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의 게세르 신화 - 샤먼을 통해 만난 신들의 세계 유라시아 북방총서 4
일리야 N. 마다손 지음, 양민종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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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르(Geser)는 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영웅 서사시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서사시 동장인물을 이름이다. 게세르란 이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바이칼 호수 인근에서 채록된 판본만 해도 백여 개에 달한다고 하고, 게다가 티베트와 몽골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게세르 신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늘은 4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에 하늘 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남과 북의 신들은 지상 세계에 관심이 없으나, 동서에 있는 신들은 지상세계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쪽 하늘에는 쉰다섯 명의 신이 살고 동쪽에는 마흔네 명의 신이 산다. 동서의 신들은 하늘세계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동쪽은 전쟁에서 패하고 지상으로 던져진다. 그런데 동쪽 하늘신의 우두머리인 아타이 울란 텡그리는 사지가 분할되어 지상에 떨어진 다음 지상을 괴롭히는 마법사로 환생한다. 각각의 사지는 굉장한 힘을 가진 존재로 지상 세계에 기근과 질병의 고통을 가져온다. 하늘세계에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늘신의 아들을 지상세계로 보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바이 게세르다. 지상으로 내려온 그는 지상을 도탄에 빠뜨린 사악한 마법사들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겪게 되지만, 결국 전투에서의 승리하게 됨으로써 지상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

신화의 세계에서 하늘과 인간세상의 연결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게세르 신화의 주인공인 게세르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다. 이는 신화를 만들어낸 한 부족이 자신들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부족 내에서도 이런 신화가 대대로 구전된다는 것은 부족의 단합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또한 선과 악을 대비시킴으로써 윤리와 도덕적인 교화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도 보편적인 모습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 보면 게세르 신화와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는 단군 신화와의 연관성을 설명한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또한 한반도에서 면면히 생명력을 이어온 샤머니즘 전통과의 연관성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론, 不咸文化論>에서 조선 고대사의 비밀을 파헤칠 단서로 단군 신화를 지목했고, 단군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고대 신화를 비교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신화의 내용 중 바이칼 호수가 생성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바이 게세르가 친아버지인 센겔렌 칸과 함께 엘리스테 산의 북쪽을 올라간다. 그곳 비탈에서 산자락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석상을 발견한다. 그 석상은 아바이 게세르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하늘의 용사들이 생명을 잃고 돌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그 모습은 본 아바이 게세르는 두 눈에서 눈물을 쏟아 냈다. 오른쪽 눈에서 나온 눈물은 바이칼 호수를 만들었고,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은 레나 강의 강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분자유전학적으로 보았을 때 한민족 중 많은 수는 북방계라고 한다. 이 북방계는 마지막 빙하기 때에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 살았으리라고 추정된다.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게세르 신화와 단군신화와 연관되지 않나 하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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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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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책을 읽던 정혜윤PD가 미팅 테이블로 와서 11명의 책벌레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푸른숲.2008년)에 소개된 11명의 사람들 독서경력은 정말 화려하다 못해 질투가 날 지경이다. 그들은 한 번 만나보자.

 

먼저 진중권이다. 오래전 필자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에셔의 어려운 그림과 함께 그의 글도 상당히 어려웠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3권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는 큰 인내력이 요구되었지만, 다 읽고 나니 해치웠다는 후련함이 나를 기쁘게 했었다. 진중권은 책을 읽는 의미에 대해 “한 권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무한을 향해 고독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공감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책과의 대화는 고독한 것이고, 그 여행을 끝냈을 때에는 혼자서 이루어 냈다는 것에 안도감과 함께 즐거움도 배가되는 것이리라. 들뢰즈의 책은 거의 “99퍼센트 남의 말을 인용했다”는 진중권의 말은 진중권의 책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최근에 읽은 <서양미술사 1>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같은 책을 두 사람이 같이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전체적인 내용을 다를 수 있다. 여기에 작가의 가치관과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김탁환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혜윤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끌어다 들인다. “어떠한 기쁨도 미리 준비하지 말라”라는 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기쁨을 누리라는 말인데, 공감이 간다. 나또한 우리네 삶이란 즉흥적인 것에 더욱 좌우된다는 것이 진리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혜윤은 김탁환에게 역사소설을 쓸 때 “한 권이 아니라 길게 쓰는가?”하고 묻는다. 이에 “읽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페이지를 넘겨서 다시 찾아가야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필자는 김탁환의 <혜초>를 읽으며 그가 의도한대로 이미 읽은 부분을 페이지를 넘겨가며 확인한 경험이 있다. 필자의 독서는 김탁환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김탁환의 소설은 내겐 쉽지 않았다.

