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 하우스 - 볏짚으로 짓는 생태주택
이웅희.홍순천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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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오랜 수렵채집시기를 지나 불과 지금으로부터 일 만 년 전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영구적으로 거주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수렵채집시기에는 이동생활을 했기에 짓고 해체하기 쉽게 간단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농경을 하게 되면서 인류는 한 장소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게 되었다. 아마도 인간은 이때부터 장기간의 거주에 적합하고 편리하고 안락하게 지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인류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자연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나무나 볏짚, 흙 또는 돌들을 이용해 집을 짓고 거주했다. 이 시대 집의 의미는 순전히 ‘거주’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게 되었고, 또한 건축 재료에 있어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70년대 이후 좁은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다. 아파트 거주는 생활하기에 매우 편리(convenience)했다. 그러나 결코 안락(comfort)하지는 않았다. 자연의 재료에서부터 떠나있는 우리 몸은 결코 인공적인 재료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피부질환이나 호흡기질환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특히나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우리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실내생활을 하게 되며, 우리는 시각이외의 감각은 퇴행하고 있다고 한다. 촉각이나 청각 등은 우리가 자연 속에서 생활할 때에는 생존에 아주 필수적이고 중요한 감각이었으나, 실내 생활로 인해 더 이상 이런 감각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작금의 현실에서 볼 때 집이란 가족이 단란하게 거주하는 Home이란 개념이 없어지고,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House로 변해있다. 집은 더 이상 가족만이 행복함으로 즐기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집 주인의 사회적 권력과 재산을 대변하고 있다. 집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안락한 홈을 가지지 못하는가?

자신과 가족에게 안락함으로 주면서 동시에 자연과 함께하는 집을 짓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라고 한다. 우리 인류는 더 이상 산업화로 인한 폐해 속에서 허덕일 만큼 그렇게 멍청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이 순간에도 인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집 스토로베일 하우스>(시골생활.2007년)에 보라. 정말 안락한 집을 스스로 짓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스트로베일이란 단어는 바로 ‘볏짚’이다. 볏짚을 압축한 재료로 집을 짓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중부지방 네브라스카 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네브라스카 주는 황량한 지역이니 만큼 집을 지을 재료가 많지 않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가장 자연과 가까운 재료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는 바로 스트로베일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집짓기 운동이 지금은 대한민국에까지 들어와서 도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자연속의 집짓기를 소개하고 있다.

스트로베일하우스의 장점은 우선 재료가 생태성을 가지고 있고, 단열성이 뛰어나고 또한 통기성이 탁월하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볏짚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인 ‘습기에 약하다’거나 ‘강도가 약해 쉽게 무너지리라’는 생각은 이 책을 읽어보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도시민의 꿈은 은퇴해서는 조용한 전원에서 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집짓는 방법을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고 있다. 스트로베일하우스 짓기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2004년부터라고 한다.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서 시작해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생태적 집짓기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이책을 읽고는 빨리 스트로베일하우스를 가지고 싶다. 나와 내 가족의 힘으로 만든 집에서 진정한 생태적인 삶 속에서 안락함(comfort)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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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 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고전연구회 사암 엮음 / 포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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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서치(書癡)라고 할 만한 친구가 몇 명 있다. 그들은 당연히 대단한 장서가들이다. 그들의 집에 가보면 책이 이 삼 천 권은 있는 것 같다. 넓은 책장에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하며, 책장 주인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책을 그 정도로 모았다고 하면 아주 오랜 기간 그것에 많은 투자를 했다는 단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남한테 보이기 위한 서재라면 보통 전집류가 많은데 이들의 책장에 있는 책들은 모두 단행본이다.


그러나 어떤 친구는 집안 곳곳에 책이 널려 놓는 것도 보았다. 어찌 보면 지저분해 보이고 어느 곳에 책이 있는지 잘 모를 것 같지만 그들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책을 아주 잘 찾아낸다. 그것은 아마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이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면 이들의 년 간 독서량은 얼마나 될까? 이들은 1년에 보통 1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년 간 100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년 간 100권의 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독서는 이미 취미생활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끼니를 건너뛰면 허기를 느끼듯이 이들은 책을 안 읽으면 정신적으로 허기가 진다고 하니 이런 사람이 많다면 아마 출판시장은 호황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아주 소수이다. 2005년의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적 인쇄물 구입 월평균 지출액이 가구당 1만397원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신문구독료를 뺀다면 1년 내내 책 한 권 안사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이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인가 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조선시대에도 많았다. 조선 시대라면 책을 출판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책을 인쇄할 수 없었을 텐데도 <서재, 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포럼.2007년)에 보면 자신의 서재에 엄청난 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들은 집안에 자신의 서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대부분 서재로 사용할 집을 아예 새로 짓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아마 책값도 지금하고 비교해서 대단히 고가였을 것이다. 아마 서재에 있는 책값이 집을 짓는 값보다 오히려 비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서구의 서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이서구는 연암 박지원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서구의 서재에는 마룻대까지 책이 가득 차 있는 것도 모자라 시렁까지 꽉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서재에 소완(素玩)이라고 이름을 짓고는 박지원에게 자신의 서재에 글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지원은 이서구에게 책이 많기에 오히려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박지원은 단순히 책을 보고 완상(玩賞, 보고 즐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책을 보고 즐기는 참 방법을 이서구에게 알려주고 있다.

