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자면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이 글에는 분명 엄밀하지 않은 부분이 많을 것이다. 물론 기초적인 역학이나 일반물리학, 미적분(Calculus라 불리는 바로 그것)은 수강했었다. 하지만 모든 대학의 강좌가 그렇듯 나중에는 자신이 쓰게 될 분야만 중점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고, 그 외의 것들은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 묻어두게 된다. 그리고 특히나 물리학에서 역학이나 전자기학, 파동 등 일반물리학에서 다루는 영역은 고등학교때 이과를 택한 학생이라면 겹치는 부분도 분명 있기도 있기에 현대물리학의 성과를 상상하며 물리학을 수강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물리학과가 아니었던 나도 실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끝의 맛보기처럼 실린 입자물리학과 상대성이론 약간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물리학의 성과들, 양자역학과 같은, 을 이해하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고전역학 부분을 알아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물리의 언어라고 불리는 수학에 대한 이해 및 공부도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야만 할 것이다. 부연하자면, 양자역학만 공부하겠다는 말은 사실은 어폐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마치 허공에 구조물을 짓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실제로 물리학과에서는 양자역학을 학부에서는 3, 4학년에 걸쳐서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더 심화된 학문은 대학원을 거쳐서 본인이 스스로 공부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양자역학을 알기 위해서 고등학교때 배웠던 역학과, 심화된 전자기학, 미적분 방정식을 다시 공부하라는 것은 그냥 상대방보고 물리학과를 가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중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이제 더이상 뉴턴의 사과와 같은 것이 아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가 특이함과 매혹, 이해함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음과 같은 양가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그러니깐 나를 포함한, 양자역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대중들은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저런 수학적인 기초와 역학이나 전자기학적인 기초가 없으면 양자역학은 공부를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인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학문인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사실 그렇지 않다, 일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역학에 대한 기초가 있어야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물리적인 상상력과 직관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 직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없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물리학자들은 그들의 책에 최대한 비유를 많이 들게 된다. 물론 그들 자신도 그 비유가 엄밀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수학을 피해서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리학적인 개념을 사회학적이나 인문학적인 개념에 적용시키는 것에 대한 문제점이 나타난다. 물리학자들이 책에서 드는 비유는 옳은 것이 아니다. 물론 아예 그르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기에 쓰는 비유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런 비유는 실제 과학자들이라면 당황스러워할 그런 개념의 연결을 가져오게 된다. 레닌의 경우가 그럴 것이다.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전자는 무진장' 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사실 그 표현은 옳지 않은 표현이다. 입자물리학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보고 레닌 당시의 어느 물리학자가 말하기를, 레닌과 자신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이념뿐만이 아니군요,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불확정성 원리를 인간의 지적 능력에 지워진 한계다, 와 같은 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잘못된 관점이다. 불확정성 원리가 나타나는 이유가 빛, 광자가 전자에 부딪혀서 경로가 바뀐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잘못된 관점이다. 여러 비유는 이런 식의 문제점을 낳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유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저렇게 엄밀한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물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호기심을 접을 수 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물리학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여담이지만 사실 순수과학으로 먹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물리학자가 아니면 물리학을 하지마! 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일테니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횡포인지는 잘 알리라 믿는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우리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닐 테니, 충분히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순수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굳이 수식들을 휘갈기며 내쫓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호기심, 그리고 의문이 축적되어 과학이 발달하는 토양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그 열정을 잃게 하지 않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양자역학에 관련된 몇 권의 책들을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한 번 소개해 본다. 물론 여기 있는 책들을 내가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사실 후반부에 소개하는 책들은 전문 서적들이기 때문에 내가 공부했다면 그 사실이 더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1. 대중적 영역.

 

 

 

한 권으로 충분한 양자론.

