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를 쳐다보면, 지금은 운영하고 있는 이 서재만 해도 대부분의 글이 인문이나 과학 분야의 책을 리뷰하고 있지만, 실제로 내가 리뷰를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은 소설 쪽이 먼저였다. 글쎄, 지금의 글들만 읽어본다면 분명 상상하기 쉽지 않으리라. 어쨌든 소설 쪽의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인문 분야나 과학 분야의 이야기도 끄적거리게 되었다. 뭐, 사실 나는 다양한 쪽을 알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인문이나 과학 계통의 책들을 더 찾아보게 된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예전에 쓰던 컴퓨터를 뒤져보다가 예전에 쓴 글들을 발견하고 한참 상념에 젖어있었다. 팬픽에서부터, 소설에 이르기까지 말이지. 나름대로 쓰려고 노력은 엿보였지만, 끝끝내 완결을 지은 글은 거의 없었고, 소위 말하는 오리지날 설정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 스스로 배경을 만들어 글을 써서 완결지은 글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없었다. 그런데 말야, 정말 웃긴 것은.. 지금 와서 읽어보니깐, 의외로 내가 쓴 글이 재미있었다는 점이었다. 완결까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플 줄이야, 풋. 물론 식상한 점도 많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상투적인 표현도 많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이렇게 무언가 소설이랍시고 적을 줄은 알았구나, 싶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글이든 너무 거창하게 배경을 잡고, 설정을 짜면 힘들다. 왠만한 의지력이 없는 이상 그렇게 설정을 짜다가는 결국에는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그랬기에 도저히 완결까지 써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팬픽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소설, 그것도 판타지 소설인 룬의 아이들, 윈터러에 한참 빠져있었을때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이었다. 그러고보면 그때가 일종의 판타지 붐이 불때였고, 소위 말하는 양판소,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이 범람하고 있던 때였는데, 그 선두에 서서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을 뒤따르게 하는 대장 역할을 하는 소설 들 중 하나가 바로 저 윈터러였다. 알음알음 인터넷을 통해서 룬의 아이들의 팬카페에 가입하기도 하고, 룬의 아이들이 발행되었던 곳, 그러니깐 제우미디어 홈페이지에서의 행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글들도 읽기도 하였다. 지금은 제우미디어의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었지만, 리뉴얼되기 전에는 정말 황량하고 파란색 바탕에 무슨 텍스트 게시판처럼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소설게시판과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정말 활발한 활동이 일어났었다. 뭐,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그렇듯 결국에는 이런 저런 다툼도 있었고.. 여하튼 나는 거의 유령회원이었는데, 정말 가끔씩 소설만 몇 자 올리기도 했다. 물론 그냥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대충 저런 식으로 적으면.. 하는 식으로 올린 것이라 작품성이라고 따질 것도 없지만 대부분 그런 글을 썼었던 사람들처럼 나도 내 글을 어딘가 올린다, 라는 그런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처음에 썼던 것은 윈터러의 두 주인공인 보리스와 이솔렛의 후일담 비슷한 이야기였는데, 본의아니게 스포일러가 되어버릴지 모르겠지만, 윈터러에서 결국 서로는 이어지지 못하게 된다. 작품성을 위해서는 사실 좀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택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너무 가슴이 아픈걸. 그래서 내 상상속에서는 어떻게든 상대를 이어주려고 한다. 그래, 몇 번이고 이야기했듯이 나는 해피앤딩을 좋아한다. 물론 작가야 독자들의 상상속에서 '둘은 다시 행복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라고 결말을 맞이하게 두는 것이 좋겠지만, 독자들의 상상은 상상에 지나지 않는 걸. 공식적으로 두 명이 행복해지지 못하는걸.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글을 쓴 것이었다. 원작에서 이솔렛은 섬에 남는데, 그곳에서 보리스를 만나러 탈출하는, 풋, 그런 글을 시작으로 몇 편의 글을 썼었다. 도저히 길게 쓸 힘이 당시에는 없어서, 그러니깐 길게 쓸 수는 있기는 한데 그렇게 쓰다보면 엉망이 되어버리니 정제되게 길게 쓰기는 힘들어서 단편에 좀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심혈을 기울였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대충 내용은 윈터러 세계에 괴물이 하나 소환되는데, 그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 보리스와 이솔렛이 힘을 합쳐 싸우다가.. 결국 이솔렛이 희생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윈터러의 저자인 전민희 작가가 자신의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던가, 어느 작품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작품의 주인공 X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꿈에서조차 그 주인공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된다고. 작가들이 종종 자신의 힘으로 소설을 쓴 게 아니다, 등장인물이 자신의 몸을 빌려서 쓴 거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모리스 르블랑, 괴도 뤼팽의 저자인 르블랑이 특히 대표적으로 그런 말들을 했었지. 그런데 말야, 그런 작가들에 비할 바는 분명 못되지만.. 나도 저 심혈을 기울였던 이야기를 쓸 때 약간이나마 그런 일을 겪었다. 심지어 내가 창조한 주인공들도 아닌데 말이지. 자나깨나 두 주인공에 대한 생각이었고, 학교에 가도, 집에 와도 계속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그것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춰졌고, 보리스 그리고 이솔렛이 내 앞에서 검과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는데 화면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위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대충은 마무리를 짓긴 했지만, 내가 지은 엔딩이 진짜 엔딩은 아니다. 그냥 급하게 완결시키려다보니 대강 지은 마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 다시 읽어보니깐 분명 그런 느낌이 확 들더라. 그렇다고 지금와서 다시 글을 써내려갈 수는 없다. 지금은 더이상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주지 않는걸.