임순례는 “책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게 좋았죠”라고 말하며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과 같다. 그러나 임순례가 읽은 책 중 필자가 읽은 것이 없다. 이럴 때 같은 책을 읽은 경험이 있었다면 필자는 임순례의 말에 더욱 더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아쉬웠다.

이번에는 영화배우 문소리의 순서다. 그녀에게 책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지나게” 해주는 존재다. 오래전 생각이 난다. 필자도 힘든 시간을 이기기 위해 한 일은 바로 책 읽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어야 책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의 평정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한시라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그러한 내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현실이 어려워도 부딛쳐서 이겨야지, 책만 읽는 것은 현실도피 아니냐?”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도피는 바로 현실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견강부회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박노자. 나는 이 사람 책을 읽으며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그는 러시아 출신이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는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사람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TV에서 본 북한 영화 ‘춘향전’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고, 이어 한국의 고전 소설에 빠져들고, 그 덕분에 그는 대학에서도 동방학부 조선학과로 진학한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빠져든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의 여배우들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 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그는 한국인이 된 것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국 영화 때문에 인생이 바뀐 것이다.

이 책에는 위에서 소개한 사람이외에도 소설가 정이현,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과 이진경, 변영주도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11명의 독서 경력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 정혜윤의 독서 편력도 상당한 깊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11명의 사람들과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읽은 책을 통해 그들을 파악하고 있다. 에필로그에 보면 “책이란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다.”라고 자신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책을 읽는 다는 행위는 그 사람의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그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나와 있는 11명이 읽은 책의 리스트를 살펴본다. 대부분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다. 우선 이 많은 책 가운데 보르헤스와 폴 오스터의 것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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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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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초반 신라의 승려 혜초는 신라에서 해로로 당나라에 들어가고, 지금의 인도인 오천축(五天竺)과 서역의 많은 나라를 여행한다. 이 여행을 기록한 책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다. 이 책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릭의 <동유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4개 여행기로 꼽힌다. 이 책에는 8세기 인도와 중아아시아 각국에 대한 언어나 풍속 등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서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귀중한 자료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는 둔황 석굴에서 싼 값에 많은 책과 문헌을 사들인다. 이른바 20세기 초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에서 벌어진 문화재 약탈이 벌어진 것이다. 중국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폴 펠리오는 둔황 석굴에서 발견된 고문서 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문서와 책자를 선별해 프랑스로 가져간다. 그리하여 <왕오천충국전>은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책 <혜초>(민음사.2008년)의 또 다른 주인공인 고선지는 누구인가. 망한 나라 고구려의 후손으로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무공을 세워 당의 안서도호부 최고 사령관에 오르는 인물이다. 고선지는 세계사에서 그 이름이 높다. 파미르를 넘는 서역원정에 대해서는 오렐 스타인같은 사람은 나폴레옹의 알프스를 넘은 것보다도 위대한 군사원정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751년 탈라스 전투에 고선지의 패전은 서양사를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탈라스 전투에서 당이 패하고 포로가 된 군사 중에는 제지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이 서역에 제지술을 전하게 되며, 이 제지술과 인쇄술은 서양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혜초와 그의 책 <왕오천축국전> 그리고 당의 위대한 장군 고선지가 이 책의 주요한 팩트이다. 이 책의 주연인 혜초와 고선지는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은 한반도 출신으로 비슷한 시기에 실크로드에서 군인으로 또 여행하는 승려로 존재했었다. 작가의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은 두 사람을 하나의 운명체로 묶어 놓는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김탁환의 빠른 문체는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순간도 딴 짓을 못하게 만든다. 이 부분이 바로 픽션 요소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검은 사막 대유사(大流沙, 타클라마칸 사막)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이어지는 혜초의 여행, 그리고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신라상인 김란수, 서역의 무희자매 등 묘한 매력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왕오천축국전>에 등장하는 나라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 사랑이 펼쳐진다. 게다가 김란수가 신라로 가지고 가는 서역의 보물들은 신라의 무덤에서 발굴된 국보급 유물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자료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사소설로서 또 팩션으로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책이고 또 좋은 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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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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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를 보면 가로선과 세로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져 있다. 세로선은 경도이고, 가로선은 위도이다. 위도를 긋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적도를 기준으로 양 극을 중심으로 90도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경도를 긋는 것은 위도와는 다른 면이 있었다. 경도는 시간을 결정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경도의 기준을 자신의 나라에 두고자 경쟁을 한다. 그 경쟁은 1884년 영국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이 경도 0도가 되고, 각 나라는 경도 15도에 따라 1시간씩 시차를 두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은 영국보다 9시간 빠른 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도 0도가 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가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본초 자오선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는 경도 0도는 “3개 대륙 9개국을 지난다. 본초 자오선의 3분의 2에 달하는 거리는 바다에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북극에서 시작한 본초 자오선은 영국을 지나, 프랑스로 넘어가고, 이어 스페인 영토를 지나 서부 아프리카를 통과해 남대서양을 가로질러 남극 대륙으로 들어간다.

