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쌓여있는데 잘 읽지를 않고 있다.

솔직히 지금은 바쁜 건 아닌데 그냥 머리가 지끈거려서 잘 들춰보지를 못한다.

열심히 놀고만 있다.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제법 재밌는 책이었달까. 책에서 강신주는 말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긴가민가한 사람들을 자기쪽으로 끌여들여야 되지 않겠나, 비슷한 말을 말이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불호쪽인데 - 강신주에 대한 감정이 불호인 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 그런 내가 읽어도 정말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달까. 강신주 본인의 저작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소 과격한(?) 사랑론 등등.. 여러 이야기를 하던데, 결과적으로 강신주에 대한 불호감[...]은 더 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왜 강신주에 대한 감정이 불호냐고? 나는 너무 강한 주장을 펴는 사람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독단적이어야 할 때도 필요하지만 그런 독단성은 충분한 근거와 증거 그리고 신비한 마술에 이를 정도로 착착 갖추어진 합리적 확신이 바탕이 되었을 때 정당화 되는 것이다. 굳이 이 예를 들자면 폴 디랙이 자신이 개발한 방정식이 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틀릴 수 없다고 여겼던 것 처럼 말이다 - 결국 양전자가 발견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N포털의 캐스트를 참조하라)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이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확신이 저만큼이나 아름다운 확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일단 여러 입장을 동시에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가진다. (물론 더 '마음에 드는' 혹은 속된 말로 '촉' 이 오는 이론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의 이론이 정말로 합리적이라면 결과적으로는 어느 누구든 호로 바뀔 것이다. 나는 차라리 그가 말하는 주류의 입장 - 그가 말하는 주장도 옳을 수 있다 - 가 더 마음에 든다. 더 유연하다, 랄까나. 과학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함이다. 그런데 철학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철학에서는 꼭 유연함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달까. 강신주가 아무리 양자역학책을 들여다본다고 주장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철학자이고 인문학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철학자로 살 것이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이 책도 생각 외로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아직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으나 별 기대없이 읽고 있는데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었다, 랄까나.

그런데 이 경우 로쟈가 글을 잘써서 재미있는 것인지, 아니면 로쟈가 읽으려고 하는 대상인 지젝의 사상이 흥미로운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다만 하나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프로이트의 이론을 실재의 해석에 가져다 붙인 부분이 앞에 나오는데,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의 전환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 좀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지젝의 해석은 어느 쪽이든 억지로 가져다 붙인 느낌이 난달까. 아니, 가져다 붙인 것은 둘째치고 오류가 있는 것 같다. 지젝은 특수상대성이론이 물체 - 휜 공간, 이며, 일반상대성이론은 이것이 전환되어서 휜 공간 - 물체, 의 쌍을 이루게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이야 기하로 힘을 설명하는 이론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특수상대성이론은 저런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부터 공간과 물체의 관계가 이야기되지는 않는다. 공간과 물체가 설명되는 것은 중력과 가속력을 구분할 수 없다, 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많이들 아인슈타인의 휜 공간에 감명을 얻어 많이들 쓰는 것 같은데.. (철학 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 이라는 책에도 범주를 설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들이 적혀져 있다.) 사실 상대성이론에서의 휜 공간은 생각의 확장의 부수적 산물이다. 이게 근본은 아니다. 정말 중심이 되는 것을 꼽자면 관성계, 이리라. 물론 휜 공간, 에 대한 이야기도 틀리지는 않지만, 그건 결과물이다. 나는 철학자들이 인식의 전환, 이라는 것에 너무 초점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이론을 보면 결국 보면 알겠지만 논리적 정합성을 따른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움직여야만 되는데 네가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움직이겠다, 라는 느낌이랄까. 너무 인식의 전환, 에 초점을 둔다면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꼴 세트, 신의 가면.

 꼴 세트는 요즘 반값할인중이다. 한 번 구입해놓으면 좋을 것이다. 관상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구입하여서 읽어볼 만 하다. 그런데 사실 이 허영만의 꼴, 에서는 뭐랄까, 허영만 본인의 생각과 이 만화를 감수한 관상가 생각의 부딪힘들이 너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관상가는 꼴대로 살게 될 것이다, 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 허영만은 배우는 입장이라서 대놓고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없으니 소심하게(?) 만화의 컷마다 조그만 반항을 그리는 것 같다. '정말 ~~~라면, ~~~들은 다 ~~~하겠네?' 라는 식으로. 아마 인터넷 연재 당시에도 많은 반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꼴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되겠나, 라고. 허영만 본인의 입장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꼴 만화로 유명한 것은 오른쪽 신의 가면, 도 마찬가지이다. 만화, 라는 것에 입각해서 둘 중 어떤 책이 더 잘넘어가는가, 라고 한다면 이 신의 가면, 이 더 재밌다.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허영만의 만화에 비하여, 이 책은 회사와 관련지어서 스토리들이 짜여있기에 말이다. 다만 끝이 좀 미진한 것이 아쉽다. 두 만화를 동시에 놓고 같은 상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상불여심상이다. 관상은 마음상보다 못하다. 그리고 이 뒤에 한 문장이 더 있다. 심상불여용심이라, 마음상은 그 마음씀씀이보다 못하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 그리고 그 이쁜 마음을 실제로 쓰고 있는가, 가 당신의 운명에 가장 중요하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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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8-12 02:30   좋아요 0 | URL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책은 재미있게 읽고 있군요 철학도 유연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은 무엇이든 다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진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주장하고는 좀 다르려나

글을 잘 써서인가 그 대상이 가진 사상이 재미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재미있네요 먼저 대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글을 쓸 수는 없겠죠(억지로 쓸 때도 있겠군요^^)

사람은 무엇인가 정해져 있는 것을 싫어하죠 만약 그게 좋다면 그렇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나쁘면 꼭 그게 맞지는 않을 거다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지... 관상도 살아가면서 바뀌지 않나요 그러니 이것도 정해져 있지는 않죠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바뀌겠군요 잘 써야 할 텐데...^^

노는 것도 열심히...


희선

가연 2013-08-12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지요.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책의 저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재미있다는 것은 그 책 자체만 보면 되는 것이니, 풋. 확실히 대상을 좋아하니까 재미가 있는 글을 쓸 듯 합니다.

비로그인 2013-08-12 11:19   좋아요 0 | URL
가연님 잘 지내시죠? 전 요즘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있어요 너무 재밌어서 아껴가며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 : ) 평소 읽는 속도대로 읽지 않고 어떨 땐 한 쪽을 한 시간에 걸쳐 읽고 또 읽고 하네요.

가연 2013-08-12 18:10   좋아요 0 | URL
오오오오오오오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계시는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정말 재미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