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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이 말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최만리의 상소에 반박하고 있는 말이다. 세종은 당당하게 신하에게 윽박지르듯 말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왕은 재위기간 내내 신하들과 함께 ‘경연’을 한다. ‘경연’이란 쉽게 말해 왕이 신하들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왕은 신하들에게 일단 학문적으로 제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왕은 신하들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왕의 투쟁>(페이퍼로드.2007년)은 조선 왕조 27명의 왕 중 4명의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왕의 칭호를 받고 있는 세종과 정조, 그리고 반정으로 쫓겨난 왕인 연산군과 광해군이 그 4명의 왕이다. 이 책은 4명의 왕의 생애에 대한 개략적인 상황과 ‘경연’, ‘언론관계’ 등의 상황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왕들 전체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쓰여 졌다.
27명의 왕 중 가장 큰 활약을 한 두 명과 몰락한 두 명, 이렇게 극단적인 4명의 군주를 표본으로 설정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나 과연 네 명이 조선왕조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독자들의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표본을 골라 분석하는 쪽이, 하나하나 살피는 것보다 전체적인 구도와 흐름을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 분석에 동의할 것인지, 더 낫고 더 분명한 방식으로 왕들의 투쟁사를 살펴볼지는 독자와 제현의 자유이다.”
모든 부분에서 왕의 투쟁대상은 바로 신하들이었다. 정책결정과정과 왕의 개인 사생활에 걸쳐 끊임없는 신하들과의 논쟁은 쉽게 말해서 왕노릇 하기가 정말 힘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신하와의 투쟁에서 패배한 왕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가지고 왕과 신하는 대립을 했을까.
“왕의 생애는 권력투쟁의 연속이었다. 강보에 싸여있을 때부터 암투의 대상이 되고, 그가 세자가 되느냐 마느냐, 보위를 이어받느냐 못 이어받느냐를 놓고 피바람이 불기도 했다.”라는 표현이 이 책의 앞부분에 있다. 이렇듯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투쟁의 장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왕은 신하들로부터 강의를 듯는 등 매일 공부를 해야 했다(경연). 또 왕은 취미생활조차도 제한을 받았으며, 여자와 외척과의 관계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고, 언로를 끊지 않기 위해서는 신하들의 극단적인 비판조차도 받아들어야 했다. 이런 조간들을 잘 수용해야 성군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하들로부터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왕위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지기 까지 했던 것이다.
왕위를 유지하는 것은 왕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리 쉽지 않았지만 왕조를 대상으로 판단했을 때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조선왕조는 500년 이상을 지속했다. 인간이 만든 국가에 대한 역사에서 500년 이상을 존속한 왕조는 그리 많지 않다. 조선이 이렇게 오랜 기간 왕조를 지킨 데에는 왕과 신하사이에서 벌어진 역학관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왕권이나 신권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왕조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조선의 왕보다는 훨씬 쉬운 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5년이면 임기가 끝난 뿐만 아니라 권한도 왕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