 

 어쨌든 당시에는 저 글을 어설프게 마무리 짓고는 이번에는 장편에 도전을 했었다. 물론 어디에 연재한 것은 아니고 혼자서 만족하려고 글을 쓴 것이었는데.. 앞서 심혈을 기울여 쓴 단편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세계의, 푸하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보니깐 별 수 없이 당시는 공개되지 않았던 설정들까지 내가 설정을 해야만 했고, 세계관도 적당히 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룬의 아이들에는 학원이 나오는데, 그 이름이 네냐플이다. 룬의 아이들 세계의 주인공들이 다니는, 혹은 다니게 되는 학원인데, 룬의 아이들 연작 시리즈에서 첫 편인 윈터러, 편에서는 아직 네냐플에 대한 설정이 거의 공개되어있지 않았다. 후속작인 데모닉에서는 바로 옆에 보이는 8권, 마지막권에서 많이 공개되었지만, 윈터러편에서는 그때가 벌써 10여년 전이니 아무런 설정이 나오지 않았을 수 밖에. 어쨌든 그렇게 자료가 마땅찮아서 스스로 창작을 시도했다. 최대한 원저자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게.. 벗어나버리면 내가 쓰는 팬픽의 주인공들이 주인공들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깐.. 거기서 상상이 끝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내 상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글을 써내려간 것인걸. 하지만 상상이 끼어들 부분이 너무 많았고, 최대한 무거운 분위기로 글을 쓰다보니 결국에는 채 스무 장도 못쓰고 설정만 잔뜩 세워두고 놓아버렸다. 

 

그 당시에 나는 수많은 판타지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녔다. 최근까지 운영되고 있는 판타지 연재 커뮤니티 중에는 내가 커뮤니티가 생성될 초창기때부터 지켜보았던 곳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판타지 커뮤니티에서 수많이 연재되는 판타지들을 지켜보았는데,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완결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저 글을 내팽겨두고는 도저히 더 글을 못쓸 것 같았거든. 게다가 사람이, 은근히 그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 댓글이 많이 달리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생기기에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판타지면서, 혹은 나이도 어린 애들이, 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런 부분이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저렇게 글을 미완으로 남기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정말 뜬금없이 '천사소녀 네티'가 떠올랐다. 정말 어릴 때 맘졸이며 봤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갑자기 보고 싶어서 애니메이션도 다시금 시청하고 원작 만화까지도 보았다. 원제는 괴도 세인트 테일, 이고, 더빙판이 원판보다 뛰어나게 들리는, 속된 말로 초월더빙이라고 불리는 작품 중 하나인데,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다 읽고 나니깐 이번에는 샐리와 셜록스의 사랑이 어떻게든 잘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거야. 물론 결말은 둘이 결혼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괜스레 끄적거려보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이번에는 별로 오래 흥미가 지속되지 않았다. 두 편의 단편을 끄적거렸는데, 한 편은 완결짓고 한 편은 천사소녀 네티의 재림, 이라는 주제로.. 원작에서는 네티가 천사소녀를 그만두거든, 그렇게 적어내려갔는데, 결국 끝까지 못썼다. 게다가 완결이랍시고 적은 단편도 사실 플롯 자체는 원작 만화의 뒤에 보너스 편으로 나오는 만화에서 많이 영향을 받아서 적은 것이라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않았다. 거의 글쓰기 연습이었던 셈이지. 결국 이 글들은 어디에도 올리지 않고, 물론 지금까지 썼던 글 중에 올렸던 글들은 거의 없지만, 그냥 컴퓨터 하드에다가 간직하였다.

