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그나마 편하게 쓸 수 있는.. 페이퍼에다가 끄적거린다.

여러 책들을 동시에 표지까지 담을 수 없으니..

무엇보다도 원래 할 일이 생기면 더욱 더 딴 짓[..]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하루하루가 참.. 여러모로 버겁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현충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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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된 것이 중국 드라마들을 접하고 난 뒤였다. 신필이라고 불리는 김용의 의천도룡기,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천룡팔부를 먼저 TV에서 드라마로 접하고 감명받아서 그의 무협소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여담이지만 신조협려와 천룡팔부의 유역비는 정말 여신처럼 예뻤다. 그녀의 외모는 시간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가 않아서 꽤 오래전에 개봉한 포비든 킹덤이라는 그야말로 볼거리가 '이연걸 VS 성룡 그리고 유역비' 뿐인 영화에서도 유역비의 미모는 빛을 발했다. 어쨌든, 신조협려의 소용녀역할과 천룡팔부의 왕어언 역할을 유역비가 그때 맡았는데, 그때 정말 꼭 책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야. 그래서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그러니깐 앞서 말한 천룡팔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몽땅 읽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무협지 섭렵 생활은 김용의 다른 작품들.. 소오강호, 녹정기, 협객행 등의 작품들을 읽게 만들었고, 무협소설을 읽은 사람이면 으레 그렇듯, 누가 이 김용월드의(!) 최강자인가, 를 따지기 시작했다. 또 샛길로 새자면, 김용월드에서의 최강자는 일단 독고구패와 무명승(각각 사조영웅전과 천룡팔부에서 나온다)이고, 그 뒤를 소봉(천룡팔부), 양과(신조협려)이 뒤를 잇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소봉을 더 우위에 두지만, 양과가 더 무공이 고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다시금 원 글로 돌아가서, 그렇게 따지던 중에 (몇 번의 키배[..] 후에) 갑자기 다른 무협소설들도 읽고 싶어진거야. 그때 마침 마주친 것이 무협작가 좌백의(우리나라 사람이다) 혈기린 외전이었다. 그 전에 좌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좌백의 블로그에 종종 들러서 그가 쓰는 부부만담(어떻게 마님으로부터 살아남는가, 에 대한 이야기이다) 을 보면서 키득거린 적이 많았거든. 하지만 무협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상스레 손이 안갔었다. 그러던 중 읽었던 혈기린 외전은 나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혈기린 외전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골 농부였던 왕필이 어떻게 그를 괴롭힌자들에게 복수를 하고 의를 행하는가, 이윽고 혈기린이 되는가, 에 관한 이야기이다. 혈기린은 참고로 말하면 저 책에서 네 명의 무공이 가장 높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어쨌든, 혈기린 외전을 읽고 좌백의 다른 책들을 탐색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교롭게도 좌백의 책이 아니라 진산, 그러니깐 좌백의 마님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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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했다시피,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연재되었던 부부만담을 통해서 진산이 좌백의 아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전에는 그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무협작가 두명이서 결혼해서 사는 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거든. 또 샛길로 잠깐 새자면, 좌백이 진산을 처음 만났던 것은 어느 시상식장이랬다. 당연히 무협소설을 썼으니 남자라고 생각했던 좌백은 시상식장에 올라온 진산을 보고 깜짝놀랐다. 아니, 여자라니! 당시 좌백은 인지도가 높던 상황이었고, (데뷔 때부터 좌백은 이미 거목이었던 용대운의 격려를 많이 받았었다고 들었다.) 그 공모전이 좌백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있던 공모전이었거든. 심사하면서 당연히 남자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상식장에 올라온 사람은 여자였으니 당황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 후에 좌백은 진산에게 첫 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던가. 이쯤 잡이야기는 그만하고, 진산의 책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그녀의 단편집이었다. 그 단편집에는 매란국죽에 관한, 고기만두, 웃는 매화 등의 단편이 실려있었고 (정확히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난다.) 그 연작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에 혈기린 외전을 읽으면서 놀란 것 만큼이나 놀라고 말았다. 섬세한 배경묘사에서부터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야말로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서정적인 감정묘사까지. 그 때 이후로 나는 진산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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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름만 팬은 오래 못가는 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점차 바빠지고 삶이 팍팍해진 나는 무협소설을 그만 읽게 되었고, 블로그 활동도 거의 안하게 되고,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서 좌백의 블로그에도 더이상 들르지 않게 되었다. 이 부부 작가들이 신작을 내고는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도 못했고, 신경도 못쓰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이윽고 지금에 이르러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갔다가, 저자 이름이 정말 낯익은 거야. 진산, 민해연이라고. 아니.. 진산? 진산이면 진산인데 민해연은 또 누구지? 나중에 알고보니 진산은 무협소설만 쓴 것이 아니더라구. 민해연이라는 이름으로 로맨스 소설도 썼던데.. 뭐, 사실 로맨스 소설을 안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보통 로맨스 소설은 대부분 (인터넷 로맨스 소설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주로 여성향에 가까운 편이다.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도 크게 보면 로맨스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어쨌든, 큰 틀은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다. 