경도는 국제적인 화물 운송량이 많아지면서 출발지와 도착지의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1704년10월에 군함이 암초와 부딪치는 바람에 2000명의 군인이 생명을 잃었는데, 이 원인은 경도를 알지 못해 항해하고 있는 지점을 지도상에서 정확히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7세기 말에는 원거리 항해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시계가 없었다. 한 달간의 항해에서 시계가 겨우 1분 느려지거나 빨라진다 해도 바다에서는 거리가 10여 킬로미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는 시간인데, 17세기에는 그 정도의 정확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에 영국 의회는 확실한 경도를 알아내는 사람에게 큰 상금을 주기로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존 해리슨이란 이름의 시계공이었다. 그는 항해용 크로노미터를 발명함으로써, 경도 문제를 해결했고, 해리슨은 바로 본초 자오선이 지나가고 있는 링컨셔의 배로온험버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책 <자오선 여행>(사이언스북스.2008년)의 저자인 쳇 레이모는 물리학은 전공한 교수로 경도 0도를 따라서 도보로 여행을 한다. 그는 해당 지역에서 과거에 일어난 유명한 과학적인 발견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자오선이 지나가는 도시 중 하나인 ‘다운’은 찰스 다윈이 살았던 곳이다. 그곳은 다윈이 ‘진화론’의 뼈대를 이루게 했던 지질학적 지식을 확인할 수 있을만큼 많은 화석을 가지고 있는  지형이 있는 장소였다. 다운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필트타운’이라는 곳이 나온다. 여러 책에서 ‘필트타운 인’ 사건에 대해서 소개되어 있듯이, 이곳에서는 고고학사에 있어서 20세기 최고의 사기극이 벌어졌던 곳이다. 사람의 두개골에다가 오랑우탄의 턱뼈를 붙여서 마치 오래된 인간의 조상 유골처럼 만들어, 이를 수십 년간 사람들은 이를 믿었다. 물론 나중에 이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사기극이 벌어진 이유는 유럽 여러 곳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 발굴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유골의 발굴이 없었기에 자신의 나라에 인류가 오래전부터 살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영국인들의 빗나간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장소인 라일리지스 절벽과 많은 과학자의 무덤이 있는 웨스트민스트 사원, 아이작 뉴턴이 연구한 장소인 캐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등 경도 0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2003년에 도보로 여행하면서 관련 도시에서 일어난 과학적 업적과 해당 과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근현대 과학에 있어서 영국인들의 위대한 역할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이 도보여행을 통해서 독자들은 지리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인류학, 물리학 등 여러 학문을 통해 인간과 우주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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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 과학,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홍성욱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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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전자 변형 식품 등 우리 과학은 우리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는 과연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안전한지 그리고.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설치는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지에 대해 사람들은 걱정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고 있지만, 반면 위험성 또한 내재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반대에 직면하거나 큰 이슈가 될 상황도 많이 생길 것이다.


