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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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갈 수록 인간관계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한 바를 상대방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뢰가 무너진 것 때문이다. 이를테면 옆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알 수 있다고 하는 소규모 집단이나 공동사회에서는 서로에 대해서 오랜 동안 접촉하고 있었기에 오해의 소지는 적지만, 익명성으로 대표되는 도시 생황은 일단 상대방을 의심해야만 손해 보는 일이 없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런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지배하려고 하는 경향도 사람에게는 있다. 이러한 성질은 누구나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성격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문제는 영향력이 부정적인 경우이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상대방의 허점을 지적하며,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이 잘못됐다는 것을 주입하려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상대방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나아가 상대방의 자존감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켜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이다.

<가스등 이펙트>(랜덤하우스.2008년)는 이렇게 잘못된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상대방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의 요인으로부터 시작해서 피해자가 이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로빈 스턴은 자신이 상담치료사로 실제 경험했던 사례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제목에서 말하는 ‘가스등 이펙트(The Gaslight Effect)’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잉그리드 버그만(폴라역)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한 영화 <가스등>에서 남편은 아내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그가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의 불을 켜면, 그로 인해 폴라의 방에 있는 가스등이 희미해지곤 했는데, 폴라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가승이이 희미해진다고 얘기하면 그녀가 미쳤기 때문에 환각을 본다고 매도한다. 그녀는 점차 히스테릭하게 행동하게 괴고, 남편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무기력하고 방향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처럼 상대방을 조종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가해자가 만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저자인 로빈 스턴은 이런 상황을 ‘가스등 이펙트’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피해자는 보통 가해자를 이상화하고, 그들의 인정이나 사랑, 관심이나 보호 등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이를 잃을 경우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가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가해자는 항상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피차간에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는 다면 둘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일방적이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영향력이라면 이는 피해자의 정서적인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가 되는 순서를 3단계로 보고 이에 따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으며.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나쁜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읽는 도중에 ‘과연 나를 정서적으로 파괴하는 가해자는 없었나?’ 라고 생각하며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와의 사이를 한 번 생각해봤다. 다행이도 나에게는 뚜렷이 떠오르는 가해자는 없었다. 다만 내가 가해자인 것은 아닌지 그것은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마음이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남의 이야기이지만, 피해자 입장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로웠고, 내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들었을 정도였다. 참, 인간관계는 어렵다.

특히나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가 어려운 것 같다. 부부관계, 연인관계, 회사 동료 관계 등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 이런 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서로 간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혹시 이 책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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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15: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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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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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이라고도 부르며 ‘눈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티베트는 지금으로부터 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에 알려져 있지 않은 은둔의 땅이었다. 스벤 헤딘과 같은 탐험가들이 티베트를 방문하고 그곳의 지도를 만들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서양세계에 알린 것이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티베트가 은둔의 땅이었던 이유는 접근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해발 3000~4000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지대이고 평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희박한 산소 때문에 활동하는 데에 큰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서양인의 눈으로 보았을 경우이다. 중국과 인도의 입장에서 볼 때 티베트는 접근하기에는 어렵지만,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이었다.

 

중국과 티베트 간에는 영토가 붙어 있었기에 역사적으로 보면 오랜 기간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과 평화가 교차되었으며, 1950년 이래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다른 역사, 문화, 언어를 가지고 있는 티베트는 독립을 원하고 있지만 중국-인도와의 사이에서 요충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자원이 있는 그곳을 중국이 포기할리는 없다.

100년 전에 서양인들이 티베트를 방문하고자 하는 목적은 분명했다. 그들에게 티베트는 지도상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던 곳이었다. 그곳을 방문하고 측량해서 지도를 그려보겠다는 영웅심리가 서구 제국주의 시대에 탐험가들을 열병에 뜨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티베트라는 나라의 지리적인 여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티베트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기위해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열병-티베트 여행 에세이>(북하우스.2007년)에서 저자인 박동식은 자신이 티베트라는 나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문명과 동떨어진 미지의 세계, 욕심도 없고, 이기심도 없으며, 불신 따위도 없는 곳. 그곳은 오로지 따듯한 시선과 사려 깊은 배려, 모든 인간이 존중받는 평등만이 존재하는 무릉도원 같은 곳”

 

이야기를 들은 지  10년 후 드디어 그는 티베트 여행을 시작한다. 일반인들에게는 하늘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고도가 높기에 춥고 또 숨이 차며,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그곳에서 저자가 만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현대 문명에 찌들지 않은 삶의 모습을 만난 것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불편함은 있을지 모르지만, 현대 도시의 삶에서는 얻지 못할 삶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아마 오체투지를 할 만큼 그들의 신앙에 열정적인 부분이 그들에게 여유로움을 주는 요인은 아닐까.

