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디자이너 칩 키드Chip kidd를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북 디자이너이기도 하니.. 책 표지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라면 이름을 많이 들어보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부연을 하자면, 일단 그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유명 책표지 디자이너로, 쥬라기 공원, 에서부터 내 이름은 빨강,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의 표지를 디자인을 한 사람이다. 물론 우리나라 책이 아니라 미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서 아쉽게도 그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런 그가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의 강연을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처음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을때, 디자이너가 자신들 앞에 칠판을 하나 가져다두고는 사과를 하나 그렸단다. 그리고는 사과 밑에다가 Apple이라고 이름을 달아두고는 이렇게 말을 하였다는 거지. 둘 중 하나를 가리고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는 있어도, 절대 둘 다 그대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는 말라고.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하면, 사람들에게 어떤 디자인을 보여줄 때 사과그림만 제공하든지, 아니면 Apple이라는 이름만 제공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절대 지나친 친절, 그러니깐 사과그림도 보여주고 그 밑에 Apple까지 달아두는, 을 베풀지는 말라는 말이다. 이는 독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면서 말이지. 이 말을 듣고 보니깐 정말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그리고 즐겨 하게 되는 게임은 어떻게든지 우리의 머리를 쓰게 만들고, 그로 인하여 흥미를 유발시킨다. 왜 디아블로 3가 인기가 있는가? 우리의 머리를 쓰게 만드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설령 제작자들이 의도한, 다양한 진행 방식을 즐겨보라는 그런 방침에서 어긋나더라도, 높은 난이도를 어떻게 헤쳐나가는가, 라는 것에 머리를 쓰는 것도 충분히 흥미를 유발하는데 부족함이 없을터이니 말이다. 바로 이런 부분이 칩 키드가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이 칩 키드의 작품 중에 내가 정말 놀란 작품이 (그렇다, 책 표지도 충분히 작품이 될 수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내 이름은 빨강, 의 책 표지와 제목에서 언급한 1Q84의 책표지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내 이름은 빨강, 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둘 다 상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구성되어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내 이름은 빨강의 표지 디자인은 바로 옆에서 보다시피 저렇게 생겼는데, 물론 앞면만 보면 이게 뭔.. 하는 생각이 들테지만, 이 책의 진가는 칩 키드가 직접 말했다시피 책장에 꽂아두었을때 드러난다. 책장에 꽂아두면 사랑을 나누는 두 젊은이가 나타나고, 이제 그 책장에서 뽑아들기 시작하면 서서히 얼굴을 찌푸리는 술탄, 바로 옆에 보이는 붉은 옷을 입은, 이 등장하며, 좀 더 빼면 그 술탄을 노리는 활을 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렇다. 오른쪽 위에 말을 타며 활을 쏘는 젊은이, 바로 그 사람이다.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과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술탄. 그리고 그 술탄을 노리는 활을 겨냥하는 남자. 이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노벨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들 중 하나라서 아마 읽은 사람이 많을텐데, 그 줄거리를 떠올리면서 옆의 책표지를 다시금 보라. 아마 느끼는 바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실 나는 칩 키드의 강연에서 저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저 표지에 그렇게 대단한 창의성이 숨어있었는지 몰랐지만, 만약 내가 저 책을 구매했었다면,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었다면 우연찮게 언젠가 그의 의도를 발견했을 것이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분명 그 의도를 눈치챌 것이다.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끄집어 낼 때, 그 언젠가. 그런데 여기 하나의 보석이 더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으로 유명한 1Q84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필생의 역작으로 여기는 작품인데,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읽은 사람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작품들 중 수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여하튼 당장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 언급하겠지만, 일단 여기 표지를 보라. 개인적으로는 사람 얼굴이 표지로 나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왠지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가 이 표지의 인물로 고정되어버리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처음 이 표지를 그의 강연에서 이야기를 들었을때에도 그다지 끌리는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그러니깐 칩 키드의 설명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의 1Q84 글씨가 보이는가? 저 1Q84의 이야기는 두 세계를 넘나드는, 그러니깐 1984년과 1Q84년을 넘나드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이다. 아오마메는 모든 것이 시작된 어느 날, 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간 뒤 새로운 세상에 도착하고 만다. 왼쪽 책의 표지는 이중으로 되어있는데, 저 겉지를 벗기면 내부에 새로운 표지가 등장한다.검은색으로 1Q84가 아로새겨져있는. 다른 부분들, 그러니깐 여인의 얼굴은 그대로이지만 배경 색감과 글씨 색깔은 확 바뀌게 되고, 단조롭다면 단조롭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디자인을 통해 책의 서두를 칩 키드는 이끌어낸다. 저 여인을 주인공 아오마메라고 한다면, 바로 그 흰색과 검은색의 교차야말로 주인공이 겪는 이중의 세계를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칩 키드가 디자인한 책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그만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통해서 그는 강렬하게 북디자이너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표현한다. 바로 저런 일을 하는 것이다. 저런 디자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일단 초본을 읽고 수많은 정보를 집적하여 정돈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론.. 한 눈에 이 디자인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를 깨닫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간다면 저런 디자인이야말로 진정으로 책에 어울리는 디자인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인거지. 화려한 색감으로 눈만 잠깐 희롱하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이는 분명 아마 앞으로 책 표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책들의 디자인 중에서도 저런 철학을 담고 있는 디자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 책의 표지를 한 번 다시 살펴보는게 어떨까. 어쩌면 그 책 표지가 여러분에게 어떤 말을 걸 수도 있지 않겠는가.