뜻을 밝히는 참 방법이란 마음을 비우고 바깥의 사물을 받아들이고, 사사로운 욕심이나 욕망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대하는 것에 있으므로 책을 완상할 때에도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을 덮어놓고 많이만 읽는 것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말로, 책을 읽는 목적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닌 고매한 인격의 완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나 자신의 그동안 독서습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 선비 30명의 서재에 얽혀있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정약용, 유성용, 송시열, 김득신 등 선비들의 면면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유명한 분들이다.

“서재는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선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게 하는 공간이었고, 끊임없는 공부와 자기 수양을 통해 태어나는 선비 정신의 산실이며, 동시에 세상의 먼지를 닦아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소중한 씻김의 자리였습니다.”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머리말’이 그대로 내 가슴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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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07-07-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책을 많이 읽는것과 책을 즐기는 것에는 차이가 느껴집니다.
 
루브르 박물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6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음, 임동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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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와 <다빈치 코드>는 루브르 박물관(미술관)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이 드는 단어일 것이다. 생각보다 작은 그림의 ‘모나리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루브르를 대표하는 그림일 것이다. 그리고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기에 직접 가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루브르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세계 미술관 기행 시리즈 책의 하나로 출간된 이 책 <루브르 박물관(세계 미술관 기행)>(마로니에북스.2007년)은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작품 하나하나에 저자가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루브르에 가면 프랑스 근대사를 알 수 있다. 즉 루브르는 처음에 설립할 당시에는 왕실의 컬렉션으로 시작이 되어, 왕실 사람만을 위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왕이 길로틴의 칼날아래 죽음을 맞이한 후 브르주아 시민사회를 연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는 이 루브르도 모든 시민의 소유로 돌림으로써 대중을 위한 컬렉션으로 만들었으며, 지금도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아마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장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루브르에는 유럽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도 있지만, 아시리아나 이집트의 신전도 전시하고 있다. 이런 약탈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면이 가장 야만스러운 점인데, 우리 인류의 제국주의 시대 역사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루브르에게 ‘박물관’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 진다. 그러니까 루브르는 미술관이면서도 박물관인 것이다.

“루브르에는 모든 것이 있으며,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라고 폴 세잔이 말했는데, 이는 루브르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부여해 주었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니까 루브르는 과거 인류가 쌓아올린 예술품을 전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계속적으로 예술적인 영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예술에서 그 원천은 신화와 기독교이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림을 읽어내기가 힘들다. 그럴 때에 이런 책을 읽는다면 그 그림에 담겨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편리할 것이다. 저자인 알렉산드라 프레골렌트는 ‘유물 복원사’라는 흔치 않은 자격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회화기법의 물리학적, 화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만큼 저자가 루브르의 예술품을 보는 안목은 아주 전문적이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도상학적 지식에 따르다 보면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미술작품의 의미와 특징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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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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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고 자기주장이 결여되어 있고 지능도 떨어지며 경쟁심이 약하고 비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나오는 말로 요즘은 철저히 편견으로 치부되고 있다. ‘여성은 오히려 남성보다도 정치적이며 경쟁적이고 능동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로 보인다.

<조선왕비실록>(역사의아침.2007년)은 조선시대의 왕비 중 일곱 명의 생애를 담고 있다. 그동안 철저히 남성위주의 역사인 History에 안주해있던 우리에게 Herstory는 무척이나 내게 충격을 주고 있다. 어느 페미니즘 책보다도 이 책은 더욱 페미니즘에 가깝다. History에서 배제되어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History로부터 우리는 절반의 역사밖에 알지 못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 책을 읽음으로 우리는 역사를 온전히 배우게 되어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일곱 명은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에서부터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민씨까지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격동기를 살았던 왕비이고 또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하나같이 불행했다는 것이었다. 왕비라는 화려함의 그늘 밑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적인 비극과 불행을 함께하고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인 Herstory 중에서 두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태조 왕비 신덕왕후 강씨

 

왕조시대에 한 나라를 개국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는 것과 설립하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긴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각 나라들이 몇 개가 되지 않을 만큼 개국은 흔치 않은 일이다.