 

우리나라와는 다른 장례 풍습인 조장(鳥葬)의 모습을 보기 위해 힘겨운 발걸음을 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역시 여행은 낯선 곳이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는 말의 참뜻을 알 것 같다.


저자인 박동식은 사진가이기도 해서 책에는 티베트의 풍경과 사람들의 사진이 멋지게 표현되어 있으며, 또 에세이스트로서 감성적인 그의 글 솜씨가 아주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두 번에 걸친 티베트 여행에 대한 감화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길을 갔던 모든 사람들이 끝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길, 라싸로 가는 길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진하고도 깊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것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 호기심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열병인 것 같다. 저자를 이런 열병에 들뜨게 했던 티베트,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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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0 14: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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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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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이 말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최만리의 상소에 반박하고 있는 말이다. 세종은 당당하게 신하에게 윽박지르듯 말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왕은 재위기간 내내 신하들과 함께 ‘경연’을 한다. ‘경연’이란 쉽게 말해 왕이 신하들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왕은 신하들에게 일단 학문적으로 제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왕은 신하들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왕의 투쟁>(페이퍼로드.2007년)은 조선 왕조 27명의 왕 중 4명의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왕의 칭호를 받고 있는 세종과 정조, 그리고 반정으로 쫓겨난 왕인 연산군과 광해군이 그 4명의 왕이다. 이 책은 4명의 왕의 생애에 대한 개략적인 상황과 ‘경연’, ‘언론관계’ 등의 상황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왕들 전체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쓰여 졌다.

 

27명의 왕 중 가장 큰 활약을 한 두 명과 몰락한 두 명, 이렇게 극단적인 4명의 군주를 표본으로 설정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나 과연 네 명이 조선왕조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독자들의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표본을 골라 분석하는 쪽이, 하나하나 살피는 것보다 전체적인 구도와 흐름을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 분석에 동의할 것인지, 더 낫고 더 분명한 방식으로 왕들의 투쟁사를 살펴볼지는 독자와 제현의 자유이다.”

 

모든 부분에서 왕의 투쟁대상은 바로 신하들이었다. 정책결정과정과 왕의 개인 사생활에 걸쳐 끊임없는 신하들과의 논쟁은 쉽게 말해서 왕노릇 하기가 정말 힘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신하와의 투쟁에서 패배한 왕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가지고 왕과 신하는 대립을 했을까.

“왕의 생애는 권력투쟁의 연속이었다. 강보에 싸여있을 때부터 암투의 대상이 되고, 그가 세자가 되느냐 마느냐, 보위를 이어받느냐 못 이어받느냐를 놓고 피바람이 불기도 했다.”라는 표현이 이 책의 앞부분에 있다. 이렇듯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투쟁의 장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왕은 신하들로부터 강의를 듯는 등 매일 공부를 해야 했다(경연).  또 왕은 취미생활조차도 제한을 받았으며, 여자와 외척과의 관계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고, 언로를 끊지 않기 위해서는 신하들의 극단적인 비판조차도 받아들어야 했다. 이런 조간들을 잘 수용해야 성군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하들로부터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왕위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지기 까지 했던 것이다.

왕위를 유지하는 것은 왕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리 쉽지 않았지만 왕조를 대상으로 판단했을 때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조선왕조는 500년 이상을 지속했다. 인간이 만든 국가에 대한 역사에서 500년 이상을 존속한 왕조는 그리 많지 않다. 조선이 이렇게 오랜 기간 왕조를 지킨 데에는 왕과 신하사이에서 벌어진 역학관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왕권이나 신권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왕조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조선의 왕보다는 훨씬 쉬운 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5년이면 임기가 끝난 뿐만 아니라 권한도 왕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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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시골의사 박경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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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이 모두 드리마 같다는 말을 한다. 아니 어찌 보면 작가가 쓰는 드리마 보다 오히려 개개인의 이야기가 더욱 드라마틱한지도 모르겠다.

시골의사란 이름으로 유명한 박경철이 또 하나의 드라마를 내 놓았다. <착한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리더스북.2007년)를 읽으면 수록된 내용 모두가 드라마 같다. 신이 있어 우리의 삶을 조정한다면 아마 그 신이 쓴 시나리오가 이렇지 않을까?