 

갑자기 일반 문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나도 뜻밖이었다. 그동안 어설픈 과학지식과 마법, 의례, 주술, 검으로 점철된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임형주의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바보같았지만, 나도

내가 왜 바보같은지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글이 쓰고 싶어졌었다. 처음 쓴 글은 사실 완전히 주술적 색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 쓴 글의 내용은 경주에 답사를 간 고고학자가 휴일을 맞아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어느 남자를 만나서 경주를 안내받는데, 경주의 고탑을 안내받으며, 엄밀히 말하면 분황사의 모전석탑을 안내받으며, 전생을 그러니깐 신라의 여자로 살았던, 풋, 그런 것들을 조금 기억해낸다, 라는 이야기였고, 저 남자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전생의 남편이었다, 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남편이 현생의 남편이 되라는 법은 없는 법. 그냥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버린 것이다. 임형주의 풍운애가와 하월가를 들으면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생에서는 함께였지만 이번 생에서는 각자 따로 살아가게 되어버리는.. 그런 결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신라를 배경으로 택한 것은 다정, 이라는 소설 탓이 컸고, 저런 분위기의 글을 쓰게 된 것은 임형주의 노래 뿐만이 아니라, 윤대녕의 천지간을 읽은 탓이 컸었다. 윤대녕의 천지간, 은 너무 유명한 책이니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 다정, 이라는 소설은 엄밀하게 자료도 수집을 한 소설이기도 하고, 글도 당시 읽을때에는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한 소설이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특히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드라마도 그렇지만 고증이 쉽지 않은데. 그런데 또 고증을 너무 철저하게 하다 보면 감성적인 면이 어긋나기 쉬운데 그런 부분을 잘 잡은 소설이라고 느꼈다. 여하튼 그렇게 신라에 관한 단편 소설을 하나 쓰고 읽어보니, 뭐랄까, 약간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었다. 계속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따라서 쓰는 꼴이 아닌가. 게다가, 게다가.. 현실에서는 마법따위는 쓸 수 없다. 전생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며, 주술같은 것은 할 수 없는 법이다, 알잖는가. 물론 실제로 주술이나 마법을 하는 방법들이야 인터넷에서도 검색만 하면 오컬트 관련 물품에 마법에 관련된 책들, 알레이스터의 법의 서 혹은 솔로몬의 작은 열쇠, 큰 열쇠 등의 주술책을 한 무더기 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있는 책들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는 그런 부분을 제외한.. 그나마 현실적인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이,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 그 마을에서는 매년 축제가 있었고, 그 축제는 살아있는 새를 날려보내는 일종의 방생제와 같은 축제였는데, 그 방생제에 얽힌 뒷이야기들이랄까, 어두운 면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그려낸 이야기였다. 이렇게 쓰니깐 굉장히 멋진 글인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풋, 집에 내려가서 읽으면서 실소를 머금었는걸. 다만 내가 생각해도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너무나 상투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리겠지만.. 어쨌든 이 글은 겨우 완결을 지었고, 한동안 나는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나의 소설 쓰기는 신춘문예 도전으로 끝이 났다. 아니,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 웃긴다, 그저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는 것을 목표한 것으로 끝이 났다, 가 더 옳은 말이 되겠다. 나는 끝끝내 소설을 완성시키지 못했고.. 신춘문예에 응모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신문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게재가 되는 거야. 하나씩 읽어가면서 이 부분은 괜찮고, 여기는 독창적이다, 이렇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고 있었다가 갑자기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런 욕망이 속에서부터 치솟아 올랐다. 이때쯤의 나는 판타지 소설만 읽은 것이 아니었으니깐.. 많은 소설을 읽었고, 동인 문학상 작품집도 찾아서 읽었던 때였으니깐.. 나도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이번에도 그 마음의 소리를 따라서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소재를 찾는 것은 사실 간단했다. 당시는 거의 막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있던 시기였기에 인터넷을 주제로 삼고, 인터넷에서의 인간관계를 주제로 삼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 때이기도 했고 말이지. 왠지 그때는,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면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신춘문예에 뽑힌 자신의 모습이 막 그려지는 것 있지, 푸하하, 지금 보면 웃음이 지어지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글은 인터넷에서만 활발히 활동하는 어느 블로거를 주인공으로 삼고, 현실과 인터넷의 극에 달한 괴리감을 보여준 뒤, 그 절정으로 그 블로거와 현실에서 접점을 맺고 있는 사람, 나는 담임 교사를 택했다, 을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그런 내용으로 쓰여졌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글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도저히 결말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블로거는 나 자신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현실에서 접점을 맺고 있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만난 적도 없으며, 인터넷에서 만나자, 라고 해서 현실에서 만났던 사람이 알고 보니 실제로 접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힘든 법이다. 한 번 나를 주인공으로 동일시하다보니 글이 진행되지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어쩔 수 없이 글을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접점을 맺고 있던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온라인에서 그렇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이 현실에서는 나에게 무심하고 아무렇게나 대했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위선인가? 어디까지가 진실된 인간관계인 것인가?