무장으로 정치적인 술수나 다툼에 허약한 이성계에게는 실상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낼 정치력은 없었다고 보여 진다. 그러한 이성계에게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건국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이성계의 참모들도 있었지만,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들여다본다면 신덕왕후 강씨의 역할이 결정적이고 지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건적과 외구와의 전투에서 항상 승리를 거두었던 이성계에게 정치판에서의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바로 강씨였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둘째 아들인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게 만들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씨가 숨을 거두자. 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강씨의 두 아들은 살해되고 만다. 게다가 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강씨의 역사적 기록을 소멸시키고 왕비로서의 자격조차도 없애버린다. 그렇지만 강씨는 그녀의 강한 성격만큼 지금도 조선을 개국시킨 이성계의 왕비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고종 왕비 명성황후 민씨

아마 조선의 많은 왕비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 명성황후 민씨일 것이다. 조선이 망해가는 어려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갈등과 그녀의 극적인 죽음까지도 망하기 직전 나라의 어려움과 그녀의 비극은 어쩌면 너무도 닮아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녀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이다. 무능한 황제인 고종을 이끌어주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인 시점에서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드센 그녀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내정도 망쳤고, 또한 외세의 전쟁터로 만든 암탉으로 표현하는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의 기록을 토대로 명성황후 민씨를 평가하자면 지적이고 지혜로우며, 당찬 여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전면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왕비들의 모습, 그녀들을 통해서 나라가 경영되었지만, 철저히 역사서 속에서 외면 받은 그녀들이었지만, 이 책에서 보듯이 그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조선의 진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며 조선왕비실록을 통해서 우리는 조선의 역사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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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이해하는 서양 생활사
김복래 지음 / 안티쿠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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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남겨진 역사는 주로 강자나 승자들의 기록이다. 그러나 역사는 강자나 승자들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수인 약자나 패자에 의해서 그 웅장한 저변이 움직여진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나 패자의 기록은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특히나 고대에는 승자나 강자만이 문자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에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낮은 계층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역사를 밝히는 데 중요했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의 연구 대상이 미시사나 생활사까지 폭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나타남에 따라서, 우리는 과거 역사에 있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생활사>(안티쿠스. 2007년)가 바로 그런 책이다. 서양의 고대에서 르네상스시대까지 생활 풍속에 대한 연구서이다. 저자인 김복래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현직 대학교수인데, 한국인이 이런 책을 발간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는 그동안 유럽의 미시사나 생활사에 대한 책은 거의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인이 이러한 책을 냈다는 것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일 가축과 아내가 동시에 아플 때 남편은 병든 가축에게는 서둘러 수의사를 불러주지만, 병든 마누라에게는 그냥 자연치료법에 맡겨 두었을 뿐, 결코 의사를 불러 주지 않았다”. 이것이 중세에 있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가장 간결한 표현으로 보인다. 가정에서 남성이 재산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은 단순히 집안의 재산의 하나로 취급받던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가축보다도 더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놀랍다.

“중세에 튜톤족들은 남편을 때린 여성을 강제로 뒤를 보게끔 당나귀에 태우고, 이에 놀란 짐승의 꼬리를 잡게 한 뒤에 거리를 행진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문장을 보면 사회적인 여성의 지위와 집안에서의 아내의 지위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맞고 사는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있는 모양이다. 분명히 남자와 여자는 힘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 데 상대적으로 완력이 약한 아내가 남편을 때린 다는 것은 힘의 우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근육 이외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이 예라고 생각이 든다.

이 책의 구성은 그리스시대, 로마시대, 중세시대, 르네상스시대로 구분하며 각 시대마다 의식주 생활, 가족생활, 문화생활과 여가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방대한 서양사를 시대순으로 또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주로 써있다 보니, 그동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책으로 통해서 배운 멋없는 정치사에서 벗어나 유럽의 실제적인 모습으로 들어가서 세밀히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르네상스이후 돈을 많이 번 상공인 계층의 옷차림이 귀족과 비슷해지자 귀족들이 사치금지법을 제정해 그들의 복장을 규제하려 했다는 데에서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이나 문화적인 총체를 나타낸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양사는 알고 싶으나, 너무 어려워 접근하기에 주춤했던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이다. 수많은 서양의 정치적인 사건들을 나열한 역사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서양의 실제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만큼 재미도 있고 또 쉽다. 읽다보면 서양사의 흐름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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