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노벨 생리의학상이 발표가 되었고, 그 주인공은 제임스 로스먼, 랜디 셰크먼, 토마스 쥐트호프가 되었다. 한 분야에 세 명까지 동시에 시상받을수 있는데, 작년에는 존 거든과 야마나카 신야였었다면 이번에는 세 명이 채워진 것 같다. 그들이 이번에 상을 탄 분야는 '세포 내 단백질의 전달 메커니즘' 에 관한 것이라는데 사실 기사만으로는 잘 감이 안잡힌달까. 노벨상 위원회는 1980년대 그들이 썼던 논문을 그들의 주요저작물, 그러니까 그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논문으로 판정하였다고 한다. 어쩐지.. 골지Golgi 시스템이라던가 소포체 등은 너무 익숙한 생물학적인 개념이기는 하다. 중학교때도 배우지 않는가, 풋. 물론 그렇게 단편적인 지식은 아닐테고.. 분명 여러 수용체들과 그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가 그들에게 노벨상을 부여했으리라고 본다. 세포 내 수송작용과 전달기전은 순수과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분명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의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질환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테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 실제로 내가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할 분야는 생리의학상이어야 할텐데도 - 물리학상이다. 2013년의 노벨 물리학상은 특별하다. 과연 피터 힉스가 힉스 입자를 예견한 공로로 물리학상을 획득할 것인가? 스티븐 호킹은 작년에 CERN에서 힉스 입자가 매우 높은 확률로 발견되었다, (어설픈 용어 선택이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어떤 입자가 발견되었고, 그 입자는 우리가 예측한 힉스 입자의 성질과 높은 수준의 확률로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라고 하여야 옳다.) 는 소식을 듣고 힉스 입자의 발견은 정말 대단한 일이며, 힉스가 이번에 노벨상을 타는 게 옳다, 라고 이야기했었다. 스티븐 호킹은 힉스 입자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의 예상이 빗나갔었다. 그리고 힉스는 이 신의 입자God's particle, 아니 Godamn particle가 자신의 생전에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못했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왜 Godamn particle이라고 썼는지는 예전에 언급한 바 있다. 힉스는 원래 이 입자를 보고 Godamn particle이라고 농담조로 명명하려고 했고, 그것을 따른 리언 레더먼 : '약력을 규명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탄 물리학자' 는 본인의 책에서 그것을 따르려고 했지만 출판사에서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God's particle로 바꿔버렸다.)
나는 작년 7월 4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나는 무슨 물리학자도 아니고, CERN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물리학도조차도 아니지만 그 들뜬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다. CENR이전에 페르미 랩에서는 이미 힉스 보존으로 짐작이 되는 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연구 결과가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지우기, 그러니까 있을 만한 에너지 수준을 조금씩 지워나가면서 발견해나가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범위가 좁혀진 것은 사실이고, 이 상태로 나아간다면 더 높은 에너지 수준을 탐색할 수 있는 CERN에서 결판이 나리라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작년에 본 CERN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한 연구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이다' 라고. 그리고 7월 4일, 힉스 입자로 짐작되는 입자를 발견해내고 말았다. 그리고 작년 말, 높은 수준으로 확정지었다. 힉스 입자에 대한 발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해 10월 일본 연구소에서 확정지어졌다.