 야심 만만하게 한 권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사실 한 권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사실 이 책 한 권만 읽는다고 할지라도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흐름을 따라가는데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수식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다른 서술 방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역사적인 사건으로 따라가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충실하게 어떻게 막스 플랑크에서부터 양자론이 태동했는가, 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데이비드 봄의 해석을 크게 중요시하여 책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는 것인데, 사실 봄의 해석보다는 좀 더 입문서에 걸맞게 코펜하겐 해석을 따라서 서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다시피 봄의 해석과 코펜하겐 해석 둘 모두 세계를 그리는데 문제가 없다면 한 쪽의 해석만 무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다.

 

 

 

양자역학의 법칙.

이 책은 매우 추천할만한 책이다. 저자 그룹인 히포패밀리, 는 사실 잘 모르는 그룹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는 자신들이 어떤 그룹인지 조금 소개하고 있기는 한데, 그들 말에 따르면 언어를 연구하는 그룹이라고 한다. 원래 일본에서 시작된 그룹인긴 하지만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고 하던가. 대략 그들의 교육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많이 축약하자면) 테이프를 많이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 방법은 그들이 다른 영역을 연구할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그 결과물이 파동의 법칙, 이라는 책과 이 양자역학의 법칙, 이라는 책이다. 책은 사실 가볍게 편집된 부분이 있다. 군데 군데 만화캐릭터를 그려넣고, 글씨 크기도 매우 큼직큼직하다. 물론 반드시 조그만 글씨에 여백없이 종이를 가득 채워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런 여백없이 종이를 가득 채운 문자의 향연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왜 이렇게 가볍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편집과는 달리 결코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다. 흑체 복사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이끌어내고, 그 후에 드브로이를 거쳐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수식을 이끌어내었는지 우리가 직접 펜을 들고 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여기에 있는 내용을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안다, 등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여기서 유도하도록 되어있는 파동방정식은 가장 간단한 경우를 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문교양서와 대중의 눈높이, 라는 두 면을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고 본다.) 그들의 말대로, 물리는 그 영역의 언어인 수학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명료할 것이다. 어설픈 비유가 아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특히나 고교 학력이 매우 높은 편인 우리나라라면 이과를 졸업했다면 무리없이 따라갈 것이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수학을 가지고 말이다.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이 책은 권하는 책이다. 아래에 소개하겠지만,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라는 속칭 '빨간 책' 이라는 것이 있다. 그 책은 물리학의 전반적인 영역을 강의한 책인데, 그 책에서 그나마 쉬운 부분을 골라내에 이렇게 추려낸 것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이다. 파인만은 말하기를, 우리 문명이 만약에 멸망해서, 다른 모든 지식을 잃게 되는 상황을 맞이 했을 때, 단 하나만 알고 있다면 모든 지식을 유추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단 하나, 에 해당하는 것은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라는 명제이다. 얼핏 보면 과연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파인만은 자신의 강의록과 그 강의록에서 쉬운 내용을 추린 이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펼쳐나간다. 물론 파인만의 기행들, 그리고 그의 생각의 자유로움만을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으로, 더 나아가 물리 세계로 한 발자국 딛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숨겨진 우주.

개인적으로 호평하는 책이다. 입자물리학의 입장에서 최신물리학의 성과들을 설명하고 있는 책인데, 물론 '최신' 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번역된 것이 2008년으로 알고 있으니. 그러나 기존의 물리학에서 크게 바뀐 부분은 2012년 현재 아직은 없다. (힉스 보존의 발견을 들 수 있겠지만, 기존의 입자모형들이 힉스 보존의 존재를 가정 하에 이루어진 부분들이라 크게 개변은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큰 효용을 가진다. 수많은 이론들을 좋은 비유를 통해서 잘 설명하고 있으며, 이 책의 내용만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입자물리학을 다룬 기사를 읽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 연구 성과, 힉스 보존의 발견에 대해서 2008년 정도의 시기에서는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잘 알아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뒤의 저자 본인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페이지들은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겠지.

 

 

 

현대물리학.