평범한 여자주인공(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과 신분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주인공..들(보통 제1 남주는 재벌집 외동아들 또는 후계자, 제 2 남주는 제1남주의 가장 친한 친구 또는 경쟁자, 가끔 제 3 남주가 등장하는데,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보통 자주 등장한다.), 게다가 제1남주는 언제나 쿨시크한 매력을 가지고 있고, 제 2남주는 그에 반해 뭔가 다정다감할때가 있다. 보이 meet 걸은 어디서나 흔하다. 걸이 뺨을 쫘악, 때리면 보이는.. 그게 먹힌다! 말도 안돼! 내 뺨을 때린 것은 네가 처음이야, 라는 그야말로 소설같은, 소설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런 대사를 풍기면서(그야말로 풍기면서..다.) 결국 수많은 난관(제2, 3 남주의 방해, 집안에서의 반대, 가끔은 여자주인공의 친한 친구 또는 여동생이 적으로 돌아서서 제 1남주는 내꺼다! 이러는 경우도 있다.)을 헤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의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다. (19금을 노리는 로맨스 소설은 야한 씬을 많이 넣는데, 보통 상류층 파티 후에 알 수 없는 체취에 끌려서[..] 야한 씬이 하나 들어가고, 제2 남주가 제 1남주는 널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아! 라고 외치고 또 야한 씬 하나 넣고.. 결혼 한 후에 행복에 겨워서 야한 씬을 또 넣고.. 다양하게 넣는다) 대개가 이렇다보니 나 개인적으로는 읽다가 질려서.. 더 못읽겠더라구.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니깐,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받고는 좀 걱정했다. 진산과 민해연의 이름을 동시에 병기했다는 이야기는, 무협 소설에서의 팬들과 로맨스 소설에서의 팬들을 모두 끌어들이겠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진산이고, 무협소설 작가인데, 이 책에서는 분명 민해연의 성향도 나타날 것이란 말이지. 그만큼 야심만만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고, 동시에 나로서는 지금껏 읽어왔던 (많지는 않지만) 로맨스 소설들이 떠올라서 약간 꺼려질 수 밖에 없었던거지. 결국 내 걱정은 반 정도 맞았다. 가스라기는 제목 그대로 가스라기, 가 주인공이다. 가스라기는 풀 부스러기 등을 의미하는 말이라는데.. 여하튼 극중에서는 그야말로 부스러기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야말로 배척당하는 존재이다. 이 가스라기의 삶이 극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하늘에서 가장 고결한 존재, 천군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우연히 상처를 입고 쓰러진 천군의 상처를 가스라기는 돌보게 되고, 이윽고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천군을 찾아서 하늘로 향하게 된다. 가장 비천한 자와 가장 고결한 자의 결합. 많은 로맨스 소설에서 보이는 구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스라기는 그야말로 묘한 매력을(앞서도 말했다) 가지고 제 1남주 천군과 제 2남주 지한을 모두 유혹하는데 성공한다.(앞서와 달리 이번에는 제 1남주가 온화한 성격이고, 제 2남주가 난폭한 성격이지만) 중간 중간 선총을 빙자한 19금 장면을 넣고(남자가 선총을 바라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든 마무리지어진다. 무협적인 요소라면.. 작가가 직접 밝혔다시피, 봉신연의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티가 보인다. 선인으로서 열게 되는 살계, 음계는 저기서도 나왔던 이야기이거든. 선인도 어쩔 수 없는 존재라 결국 내부의 폭력심과 음심이 쌓이고 쌓이게 되는데, 이를 푸는 것이 인간의 전쟁에 슬쩍 끼어들어서 푸는 것이다. 혹은 자기들끼리 때를 맞추어 치고받고 싸우거나. 그리고 작중에 나오는 보패 정도..가 무협 요소들이겠지. 하지만 분명 이렇게 생각하면 에휴,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구나, 하며 실망을 했어야 했는데, 또 그렇지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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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도올, 그러니깐 그 김용옥말이다, 은 그의 저서에서 (아마도 노자와 21세기, 로 기억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천지불인, 이라는 말을 했다. 도올이 중국이던가? 어쨌든 외국에 강연을 갔는데, 그 중국사람들이 도올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거야. 당시 중국에 (혹은 그 외국에) 상당한 수준의 지진이 일어났었다. 자연재해때문에 비탄에 빠진 중국인들이 도올에게 왓더헬, 하고 하소연할때, 도올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눈을 뜨면서 천지불인, 천지불인이로다, 라고 중얼거렸단다. 저 말은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 라는 말이다, 단순하게 해석하면. 좀 더 끄적거려보면, 하늘과 땅은 인격체가 아니라는 말도 할 수 있을 것이고, 하늘과 땅은 인간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다, 라고 말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하늘과 땅이 만약에 우리나라, 코리아를 편애한다고 가정해보자. 전 세상이 아마겟돈의 화염에서 신음할때 우리나라만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국민으로서의 나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인간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로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친하다고 해서 범죄를 눈감아준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공경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이 인자하여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 누가 하늘과 땅을 공경하겠는가? 천지불인이기때문에 중국에 일어난 재해가 '그들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벌칙' 이 아닌, '누구나 두려워하고 공경할 수 밖에 없는' 하늘과 땅의 힘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스라기로 돌아가보자. 앞서 가스라기가 평범한 로맨스 소설인 것 처럼 끄적여놓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가스라기의 제 1남주인공 천군은 그 자신이 일종의 자연으로, 자신의 감정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그런 그가 과연 편애하는 존재가 생긴다면? 