 

그래서 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지금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인간관계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실용서를 위시하여 소설책들까지.. 파편화되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은 현실에서는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온라인 친구만 수백명을 거느리기도 하고, 현실에서 찾지 못하는 것을 온라인에서 찾기도 한다. 혹은 인간 관계를 일종의 계약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맺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정이 그리워 넷 커뮤니티에 가입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해못하는 또다른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끝내 저 물음에 대해서 답을 내리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보관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저 물음에 내가 답할 수 있었다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내 삶에 있어서 어느 한 방향으로 내가 확정지어서 살아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감정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감정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금의 삶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내 현실을 설계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도 나는 저런 물음에 대해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이 그때와 다른 것은 더이상 저런 것들에, 어떤 관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무관심한 것이다. 여기서 좀 뜬금없지만 철학자로서의 샤르트르의 이야기를 써야겠다. 샤르트르는 인간이 타자와 맺는 관계를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피학적, 가학적, 그리고 무관심한 그런 관계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것 있지. 저 문구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는지도 모른다. 과연 저런 고찰을 할 수 있는 철학자라면 월급을 꼬박꼬박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우스개소리를 하는 동시에 나는 저 문구에 샤르트르가 덧붙여 예언해놓은 부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세 가지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실패할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기도 한다. 위의 마지막 글, 신춘문예에 공모하려고 했던 글이 어쩌면 내 자신을 비추는 글이었나보다. 그 이후에는 나는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고, 주인공들이 밤마다 귓속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그대로 나는 나 자신에게 침잠해버리고 말았고, 그 내부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데미안, 을 보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대략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남들처럼 삼각함수와 같은 어려운 부분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딱 하나 남들처럼 못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 라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의 원을 끄집어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이야. 남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하거나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들 자신의 비원을 속에서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정작 나 자신의 문제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있지. 그 문구를 몇 번이고 반복해가며 읽으면서 나는 동시에 싱클레어처럼 데미안이 내 곁에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아야만 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진실로 운명과 감정은, 동일한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가게 되는 법이다.

 

만약에 무한한 시간을 내가 살아간다면 이런 생각들은 모두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짧은 인생을 감정에 가득차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때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새겨진 기억을 돌이키며 웃음짓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삶은 그런 강렬한 기억들보다는 수수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서 구성되며, 그런 수수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살아갈때 더욱더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든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요동의 반복이다. 슈렉 4를 기억하는가? 환상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슈렉과 피오나의 모습을 가감없이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말이다. 현실은 언제나 그렇게 지속되며, 우리는 그런 현실을 계속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삶이기에 끝나지 않는 이야기란 없다. 아니, 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부분을 기억하고 또 남기며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도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인상적인 부분만 하이라이트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금 감정에 휩싸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해피 앤딩으로 끝, 하며 편해질 수 있는 것은 소설로만 족하다. 우리의 삶에는 그런식의 앤딩은 찾아오지 않으며 그렇기에 항상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끝이 난 이야기들을 붙잡고 글을 써내려갔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끝끝내 내 이야기의 완결을 짓지 못했던 것 같다. 모양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형태의, 문자적인 형태의 해피, 라는 개념을 어떻게든 내 손이 닿는 곳에 끌어내려 내가 느낄 수 있게.. 내가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글을 써내려간 것 같다.

 

지금은 글을 쓰지 않지만, 그래도 한 때는 내가 글을 썼었다. 오랜만에 내가 썼었던 글들을 읽으면서 감정에 젖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이로서 나도 내 수수한 삶에 한 가닥 기억을 다시금 새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 내 이야기가 마무리지어졌을때, 눈을 감으며 기억을 되새길 때 고개를 끄덕거리는 거지, 그래, 나도 소설가 흉내를 내보았다고, 나름 이야기들을 붙잡고 고민을 했었다고, 비록 완결을 짓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p. s. jk김동욱의 미련한 사랑를 들으며..