이 책도 괜찮은 책이다. 아인슈타인 이래로 시공간의 곡률을 결정하는 것이 중력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중력이라는 녀석은 실제로는 입자물리학에서는 좀 소외되는 녀석이다. 표준모형에서 다루는 힘은 사실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의 세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중력, 을 다루는 이 책은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태초의 우주는 빅뱅 가설에 따르면 매우 크기가 작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크기가 작은 (플랑크 길이 이하의) 시점에서 네 힘은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진정한 모든 것의 이론은 플랑크 길이의 크기 이하에서 융합되었으리라고 짐작되는 네 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이론이다.) 다시 따져본다면, 우주의 비밀을 탐구한다는 이 책에사 중력을 살핀다는 이유로 다른 힘들을 살피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입자들에 대한 설명도 매우 충실하다.

 

 

 

얽힘의 시대.

양자 역학을 대중이 접하는 방식으로, 위의 책들을 통해 과학적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접하는 길도 있겠지만, 이 얽힘의 시대, 처럼 역사적인 측면을 따라가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양자물리학사를 인물을 따라서 조명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 물론 흐름 자체는 앞에 소개한 책들과 동일하다. 막스 플랑크에서 아인슈타인 등으로 흐르는 그 흐름 말이다. 굳이 이 책에서 특기할만하게 다루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양자역학의 주류 해석을 비판한 데이비드 봄을 다룬 분야일텐데, 사실 제일 처음 소개한 책에서도 봄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의 책들을 읽는다면 굳이 우리는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대화' 에 있다. 우리는 한 문단으로 길게 쓰인 글보다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더 이해가 빨라질 수 있다.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양자역학에 있어서 분명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의 최전선.

이 책은 실험물리학자들에 대한 책인데, 꼭 실험물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물리학에 대한 흥미를 계속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일종의 모험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양자역학에 관련된 부분, 입자물리에 대한 부분만을 살펴보고 싶다면 뒤의 부록부분만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실험물리학자들이 우주의 비밀들을 풀어나가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할까? 이 책의 주인공들은 바이칼 호수든, 남극 대륙이든 겁없이 뛰어들어간다. 현대물리의 최전선에 서 있는 LHC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실 실험물리분야는 쉬운 분야가 아니다. 이론물리 또한 쉬운 분야는 아니지만 실험물리의 어려움은 그것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예산' 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강의에서 우주 탐사에 대한 비용을 늘려달라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돈을 들인다고 해서 바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니 답답할 뿐이다. 

 

 

 

2. 대중적 영역과 전문적 영역의 사이.

 

 

 

파인만의 QED.

 사실 이 책은 어려운 편이다. 파인만의 이름이 있다고 해서 모든 책들이 쉽지는 않다. 앞의 책들을 읽었다고 해서 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는 없다. 파인만은 일반인도 양자전기동역학, 을 이해할 수 있어 라는 마음을 가지고 강의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파인만 본인이 자인했다시피, 강의를 하면 할 수록 사람들이 빠져나갔었다. 이 책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앞부분은 겨우 읽을 수 있겠지만 더 읽다가는 머리가 아파질 것이다. 물론 다 읽는다면 결론적으로 도움은 될테지만, 아무래도 일반인들을 상대로 자신이 이뤄낸 재규격화를 설명하는 것은 사실 좀 무리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파인만의 양자전기동역학, 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한다고 해도 이 책은 그리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영역과 대중적인 영역의 사이에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구매해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런 독자라면 차라리 아래에 소개할 파인만의 물리학, 을 구입할테지만.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

감히 말하건데 이 책은 분명 어느 정도 읽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솔직히 당장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제목은 매우 흥미를 유발할만한 책이지만,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수식들은 그야말로 의욕을 꺾게 만든다. 원래 수식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나조차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 정도니 수식에 거부감까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양자역학에의 길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책 내용은 앞서 소개한 '얽힘의 시대' 를 크게 심화시켰다고 여겨진다. 그러니깐 일반 독자 수준에서는 앞서 소개한 얽힘의 시대, 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어떻게 물리학과 철학을 합쳐보는가, 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책들이 철학의 입장에서 물리학을 합쳐보려고 했다면, 이는 물리학의 입장에서 철학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하는 시도이다. 그렇기에 사실 물리학쪽에서 공부를 해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실체에 이르는 길.