박경철이란 이름이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이 꽤 오래전이라고 한다. 나도 그가 글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이 내 책꽂이에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지만, 읽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한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는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저자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는 먼저 독자들의 코끝이 찡한 감동을 주기도 하며, 분노하게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나오려고도 한다.

이철환의 <연탄길>에서 보듯이, 독자들은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욕심 없이 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자신의 양심을 팔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보다는, 현실이 어렵고 불편하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약한 사람들에게 감동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욱 감동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독자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고 있다. 독자들의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그들은 마치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함께 호흡하며 느낀다. 혹자들은 이런 책들을 신파나 최루성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루성을 나쁜 것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내게 특별한 감동을 주는 부분은 환자들의 이야기 보다는 오히려 박경철 본인의 이야기에서다.

‘평생을 함께한 두 친구’이야기에서 보면 세 명의 친구 사이에 자리한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결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셈을 하지 않고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이타적인 관계는 이기적인 사회에서 더욱 큰 감동을 준다. 이들의 관계가 그렇다. 그런데 한 명은 바로 박경철이고 한 명은 지금 병원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이고, 나머지 한 명은 바로 박경철의 아내라고 하는 부분에서 난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문장은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담담한 필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부분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욱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보는 것처럼 박경철은 나레이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한 것으로 보인다. 슬픈 장면에서 조차도 정갈한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하고 있는 박경철의 말은 모든 것에 달관한 성자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었지만, 이곳에서 나는 책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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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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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호기심 많은 동물이다. 인간의 지성은 자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생산해냈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학문이 생겼을테다.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의 움직임 안에 숨겨있는 의문을 파헤치고 이러한 호기심은 스스로의 내면을 보고 싶어했다.

인간은 과연 어떻게 생각을 하며 기억을 할까. 또 사랑, 질투, 죄악과 같은 감정은 어떤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몸의 어느 부분에서 시작될까 라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을 것이다. 특히나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은 아니었을까? 신화, 문학, 예술의 소재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일 컸다. 세계문학전집에 속해있는 많은 불후의 명작은 다름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수천 년 전의 사람, 일백 면 전의 사람 또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관심사는 아마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사랑에 대해 정의한 문장만 모아 놓더라도 아마 백과사전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오히려 사랑이라는 말의 홍수 때문에 식상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은 항상 최고의 화두였다.

‘빨간 하트’는 보통 사랑을 상징한다. 이런 사랑과 사랑이 생성되는 우리 마음에 대해 그동안 인류는 어떻게 생각해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하트의 역사>(도솔.2007년)가 제격이다. 이 책에는 그런 의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히 나와 있다.

“이 책은 인류가 심장을 어떻게 인식했고, 몇몇 중심 문화권에서 심장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본다. 또한 다양한 비유적 표현과 쓰임을 낳은 서양의 심장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본다.”라고 서문에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성격을 말하고 있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가져라’라는 말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에 이 문장은 경제학 원론에서 처음 봤다고 생각한다. 즉 가슴(심장)애는 열정을 가지고, 머리(뇌)에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과학적으로 틀렸다. 열정이나 감정도 모두 뇌가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심장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만들어 내는 장기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트의 역사>는 그런 시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심장의 힘과 사랑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며 기본적인 생명력과 죽음이라는 수수께끼, 자연과 문화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이 이 책 첫 장의 핵심이다. 노르웨이에서 문화학 교수로 있는 올레 회스타는 영웅들의 서사시라고 알려져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하트 이야기의 진원지’라고 표현하면서 심장과 사랑이란 주제를 영웅들의 이야기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는) 방부처리한 뒤에 다시 시신 안에 넣는 장기는 심장뿐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심판의 날에 죽은 자를 위해 증언해 줄 심장을 고이 본존하려는 뜻에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이집트인들은 심장에 기억(지성)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심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시대순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또한 각 문화권에 따른 심장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기독교와 이슬람교, 또는 아시아 문화에 있어서 심장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미의 차별성과 보편성에 대해서 문화사, 인류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어 중세 기사도 문화에서의 에로티시즘, 데카르트와 몽테뉴, 세익스피어, 루소, 괴테의 작품들에 나타나있는 하트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또 동서양의 각 문화권에서 바라보는 하트의 개념과 특징은 아주 흥미롭다. 게다가 유명한 철학자, 작가 등의 작품에서 하트의 의미를 밝히고 있는 지적인 탐구를 쫓아다니다 보면 독자들은 노르웨이인 교수인 저자의 해박함에 폭 빠져버릴 것이다. 아마 독자들은 사랑에 빠져버리듯이 <하트의 역사>에도 빠져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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