근데 힉스 입자가 뭐가 중요한 걸까? 많은 사람들이 신의 입자, 라고 부르면서 오오, 라고 감탄사를 내뱉기는 하지만 실제로 왜 중요한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실용성의 측면에서라면 힉스 입자가 있든 없든 이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비유할 수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 데이비드 흄은 회의론을 극한까지 몰고나가서 '젠장, 세상이 정말 내 눈에 존재하는건가?' 라는 식으로 내뱉는다. 하지만 칸트는 흄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눈앞에 있는게 진짜로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그건 상관없잖는가.' 이를 두고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칸트가 다시 철학의 기초를 붙들어매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힉스 보존이 있든 없든 우리 거시적인 삶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는 힉스 입자를 대칭성, 그리고 거기서 오는 아름다움으로 파악하기에 높게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이 무슨 특별한 계기가, 그러니까 무슨 아광속 여행이 가능하다던가, 타임머신이 만들어진다거나,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힉스 입자의 역할은 그런 SF적인 상상력과는 거리가 멀고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런 상상력들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힉스 보존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된다. 실용성만으로 어떤 지식을 평가한다면 우리의 지식 수준은 그 옛날 원시인에서부터 그다지 많은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리라. 이러한 순수한 과학이 쌓여 실용적 의미도 가지고 되는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실용적 의미를 가지지 않으면 어떤가? 다른 모든 것을 넘어서 세계의 구조를 쫓는다, 라는 것은 정말 가슴 뛰는 일이 아닌가? 그런 욕구야말로 가장 순수한 욕구일 것이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증말이다.
그렇다면 이 힉스 입자는 어떤 입자일까? 사실 이 힉스 입자는 부산물에 가까운 입자이다. 확실한 설명은 왼쪽의 숨겨진 우주, 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특히 왼쪽의 책의 저자인 리사 랜들은 입자물리학자로 이런 입자모형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이기에 훨씬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서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아는 만큼만 끄적여보자면, 첫 번째, 힉스 메커니즘은 자발적 대칭성 깨짐과 연관이 있다. 두 번째, 힉스 입자는 힉스 메커니즘의 부산물이다. 세 번째, 힉스 메커니즘은 힉스 장을 통하여 질량을 부여한다. 바로 이 세 번째 성질때문에 힉스 입자가 질량과 연관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힉스 입자가 질량을 준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힉스 입자는 일종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말하자면 힉스 메커니즘으로 인하여 입자는 질량을 부여받게 된다. 뭐라고? 주의깊은 사람이라면 이 말들에는 좀 모순이 있는 것 같다고 여길 것이다. 방금 세 번째, 를 보면 힉스 장이 질량을 부여한다는데 또 힉스 메커니즘때문에 질량이 생긴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여기서 우리는 게이지 이론Gauge theory에 대한 정말 기초적인 사실을 가져와야만 한다.
게이지 이론은 사실 입에 잘 익지 않는 단어이리라. 그러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의학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사람이라면 분명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기 18게이지 니들Needle 주세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게이지는 측정 단위다. 측정에 쓰인다, 라고만 알고 있어도 좋다. 그런데 이 게이지가 왜 물리학에 등장했는가? 철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연은 우리 인간과 떨어져 존재하는 실재다. 우리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자연이 우리 인간을 따라서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런 유물론적인 관점이 과학자들은 가지고 있다. (사실 나는 장기적으로는 이런 관점이 우리가 사회를 보는 관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만 여기서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 자, 동의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을 한 눈금이 1cm인 자로 측정하든, 1mm인 자로 측정하든 그 결과는 같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느 새싹을 측정했는데 눈금이 1cm인 자로 측정했을때는 10cm이고, 1mm인 자로 측정하였을때는 100mm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우린느 자연이 10cm이기도 하지만 100mm다, 라고 여겨야 하는가? 아니다. 이럴 경우에 우리는 10cm은 100mm이다, 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씩 1cm이 눈금인 자를 가지고 측정을 하는 경우도 있고, 1mm가 눈금인 자를 가지고 측정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입자 물리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을 게이지 변환이라고 부른다. 측정하는 것을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앞서도 예를 들었듯 우리가 어떤 측정 도구를 가지더라도 자연을 동일하게 기술하여야 한다. 이 측정도구는 입자 물리학에서 게이지 보존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을 동일하게 기술한다는 이야기를 입자물리학에서는 게이지 대칭성이 유지가 된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휘소 박사는 이야기한다. '게이지 보존의 질량 항은 - 게이지 보존은 보존이라는 말 그대로 힘을 매개하며 광자, W입자, 글루온 동이 있다 - 국소 게이지 변환에 대해 불변이지 않으므로 존재 할 수 없다' 라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말을 다 빼면 변환했는데 동일하게 자연을 기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동일하게 자연을 기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라서 이휘소 박사는 말한다. 게이지 입자는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게이지 입자의 질량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강력을 매개하는 글루온의 경우 질량은 0이지만, W입자의 경우 1983년 와인버그-살람의 이론에서 예측한대로 낮은 에너지에서 높은 질량을 가지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일까?