이 책은 매우 뛰어난 책이다. 단순히 양자역학 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 전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구입하는 것이 좋다. (단순히 읽기 위해서라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것이 좋겠지만, 책을 완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구입하는 수 밖에 없다.)  물론 내용은 쉽지 않은 수준이다. 저자는 로저 펜로즈인데, 책을 읽어보면 정말 저자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 가 군데군데 잘 드러난다. 앞서 이 책을 구입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을 완전히 즐기기 위해서, 라고 말했는데, 분명 그 말대로이다. 이 책은 연습장이 필요하다. 한 페이지에 많게는 서너개, 적게는 한개 정도 우리가 직접 증명해보아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물론 꼭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뒤의 로저 펜로즈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펜을 들고 직접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앞서 소개한 양자역학의 모험, 의 레벨업 수준의 책이랄까. 그렇게 읽으면 언제 다 읽게 될 지 모르겠다고? 그렇다. 사실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 모두 제대로 읽으면 언제 다 읽게 될지 모르는 책들 뿐이다.

 

 

 

3. 전문적 영역.

 

 

 

들어가기 전에 먼저 변명을 하자면,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은 내가 직접 조금이라도 본 책들도 있지만, 내가 이야기만 들은 책들도 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결과적으로 '물리학과에서는 양자역학을 배울 때 무엇으로 배우나요?' 에 대한 답이 되어버릴 것 같지만, (심지어 나는 물리학 전공도 아니다.) 그럼에도 혹시나 위의 전문적 영역과 대중적 영역의 사이를 돌파해온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급해둔다. 물론 수학적 부분은 독자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양자역학.

그리피스의 양자역학이다. 앞부분에는(솔직히 앞부분밖에 읽지 않았다.) 오타가 군데군데 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학부 수준에서는 상당히 좋은 책으로 알고 있고, 부교재로도 쓰고 있다. 물론 물리학과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제일 앞부분과 제일 뒷부분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거기서 양자역학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리피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는 이야기한다. 실제적인 수식을 다루지 않는 이상 그런 이야기들은 사실 크게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의 말이 그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수학은 물리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말이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에서는 바로 어떻게 이 수학을 가지고 물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여기서 늘어놓는다, 라는 말은 연습문제, 그리고 풀이, 라는 의미와 비슷하다.)

 

 

 

양자역학.

 대부분의 대학 교재들은 모두 외국인들이 쓴 교재들이 많다. 그리고 번역도 안된 원서를 직접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우리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도리어 번역을 하니 더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같은 주제에 대해서 쓴 책이 있다면 전체적인 학문의 흐름 전개나 문맥 이해에 매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이 책이 그런 측면에서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사실 수식을 전개하는데 무슨 언어의 장벽이 있겠는가. 내용에 대해서 내가 무엇이라고 평할 처지는 못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양자 역학이 더 쉬워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겠다.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수식이 나온다.. 그 수식의 정교함은 분명 감탄할 부분이겠지만, 아무래도 한숨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3.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파인만은 자신의 업적 중 이 물리학 강의, 1~3권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이 책은 파인만이 강의한 녹취록을 가지고 책으로 편집한 것인데, 칼텍 1, 2학년 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로 알고 있다. 하지만 1, 2학년 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고 해서 책 내용이 쉬운 것이 아니다. 책머리에도 나오지만 처음에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가면 갈수록 학생들이 아닌 교수들이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하던가. 1권은 고전역학, 2권은 전자기학이고 남은 한 권이 바로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은 그나마 별로 수식도 없고, 글씨도 시원시원한 것이 읽기도 편한데, 분명 읽는 재미도 있고 글에서 저자가 느껴지지만 (번역을 신경써서 했는지 유머스러움이 살아있다.) 읽다보면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한 두 부분이 아닐 것이다. 마치 파인만이 진짜 칠판 앞에 서서 '후훗, 어때? 나의 멋진 물리학 솜씨가?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어서 답답해질 지경이다. 애초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되니 말이다. 그럴때에는 다시 처음부터 막혔던 부분까지 읽어나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당장은 할 이야기가 없다.