예컨대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문제를 한 번 살펴보자. 정부에서나 과학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주민은 이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이에 따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방폐장 설치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즉 방폐장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상과학이란 20세기의 과학을 말하는 것으로 실험실에서의 연구와 그 연구결과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 그리고 연구를 지원하는 국가나 과학재단의 지원이 중요시 되던 시기의 과학을 말한다.

그러나 방폐장이나 유전자 변형식품과 같이 불확실성이 많은 기술적 위험에 직면한 상태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확대된 ‘확장된 공동체’에 의해서 합의된 일련의 단계들을 천천히 밟아 나가야 한다. 즉 과학과 시민 사회의 인터페이스를 구축해야만 한다. 이런 부분이 바로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이 다루고 있는 분야이다. 

탈 정상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더 불확실하고, 가치가 논쟁의 대상이 되며, 그 여파가 크고, 반면에 판단은 급박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 적용되는 과학”이라고 이 책 <홍성욱의 과학에세이>(동아시아.2008년)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탈 정상과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학의 주체가 ‘과학자 공동체’에서 주민과 이해 집단을 포함하는 ‘확장된 공동체’로 바뀌는 데 있다. 즉 과학의 민주화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나 방폐장 등에서 국민의 반대는 격렬했다. 홍성욱 교수의 표현에 의한다면 이는 정부에서 정상과학 수준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다시 말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고, 국민들과 쌍방 간의 대화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로 인하여 앞으로 닥칠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과학기술학(STS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udies)이라고 저자인 홍성욱교수는 말하고 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철학, 과학기술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 과학기술문화학과 같은 분야를 통합”한 학문을 말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을 함께 연구하는 학제간 융합 분야이다.

저자는 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미래 과학기술의 모습을 예측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시도이다. 지금의 트랜드를 가지고 다양한 가능성과 제약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다면 20년 후 과학기술의 개략적인 큰 방향은 몇 가지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80년 이후에 등장한 과학기술 분야의 가장 강력한 트랜드는 컨버젼스, 융합, 잡종의 트랜드다. 기존의 분야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분야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몇 가지 새로운 분야가 또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나노과학기술, 생명공학, 물질공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이 이러한 융합의 예이다.”

이 책은 과학에 관련한 시사적인 것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으로,.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인 광우병이나 대운하 건설, 황우석 사건 등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읽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안점은 다른 과학책과는 차이가 있다. 저자인 홍성욱교수는 학제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즉 자신이 과학자이지만 역사학이나 철학, 사회학, 인류학과 같은 인문학과의 학문적 만남이 중요하다는 것을 책 내용을 통해서 역설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철학에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리학과 철학을 접목시킨 점이 위대한 발견을 이끈 창의력의 기본이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통섭이라는 말이 화두이다. 홍성욱 교수는 통섭과 비슷한 개념인 하이브리드 즉, 잡종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하이브리드 세상읽기>나 <잡종, 새로운 문화 읽기>와 같이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시킨 대중과학서를 여러 권 출간한 바 있다. 홍성욱교수가 말하는 21세기 과학의 모습은 인간과 사회 속에서 깊이 자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잡종’ 학문 연구이고, 탈정상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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