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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랑한 예술가들 - 걸작 뒤에 숨은 예술의 경제학
오브리 메넨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09년 7월
평점 :
우리는 흔히들 순수 예술은 돈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가들도 생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법. 돈과 무관하게 살 수는 없다. 신간 <돈을 사랑한 예술가들>(열대림.2009년)에 보면 많은 예술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작업을 하고, 또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등 재미있기도 하고 가슴이 아픈 사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는 돈을 향한 욕망이 들어있었다. 그들의 위대한 작품을 만든 동기는 바로 돈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생존 시에는 대부분 돈에 쪼들려 살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가들이 돈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미켈란젤로와 같이 위대한 예술가도 끊임없이 돈이 부족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중세시대까지도 화가는 장인에 속했다. 이를테면 수공업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같이 취급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 나름대로 길드를 만들어서 미술작품을 생산하고 공급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야 그들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종교와 왕, 귀족들이 그들의 후원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화가들은 가난을 겪어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화가가 가난하지는 않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벨기에 화가 패터 파울 루벤스는 마케팅 전략을 잘 활용한 영민한 사업가였다. 책에 수록된 사례를 보도록 하자.
“주문이 전 유럽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1636년에는 스페인의 펠리페 4세가 많은 양의 그림을, 상당히 급히 주문했다. 루벤스는 이것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는 그의 휘하에 전문 작업팀을 두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주로 소년들로 구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조직원은 대부분 상당히 실력 있는 화가들이었다. 루벤스는 탁월한 조직 통솔력을 발휘해 일을 분배했다. 누구는 의상 표현에 강하니까 성직자들의 가운을 그리게 하고, 또 누구는 배경을 그리게 하는 식이었다. 팀의 구성원들은 그런 식의 작업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해냈다. 그것도 계속해서, 이렇게 해서 이 그림들은 제때에 생산 라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56점의 작품이 놀랍도록 짧은 시간인 15개월 만에 완성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154~ 155쪽)
본문 내용은 루벤스는 자동차를 생산해내는 식의 분업방식을 통해 위대한 작품들을 생산했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루벤스가 짧은 시간이 많은 작품을 그려낸 것을 보고 그가 직접 그렸다는 것을 의심했을 터. 루벤스는 이 모든 작품을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트릭을 부렸다. 그는 자신이 건축한 호화로운 집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부유한 구매자들을 초청해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마음껏 감상하게 했다. 그리고는 이 감상회에서 루벤스 자신이 직접 화려한 색체로 6피트의 거대한 곡선을 직접 그리는 이벤트를 하곤 했다. 물론 그림 생산 팀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구매자들이 방문할 때에는 견습생들이 물감을 섞거나 붓을 들고 있게 했을 뿐이다. 게다가 루벤스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비서에게 편지를 받아쓰게 하거나, 좋은 책을 소리 내어 읽도록 함으로써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구매자들에게 그 많은 그림들을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증거로 보이기 했다.
루벤스와 같은 경우는 드믄 사례였다. 많은 화가들이 돈으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돈은 자신이 이루어낸 온갖 눈부신 업적의 동인이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를 보면 돈을 많이 벌기는 했지만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끊임없이 돈을 뜯어갔기에 자신은 가난하게 살았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기가 쉽지 않았던 사례가 소개된다. 특히 클로드 모네(1840~1926)의 경우는 정말 가난과 사투를 벌인 삶이었다.
책에 소개된 모네의 편지를 한 편 보도록 하자.
“어느 때보다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그저께부터는 땡전 한 푼 없는데, 푸줏간이나 은행에서도 전혀 외상을 주지 않네. 자네 혹시 20프랑쯤 대지급으로 보내줄 수 있겠나? 당분간은 그 정도로 도움이 될 것 같네만.”(마네에게 보낸 편지. 282쪽)
이 책에 소개된 모네의 경우를 보면 정말 불쌍한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나 마네와 같은 친구들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는 장면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노년이 되어서 유명해진 모네의 모습을 보면 독자들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르네상스 시대에 많은 화가들은 귀족의 후원을 받았는데, 귀족들이 실상은 돈을 잘 주지 않았다는 부분에 이르면 예술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지만, 그들의 삶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흔히 성공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삶도 좌절의 나날이었다. 자주 돈이 떨어졌고, 풍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도 대단히 흥미롭다.
저자인 오브리 메넨은 런던에서 태어난 미술 분야의 저술가다. 이 책에 보면 인류의 역사 시대에 맞추어 예술의 변화를 설명해주고 있다. 책에는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인류학적 지식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이 들어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브리 메넨은 상당히 박식한 사람이다. 그리고 책 내용이 읽기에 아주 편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토리 텔링에 예술 지식을 잘 담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