 

 

 

 

 

 

 

 

 

 

 

 

 

 

 

 

 

 

 

 

 

 

 

 

 

 

 

 

 

 

 

 

 

 

시계방향으로부터 Liboff, shankar, dirac, gasiorowicz인데, dirac의 양자물리학 교재는 장난 아니게 어렵다, 는 말을 들었고, 마지막의 Gasiorowicz는 대학 학부에서 주교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shankar를 대학원에서 사용한다던가..

 

 

 

이제 이 글을 맺을 때가 되었다. 먼저 밝혀두자면, 굳이 양자역학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아래쪽의 전문적인 교재들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싶다면, 내가 제일 처음 소개한 한 권으로 충분한 양자론, 양자역학의 모험,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정도만 읽으면 된다. 그리고 과학교양서 아무 책이나 하나를 택해서 양자역학 부분만 읽으면 된다. 대부분이 거의 흡사한 말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숨겨진 우주, 저 책을 추천하지만 사람마다 맞는 책이 따로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물론 효율을 따지자면 차라리 물리학과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효율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좀 잔인한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효율만 따지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을테고 말이다. 각자 삶이라는 것이 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을 누를 수 없다면, 효율을 무시하고서라도 혼자서 무엇이든 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그야말로 양자역학으로의 초대, 이다. 여기에 소개한 책들을, 그리고 소개하지 않은 책들과 더불어 읽어나간다면 그 특이한 세계에서 우리는 흥미와 이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점차 부딪히게 되는 것은 재능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내가 이해한 것이 정말로 이해한 것인가? 그야말로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다, 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나 수식들을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폴 디랙이 오펜하이머에게 말하기를, 어떻게 시와 물리학이 함께 설 수 있는가? 시는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물리학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와 같은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물리학이 아니라 수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폴 디랙의 저 말은 우리가 듣기에는 사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수도 있다. 차라리 시가 더 이해가 되지 않는가? 어떻게 길게 늘어진 수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양 옆으로 눈을 돌리면 그런 생각이 더욱 심해진다. 특히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한 번에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만날 경우에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자신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모든 물리학적인 발전을 그런 사람들에게 떠맡기는게 좋지 않을까?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나 또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굳이 물리학이 아니라 어떤 철학적 개념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굳이 다른 사람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남은 일생동안 그들의 사상과 그들의 철학만 졸졸 따라다니며 공부할 거라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내세운 것이 실제로는 그들의 사상을 곡해한 거라면, 그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의 사상을 모두 접한 뒤 자신만의 이론을 세울 거라고? 애초에 그들의 사상을 다 이해할 수는 있을까? 설령 다 이해한다고 할 지라도, 그런 경우에는 제 2의 비트겐슈타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나는, 나는 무엇때문에 이런 것을 하는 것일까? 흥미 때문에? 재미있으니까? 그것 또한 답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흥미와 재미 뿐이라면 영영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거기서 만족하겠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고 싶다면 자신을 죽일 듯 괴롭혀야만 한다.

 

나는 흥미와 재미에 만족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이상 더 나아가지도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의 마음속으로의 스승을 아리스토텔레스, 로 생각했을때부터 늘 스스로를 괴롭혀온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사람이다. 나 또한 그의 뒤를 쫓아 많은 분야들을 보고 있지만, 각 분야들에서 더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앞서 말한 물음들이 나를 붙잡는다. 내가 이해한 것이 정말로 이해가 된건가? 나는 한 발자국 더 딛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할 때마다 스스로의 자신감은 꺾여만 간다. 어느 분야에서든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혹은 나보다 더 잘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내가 그런 분야들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설령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분야가 내가 좋아하는 부분과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내가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잘 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나는 굳이 파고들자면, '흥미로우니까.' 정도의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열등감으로 괴롭히게 된다.

