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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의 게세르 신화 - 샤먼을 통해 만난 신들의 세계 ㅣ 유라시아 북방총서 4
일리야 N. 마다손 지음, 양민종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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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게세르(Geser)는 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영웅 서사시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서사시 동장인물을 이름이다. 게세르란 이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바이칼 호수 인근에서 채록된 판본만 해도 백여 개에 달한다고 하고, 게다가 티베트와 몽골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게세르 신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늘은 4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에 하늘 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남과 북의 신들은 지상 세계에 관심이 없으나, 동서에 있는 신들은 지상세계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쪽 하늘에는 쉰다섯 명의 신이 살고 동쪽에는 마흔네 명의 신이 산다. 동서의 신들은 하늘세계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동쪽은 전쟁에서 패하고 지상으로 던져진다. 그런데 동쪽 하늘신의 우두머리인 아타이 울란 텡그리는 사지가 분할되어 지상에 떨어진 다음 지상을 괴롭히는 마법사로 환생한다. 각각의 사지는 굉장한 힘을 가진 존재로 지상 세계에 기근과 질병의 고통을 가져온다. 하늘세계에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늘신의 아들을 지상세계로 보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바이 게세르다. 지상으로 내려온 그는 지상을 도탄에 빠뜨린 사악한 마법사들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겪게 되지만, 결국 전투에서의 승리하게 됨으로써 지상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
신화의 세계에서 하늘과 인간세상의 연결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게세르 신화의 주인공인 게세르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다. 이는 신화를 만들어낸 한 부족이 자신들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부족 내에서도 이런 신화가 대대로 구전된다는 것은 부족의 단합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또한 선과 악을 대비시킴으로써 윤리와 도덕적인 교화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도 보편적인 모습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 보면 게세르 신화와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는 단군 신화와의 연관성을 설명한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또한 한반도에서 면면히 생명력을 이어온 샤머니즘 전통과의 연관성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론, 不咸文化論>에서 조선 고대사의 비밀을 파헤칠 단서로 단군 신화를 지목했고, 단군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고대 신화를 비교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신화의 내용 중 바이칼 호수가 생성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바이 게세르가 친아버지인 센겔렌 칸과 함께 엘리스테 산의 북쪽을 올라간다. 그곳 비탈에서 산자락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석상을 발견한다. 그 석상은 아바이 게세르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하늘의 용사들이 생명을 잃고 돌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그 모습은 본 아바이 게세르는 두 눈에서 눈물을 쏟아 냈다. 오른쪽 눈에서 나온 눈물은 바이칼 호수를 만들었고,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은 레나 강의 강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분자유전학적으로 보았을 때 한민족 중 많은 수는 북방계라고 한다. 이 북방계는 마지막 빙하기 때에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 살았으리라고 추정된다.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게세르 신화와 단군신화와 연관되지 않나 하고 생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