 

 

 

p.s. 칩 키드의 TED강연을 듣고 제법 감명받아서..

p.s.2 정말 바빠야 할 시기인데.. 바쁠 수록 다른 것들이 하고 싶어지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2-06-20 21:02   좋아요 0 | URL
아니....이런 강연도 들어요? 전 이 디자인보다 가연님이 이런 강의를 듣는다는게 더 흥미로운데요! 전전 페이퍼에서는 생물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은 디자인 공부 하는거에요?

슬픈말을 덧붙이자면, 나는.....내 이름은 빨강......이 엄청 재미 없었어요. orz

가연 2012-06-20 21:39   좋아요 0 | URL
으하하.. 몇 개의 페이퍼로 저의 일상을 파악하셨다고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저는 그야말로 양파같은 남자, 까도 까도 무언가 나오는 신비스러운 존재........... 음.. 테드 강연은 인터넷으로 대부분 공개되어있으니깐ㅎㅎ 아주 많이 찾아서 보는 편이에요. 직접 저런데 참여할 수도 있기는 한데.. 뭐랄까 너무 강연료가 비싸기도 하고 참여하는데 까다롭기도 하니깐..ㅋㅋ

ㅎㅎ 저도 내 이름은 빨강, 을 재미있었다, 라고 기억하고 있지는 않네요ㅎㅎ ㅎ 읽은지도 너무 오래된 책이기도 하구.. 하지만 저 디자인은 정말 재기넘치다, 라고 생각했답니다.

프레이야 2012-06-21 08:43   좋아요 0 | URL
북 디자이너 칩 키드는 몰랐어요.ㅎㅎ 가연님 페이퍼로 알게 되어 기뻐요.
저도 늘 북디자인을 눈여겨 보거든요. 책을 만나면 표지부터 한참 들여다보구요.
책 좋아하는 분들은 거의 그럴 것 같기도 해요.
'내 이름은 빨강'은 비슷하긴 해도 원래의 표지가 훨씬 신비한 느낌이네요.

가연 2012-06-22 12:31   좋아요 0 | URL
ㅎㅎ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네요. 저도 표지를 종종 보는 편인데.. 어떤 경우에는 표지가 일종의 스포일러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쵸, 훨씬 신비한 분위기입니다.

2012-06-29 21:56   좋아요 0 | URL
이 글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내이름은 빨강, 1Q84 표지 이야기!!
(사실 며칠 전에 읽었는데 지금 표냅니다...ㅎㅎ)
칩 키드같이 창조적인 사람 진짜 멋져요.

가연 2012-06-30 04:47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정말 창조적인 사람들은 멋있어보입니다. 여러 분야들에서 다양한 창조성들을 보이는 사람들 모두 말이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