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침대에서 책을 읽던 정혜윤PD가 미팅 테이블로 와서 11명의 책벌레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푸른숲.2008년)에 소개된 11명의 사람들 독서경력은 정말 화려하다 못해 질투가 날 지경이다. 그들은 한 번 만나보자.

 

먼저 진중권이다. 오래전 필자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에셔의 어려운 그림과 함께 그의 글도 상당히 어려웠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3권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는 큰 인내력이 요구되었지만, 다 읽고 나니 해치웠다는 후련함이 나를 기쁘게 했었다. 진중권은 책을 읽는 의미에 대해 “한 권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무한을 향해 고독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공감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책과의 대화는 고독한 것이고, 그 여행을 끝냈을 때에는 혼자서 이루어 냈다는 것에 안도감과 함께 즐거움도 배가되는 것이리라. 들뢰즈의 책은 거의 “99퍼센트 남의 말을 인용했다”는 진중권의 말은 진중권의 책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최근에 읽은 <서양미술사 1>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같은 책을 두 사람이 같이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전체적인 내용을 다를 수 있다. 여기에 작가의 가치관과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김탁환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혜윤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끌어다 들인다. “어떠한 기쁨도 미리 준비하지 말라”라는 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기쁨을 누리라는 말인데, 공감이 간다. 나또한 우리네 삶이란 즉흥적인 것에 더욱 좌우된다는 것이 진리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혜윤은 김탁환에게 역사소설을 쓸 때 “한 권이 아니라 길게 쓰는가?”하고 묻는다. 이에 “읽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페이지를 넘겨서 다시 찾아가야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필자는 김탁환의 <혜초>를 읽으며 그가 의도한대로 이미 읽은 부분을 페이지를 넘겨가며 확인한 경험이 있다. 필자의 독서는 김탁환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김탁환의 소설은 내겐 쉽지 않았다.

임순례는 “책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게 좋았죠”라고 말하며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과 같다. 그러나 임순례가 읽은 책 중 필자가 읽은 것이 없다. 이럴 때 같은 책을 읽은 경험이 있었다면 필자는 임순례의 말에 더욱 더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아쉬웠다.

이번에는 영화배우 문소리의 순서다. 그녀에게 책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지나게” 해주는 존재다. 오래전 생각이 난다. 필자도 힘든 시간을 이기기 위해 한 일은 바로 책 읽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어야 책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의 평정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한시라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그러한 내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현실이 어려워도 부딛쳐서 이겨야지, 책만 읽는 것은 현실도피 아니냐?”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도피는 바로 현실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견강부회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박노자. 나는 이 사람 책을 읽으며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그는 러시아 출신이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는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사람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TV에서 본 북한 영화 ‘춘향전’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고, 이어 한국의 고전 소설에 빠져들고, 그 덕분에 그는 대학에서도 동방학부 조선학과로 진학한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빠져든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의 여배우들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 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그는 한국인이 된 것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국 영화 때문에 인생이 바뀐 것이다.

이 책에는 위에서 소개한 사람이외에도 소설가 정이현,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과 이진경, 변영주도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11명의 독서 경력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 정혜윤의 독서 편력도 상당한 깊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11명의 사람들과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읽은 책을 통해 그들을 파악하고 있다. 에필로그에 보면 “책이란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다.”라고 자신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책을 읽는 다는 행위는 그 사람의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그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나와 있는 11명이 읽은 책의 리스트를 살펴본다. 대부분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다. 우선 이 많은 책 가운데 보르헤스와 폴 오스터의 것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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