한 작품을 접했는데, 그게 재밌게 술술 잘 읽힐 때다. 그러니까 이 말은 어디가서 고전 혹은 유명 작가 작품을 읽었다는 티는 많이 내고 싶은데, 실상 나의 독서 능력은 썩 좋지 않기에 -스토리만 중요할 뿐 당췌 생각이란 걸 하면서 읽지 않는다- 어디가서 그냥 나 책 좀 읽어 이런걸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달과 6펜스」가 나에게 최초로 그런 기쁨을 선사한 책이었다. 제목만 보면 얼마나 어려울 것 같은가? 그런데 그 스토리는 매우 재미있다. 그러니 어디가서 읽은 티도 팍팍 낼 수 있고 안 읽은 사람들은 ˝쟤 책 좀 읽네~˝ 할 것 아닌가? 하하(근데 뭐 이런 인정이 왜 이리 중요한지.. 참..)
그 두 번째 기쁨을 준 책이 바로 이 「버마시절」이 아닌가 싶다. 일단 잘 읽히고 재밌다. 내가 한때 피지배국의 국민이기에 이기적인 우 포킨도 익숙하고, 지배국 사람이지만 플로리처럼 원주민에게 호의적이지만 그렇다고 막 나서서 함께 싸워주지는 않는 지배층의 소시민도 익숙했다.
플로리의 뜨뜨미지근함은 나와 닮아 있어서 - 옳은게 뭔지는 알지만 나섰다 갈등이 생기는 건 싫어 - 너무 답답했고, 친구인 의사도 자기 국민을 폄훼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버마 사람들을 검둥이라고 표현하며 무시하는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나쁜 놈들이었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너무 답답했던게 인종 차별을 할 수 없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치, 인종이 다르면 그걸로 차이를 만들텐데 너무 똑같이 생겼으니... 그래서 조선인은 어떻다 이런 루머를 많이 만들었고, 그 중 몇 가지는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 나에게까지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결국 인간은 어디에 있든 짝이 필요하다(으잉?)는 결론이라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여인의 등장으로 소설은 한층 활기를 띠게 되는데 존재만으로 빛이 나는 어리고 예쁜 여자는 좋겠다(응?).
작년 1월, 나는 버마(미얀마)에 있었다. 세상에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자기애가 적은 사람들이었다. 늘 베풀고 살아서 그런가? 일주일을 묵었던 숙소에서 일하던 분은 우리가 떠나는 날 사진을 함께 찍자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더 빨리 읽어보고 싶다 했는데, 버마 사람들이 좋지 않게 나와서 좀 실망... 역시 오웰도 지배국 경찰로서 식민지 원주민에 대한 적대감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씁쓸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