 

이번에 노벨 생리학상에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존 거든, 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70이 훌쩍 넘은 나이의 그가 아직도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종이가 있다. 그 종이는 상장이나 표창장과 같은 것이 아닌 성적표이다. 성적표도 그냥 성적표가 아닌, 250명 중에 250등을 했다는, 꼴찌를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적표라고 한다. 그를 가르친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적어도 과학자가 현재로서는 되기가 어렵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 성적표는 그 자체로 어쩌면 존 거든, 의 마음에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그의 선생의 말보다도 더 깊게 상처를 새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꼴찌를 했다는 성적표는  '너는 과학자가 될 수 없어'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아마 스스로에게 오랫동안 물었을 것이다. '나는 과연 재능이 없을까?' 존 거든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그가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때 그는 저 성적표를 꺼내보며,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의 말이 얼마나 옳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자신은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윽고 저 성적표는 오랜 시간이 지나 누렇게 빛이 바래었지만, 그 열등감, 그리고 재능에 대한 한탄은 그의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을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지금은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그는 '흥미로 시작했던' 분야를 '잘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까. 그 또한 내가 저렇게 번민하는 것 처럼, '나보다 더 동물생식분야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에 그는 보여준 거다. 자기 자신만의 가치를. 내가 아니면 이 분야에서 '이 시간대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는 자신의 필요성을.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어느 과학고 학생이 질문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IQ가 낮다며, 같은 급우의 IQ가 160이 넘는데, 그러면 그런 급우를 자신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럴바에야 지금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질문을 보았다. 사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고, 아무리 이런 저런 변명들, IQ는 두뇌의 일면적인 부분만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파인만의 IQ가 표준편차 16으로 125다, IQ높다고 다 노벨상 타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두뇌는 유동지능과..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할지라도, 내심으로는 스스로의 재능이 정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가졌다. IQ테스트는 어떤 패턴Pattern을 측정하는 테스트이다. 그렇기에 뇌의 능력의 일부분만 측정한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겠지만, 주위를 살펴보라, 학문 중에 패턴이 쓰이지 않는 곳이 있기는 한가? 적어도 과학 분야에서는 이 패턴이 어떤 지식을 밝혀내는데 있어 큰 무기가 된다. 가장 단순한 도구인 대칭성을 보라, 대칭성 또한 사실은 패턴이 아닌가. 그래서 혹자는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어떤 패턴을 인지한다, 라는 말이다, 라고 말하기조차 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나는 번민할 뿐이다. 내가 비트겐슈타인의 '세계' 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저 우주의 성간을 채우는 미지의 물질들의 후보 입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진실로 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그저 기계처럼 받아들이고 그대로 출력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나는 새로운 패턴을 인지할 수 있는가? 하지만 번민을 하면서도 저 존 거든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리고 그런 번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명감, 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내가 아니면 안될 거라고. 어쩌면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떤 사상의 진보에 1mm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 사명감은, 어쩌면 명예욕으로도 드러날 것이고, 흥미 수준에도 그칠 것이겠지만, 끝끝내 마음 속에 품는다면, 이윽고 진주처럼 순수한 의지가 될 것이고, 이윽고 성과와 동시에 그대를 광기로 몰아갈 것이고, 나중에는 그대를 태워 재 하나 남지 않게 할 것이다. 혹은 그 성과가 오랜 시간이 지나 나타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대가, 내가 바란 것이기에 주저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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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0-15 14:23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가연 2012-10-18 00:3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2012-10-16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10-19 21:02   좋아요 0 | URL
소개했었던 양자 불가사의, 라는 책도 좋은 책..입니다..

테레사 2012-10-30 10:11   좋아요 0 | URL
와우!!! 놀랍네요...저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냥 물리학이 좋아서 이런 저런 책을 사 읽는 편인데...사실 읽고 나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맞는 듯. 읽어도 참 어려운 분야에요.추천하신 책은 제가 읽거나 읽으려고 사 둔 책이라,더욱 기분이 좋네요.. ..소개의 글도 감사합니다^^

가연 2012-11-04 16:39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답이 많이 늦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