그는 이제 공정성을 잃을 것이고,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결국 편애하는 존재인 가스라기, 여주인공이 생겼고,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이를 진산은 '천도무친', 즉 하늘의 길은 친함이 없다, 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 책은 이제 평범한 로맨스 소설을 넘어서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의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아니,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만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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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가스라기 이전에 저런 주제를 다룬 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비운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책인데, 고리골, 이 바로 그것이다. 도술의 명맥이 거의 끊겨져가는 명말 청초 전환기에, 원제강이라는 남장여자가 주인공인데, 상당한 무, 그러니깐 신과 인간의 교차점으로서의 무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끝끝내 그 길을 거부하다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이다. (좀 더 큰 주제로 말하자면.. 다신교의 붕괴가 되겠지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제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와는 179도 정도 방향을 틀어서 제강을 끊임없이 지배하려고 드는 동악대제라는 존재의 이야기이다. 동악대제는 실제로 한 때 태산의 주인으로 숭앙받았던 신이고 (이 책은 도교에 대한 고증이 상당히 철저하다. 나오는 대부분의 신들과 신화는 거의 전승과 흡사하다.) 결국 현실에서는 나중에는 관제묘에 그 숭앙을 조금씩 잠식당하게 된다. 책에서도 그 내용이 완전히 그른 것이 아니라서 동악대제는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이윽고 서방 기독교의 전래로 완전히 자신들의 세계, 도교 신화의 세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악대제가 무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제강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는 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물론 신과 인간의 교차점역할을 하는 제강으로 그 힘을 나타내어 다시금 인간들로부터의 공경을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그가 제강을 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다른 이유때문이었다. 그것은 제강과 같은 재능을 가진 무의 일족(소설에서는 고리골이라고 부른다)의 기원때문이고, 그 기원은 동악대제의 천도무친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동악대제는 일찍이 한 인간여자를 사랑했었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아버지인 천제에게 경고를 받는다. 하늘을 다스리는 자는 결코 어느 한 사람에게 정을 더 주어서도, 덜 주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그가 사랑했던 그녀는 이윽고 천제에 의하여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윽고 동악대제는 '필부만도 못한'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신이라니, 그야말로 허상이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존재가 과연 모든 것을 다룬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그녀의 원념을 그러모아 한 종족을 창조하는데, 그 종족이 바로 고리골이며.. 고리골의 마지막 일족인 제강을 통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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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이나 동악대제쯤되면 자신의 등에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 너무 많기에 쉽사리 짐을 내려놓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저런 존재의 밑에서 그들의 결정이나 감정에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자신들의 상사가 좀 공정하고 냉정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들의 결정에 자신들의 위치가 결정될테니. 그 결정이 세상을 좌우할 만한 결정이라면 더욱 더 무서울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결국에는 벽을 쌓게 된다. 사랑하면 할수록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여기까지만, 라고 마음의 제한범위를 두게 된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나도, 상대방도 결국에는 서로에게 구속될 것임을 서로 본능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여기까지만, 하고 사랑하는 것도 절대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정도의 사랑이 가장 옿은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빠지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이윽고 하얀 재만 남기게 될 뿐이다. 자기 파멸적인 사랑의 귀결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자기 파멸적인 사랑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등에 묶인 것들을 내려놓고 사랑을 택한다고 해서 과연 어리석다, 하며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상대방이, 사랑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그만큼 가치가게 있다고 여겨져서 그 사랑을 택했다면 그 선택은 결국은 존중받아댜 되지 않을까. 그것은 나의, 그리고 당신의 특권이기에.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던가. 그런 것이 알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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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겠지, 과연 그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자기 파멸적이다, 라는 말은 냉혹한 부분이 있어서, 사랑이 식은 후에는 내가 왜 그랬지, 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을 내분비 매커니즘으로 밝히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유효기간이 호르몬이 다하는 3년 정도라던가. 그럼 부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하니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호르몬에 지배되는 뇌의 화학작용은 사랑인가? 어쩌면 저 천도무친이든 뭐든 다 망상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감정을 꾹 누르고 가장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길을 쫓는 것이 좋겠다. 결혼은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랑 하고, 친교도 뭔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가려서 사귄다.. 라면 참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남는 이 감정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되겠지.