이론상으로는 게이지 보존의 질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시스템이 있어서 질량을 부여해준다면? 바로 여기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대두되게 된다. 일단 단순한 방법으로는 저 대칭을 깨지 못한다. 대칭은 정말 아름다우며, 물리학뿐만 아니라 여러 과학 분야에서는 뛰어난 툴Tool이다. 하지만 이 대칭이 꼭 들어맞지가 않다면? 실제로 대칭인 때보다 비대칭일때가 더 안정된 상태라면? 이런 이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이에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논의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난부 요이치로와 제프리 골드스톤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참고로 이 자발적 대칭성 깨짐은 전자기력과 약력의 통합에 큰 역할을 했었다. (사실 설명의 선후가 조금 바뀌었다. 하지만 쉬운 설명을 위해서 양해해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깨어진다면 이제 대칭상태에서는 질량을 가지지 못했던 게이지 입자들도 질량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걸로 끝인가?
아까 첫 번째, 에서 나는 힉스 메커니즘이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크게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분명 자발적 대칭성이 생기면 질량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자, 여기서 힉스 장이라는 것을 가져 오자. 장field는 말 그대로 그 힘이 작용하는 범위를 뜻한다.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명제다. 힉스 장은 어디에나 있다. 여기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미시세계에서 입자와 파동이 상보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중 가장 특이한 사실일 것이다. 바로 이 상보성때문에 영원한 파동은 없고, 영원한 입자는 없다. 힉스 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파동은 어느 순간 입자로 봉긋 솟아오를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상호작용하면서 말이다. 그런 순간을 힉스 장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힉스 장은 네 개의 성분을 가지게 되는데, 그 중 셋은 게이지 보존에 질량을 부여하고 남은 하나는 힉스 보존으로 남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일종의 연예인의 거리 등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요즘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아이돌이 거리를 걷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아이돌을 알아본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돌 주변은 북적북적거릴 것이다. 원래 거리를 걷던 사람을 힉스 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돌이 나타난 경우 그 아이돌에게 가는 것들을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혼잡한 거리를 걸으면서 '오 마이 갓, 자꾸 밀려나가' 라고 외치는 심정을 힉스 메커니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썩 좋은 비유는 아닌 것 같다. 내 식으로 설명하자면 이렇게 설명하련다. 자연을 판단하기 위하여 우리는 게이지 대칭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게이지 변환을 하다보니까 변환이 제대로 안되고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으니 측정 시스템을 바꿔서 다시 시도하였다. 측정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문제가 되는데, 가지고 있던 측정 기구의 눈금을 모두 가지는 - 예를 들어서 버튼을 누르면 눈금이 바뀐다거나 - 그런 측정 기구를 가져왔다고 하자. 그 기구를 통하여 얻어진 결론은 새로운 시스템으로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그 시스템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고 그단위가 힉스 보존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물리학의 정말 편린의 편린에 지나지 않는 글이다. 이 글에는 분명 오류도 있을 것이며 - 그렇다고 수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테지만 - 그렇기 때문에 이 글만으로 힉스 입자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힉스 입자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차원과 에너지 수준을 도입한 뒤 멕시칸 모자 모양의 그림을 하나 그려야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 확실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힉스 입자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글로 이런 과학적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정말 조금이라도 생기기를 바랄 뿐이고, 무엇보다도 이 글이 힉스 입자와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될 -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 피터 힉스 그리고 이휘소 박사에 대한 일종의 감사로 읽혀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