p. s. 2. 이 글 자체도 그다지 안쓰고 싶던 글이긴 한데.. 그래도 책이 있으니..ㅎㅎ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5-1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2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사르 2012-05-10 18:00   좋아요 0 | URL
<룬의아이들> 표지 보고 급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가연님. 룬의아이들, 윈터러의 왕팬의 한 명으로서 너무 반가워요. ^^ 저는 어정쩡하게 한 사오년 전에 이 책을 알게 되어 (안타깝게도!!) 일찍부터 열광해온 사람들 속에 끼일 수가 없었어요. 그저 조카녀석과 둘이서만 보리스 멋있다는 둥, 보리스 나오는 게임에서 보리스 입은 옷이 어떻다는 둥 이야기하는 정도였어요. 근데 가연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팬픽에서부터 소설까지..와. 멋져요.

한때는 글을 썼었다..라는 부분에서 살짝 감동이. ^^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인데요. 오에 겐자부로 라는 일본사람인데요. 이 사람도 역시 다른 사람들 소설 읽다가 혹은 번역 훑어보다가 멋진 한 문장을 발견하고선 이를 실마리로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았더라구요. 끄덕끄덕, 하면서 읽었는데 오늘 가연님 포스팅 보고 또 끄덕끄덕.

가연 2012-05-12 01:5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매우 급반갑습니다ㅎㅎ 윈터러의 광팬이시군요. 저도 광팬이라서.. 언제 룬의 아이들에 대하여 심도있는 대화를.. ㅋㅋ 보리솔렛파인지 보리스핀파인지 등등[......] 사오년ㅎㅎ 도 충분히 긴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흘러서 십년도 되고.. 그렇지요, 하하. 보리스 나오는 게임이라면 분명 테일즈위버군요. 그래픽이 좀ㅎㅎㅎㅎ 초창기 테일즈위버는 보리스만 대부분 선택해서 마치 바퀴벌레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지만..ㅋㅋ

지금 저 부분을 읽어보니깐 괜스레 저도 찡해지네요. 그래요, 분명 한때 글을 썼었지요..

이진 2012-05-10 18:32   좋아요 0 | URL
아, 가연님 글 읽으면서 내내 킥킥댔어요.
저도 가연님하고 상황이 너무 비슷한걸요.
제 최대 목표를 일단 제 나이대에서는 청소년문학상에 작품을 내는 것이고, 더 커서는 신춘문예에 글을 내는 것인데 지금부터라도 글을 써가야할텐데 안 쓰고있어요. 안쓰기보다는 저도 도저히 결말을 쓰는 걸 못 봤답니다. 가연님하고는 다르게 하도 게으른지라, 엔딩까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어요.

<룬의 아이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군요... 중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가 판타지, 특히 룬아를 정말 좋아했는데요.

가연 2012-05-12 01:46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가요, 제 경험, 이라면 경험으로는 많이 읽다보면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질 때 분명 있을테니 그때부터 글을 쓰셔도 될 듯 하네요.

ㅎㅎ 저야말로 매우 게으름의 대명사인데..ㅎㅎㅎㅎㅎ 엔딩을 저도 많이 생각 못했었답니다. 그나저나 룬의 아이들은 좋은 책이랍니다, 하하.

희선 2013-07-27 23:07   좋아요 0 | URL
글 속에 나오는 사람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셨다니 부럽군요 저도 한번 그런 일 겪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별로 안 해서... 그리고 그런 글을 써본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것만 생각해야 그런 일도 일어날 텐데 말입니다 저는 시작을 하면 끝까지 가기는 합니다 그렇게 길게 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긴 것은 아직 한번도 못 써봤습니다 한번 써보고 싶기는 한데...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 쓰다 만 소설, 다시 한번 보고 끝을 맺으면 어떨까요 읽어보고 싶네요^^ 다른 것도...

지금 소설은 쓰지 않는다 해도 글은 쓰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때 글을 썼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얼마전에 이런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글을 써서 그것을 모아서 언젠가 책 한권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그냥 저만의 책이죠 어쩌면 잠깐 하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재미로 글(이야기)을 쓰고 싶기는 해요 책 읽고 쓰는 것보다 그게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많이 안 써봤는데 이런 말을 했군요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사실 꼭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은 없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가서...


희선

가연 2013-07-31 18:04   좋아요 0 | URL
끝이 안나더군요, 몇 번 시도를 하였었지만... 결국 미완인채로 어딘가 던져두었습니다. 글의 사람이 움직여다니는 경험은 저도 그때 이후로 별로 겪지 않았었네요, 그러고보니. 희선님의 글을 모아서 책을 내면.. 저는 사인본 한 권 정도는 받을 수 있지요?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