천도무친따위, 알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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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05 10: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저는 가스라기를 읽으면서 천군이 다스리는 커다란 원을 그렸어요. 그 원안에는 물론 가스라기가 들어있죠. 아주 작게. 그런데 천군이 가스라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게되자 그 원은 꿈틀 거리고 형태가 변형되요. 원은 나름대로 원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전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었죠. 머릿속에서 이걸 그려보면서 와, 참 이런걸 어떻게 상상하고 써냈지, 했는데 이쪽 방면에서는 원래부터 있어오던 이야기로군요.

천군이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개인은 개인만의 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도 저만의 원을 가지고 있다는거죠. 그래서 저도 어느 한 사람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 원이 흔들리고 꿈틀거려요. 그 원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한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게 되면 설레이고 기쁘고 행복하고 그러다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눈물흘리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원이란건, 그러니까 제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데, 한 사람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그 원의 성질을 변형시키려고 하고, 그래서 원과 나는 싸워야 하는....


아..그만 쓸래요. 쓰다가 힘들어요. -_-

가연 2012-06-06 18:18   좋아요 0 | URL
ㅎㅎ 음.. 마치 드럼의 표면적같네요. 막 두드리면 드럼 면이 꿈틀거리고 변하는.. 드럼도 동그란 원이고.. 원이 흔들리는게 꼭 가장자리쪽만 해당할 필요는 없으니깐ㅎㅎ 두드리는, 그런 외부의 힘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품는 감정(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일테고..ㅎㅎ

옛날에는 로맨스소설을 약간 읽었는데.. (장르 소설읽다가.. 무협읽다가.. 그 옆에 꽂힌 로맨스소설읽다가..) ㅎㅎ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가 읽기에는 정신적으로 공격당하는 부분이 많아서.. 하하하ㅠ 뒤에 언급한 고리골은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 소설이니..ㅎㅎ

마녀고양이 2012-06-10 16: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가연님, 첨 뵙겠습니다.
한사람님 서재를 타고 왔는데, <신조협려>로 인해서 댓글 남깁니다.
저는 김용에 미쳐서, 석달을 회사다니며 밤새워가면서, 영웅문 시리즈, 녹정기, 천룡팔부를 죽어라 읽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반가왔습니다.

한때 저도 로맨스 소설을 엄청 읽은데다, 아직도 대여점에서 두박스 얻을 것을 포함하여, 백여권을 소장하고 있는지라.... 저것들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장르 소설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 하고 있네요. ^^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가연 2012-06-10 19:07   좋아요 0 | URL
처음 뵙겠습니다. 신조협려는 정말 재미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신필의 작품 중에 천룡팔부를 최고작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무협을 좋아하는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는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답니다, 푸하하. 제가 읽기에는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정신적으로 공격당하는 기분이라서.. 하지만 그럼에도 장르소설은 정말 묘~한 매력이 있지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