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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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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글을 쓸까, 하다가 결국 이 책을 골라서 끄적거리게 된다.
그러니깐 리뷰의 형식을 빌린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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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본 애니메이션은 우주인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인데, 이 내용이 아주 기가 막힌다. 일단 여자주인공은 우주인이다. 이 여자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주인공이 있고, 남자주인공을 좋아하는 여자사람친구 1이 있다. 이번에는 이 여자사람친구의 소꿉친구인 남자사람친구가 있는데, 골때리는게 이 남자사람친구는 저 여자사람친구를 좋아하는거야. 소꿉친구였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버린거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 남자사람친구를 좋아하는 여자사람친구 2가 있다. 이 다섯 명에 부수적으로 여자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 커플의 일종의 사랑에 메신저 역할을 한다. 뭐, 이를테면 오각관계라는 거다. 삼각관계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오각관계라니. 뭐, 사실 지금 나의 심정으로는 저런 오각관계에 한 번 빠져봤으면,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현실에는 저런 일 없지 않을까?
그런데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의 뺨을 때릴만한 내용이지만, 그 중에도 정말 감명을 받게 만드는 장면이 있었다. 막장드라마는 계속 보면 정든다고 하던가, 하지만 그런 정드는 게 아니라 정말 가슴을 꽝 치는 것 처럼, 마음이 넘쳐흐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설명하기 전에 잠깐 배경설명을 하자면, 여자주인공은 우주인이니깐 결국에는 다시 우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주인공의 사랑을 거의 마지막까지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거지. 같이 우주로 가면 안되냐, 싶겠지만 애니메이션 설정 상으로 지구는 아직 개발 레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원래 접촉하면 안되는 곳이라던가, 어쨌든 그런 복잡한 사정으로 우주로도 못나가고 말이지. 어쨌든 그래서 계속 모른 척 하고 있던 여자주인공에게 여자사람친구 1이 도저히 못참고 결국 말해버린거야. 도대체 왜 자꾸 남자주인공의 마음을 모른 척 하냐구. 당신도 그를 사랑하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만큼 멋진 일이 어디있겠냐면서. 그렇게 한참을 화를 내는 여자사람친구 1에게 여자주인공은 머뭇거리며 언젠가 자신은 떠나야 할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에.
"어쩔 수 있어"
"좋아한다고 말하면 돼."
"내가 아무리 원해도 손에 닿지 않는 일이 바로 앞에 있는데."
이렇게 여자사람친구1이 삼연타를 날린다. 그때서야 마음을 다잡은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을 찾아가서는 마주선 채로 쳐다보다가 남자주인공의 어깨에 허물어지듯 조용히 머리를 기대며 이렇게 말하는 거야.
"우주인이라도 괜찮나요?"
"나 같은 것이라도 괜찮나요?"
"고백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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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전반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나 같은 것이라도 괜찮나요' 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이야기일 이 책은,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으로 그 독특성을 드러낸다. 한창 젊을 때,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라고 여겨질 때에는 못생긴 여자와, 혹은 못생긴 남자와 사귄다는 것은 정말 힘든일이겠지만, 이런 책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녀의 '못생김'이 책으로만 읽으면 잘 안와닿기 때문이겠지. 물론 그 '못생김'은 책 표지의 시녀의 그림으로 형상화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 못생긴 시녀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면 흥미로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나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한 번 읽으려다가 도저히 못하겠더라구. 적어도 상상만이라도 좀 예쁘고 김태희같은.. 그런 이미지를 그리게 되더라니깐. 뭐, 아무리 문맥에서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그냥 내 상상속에서는 괜스레 주인공들을 예쁘게 그려내게 되더라고 말이지. 나도 외모지상주의의 가해자인가, 라고 자문해보면 그건 또 아닌거 같다. 난 현실에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착한 마음씨가 가장 좋으리라는 것도 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애인은 안생겨요. 착한 아가씨들은 '남자'같은 사람을 또 찾더라고, 풋. 헉, 이야기가 다른데로 새어버렸지만, 어쨌든 나 자신도 한번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휘어잡을만큼 그리 외모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말야, 적어도 요런 책들에서만은 이상을 꿈꾸게 되는게 이상한 걸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렇게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으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나 같은 것이라도 괜찮나요' 를 전혀 이해를 할 수 없게 된다. 아니, 그 정도 예쁘고 (내 상상속의 이미지를 덧씌운다면) 착하면 나로선 땡큐지!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책은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별하는 것. 그런 건 외모가 어떻든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테니까. 그런데 굳이 이 파반느 위를 흐르는 사랑이야기가 특별할 수 있다면 끝끝내 말해지지 못한 자격지심, 그것때문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격지심을 느끼고 스스로가 조그만하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느껴보았을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은 이상하게 왜소하게 느껴지고, 그 왜소함을 감추기 위해서 위악을 부리기도 하고 과정과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자신의 허세가 낱낱이 보일 것 같아서, 혹시나 그 사람이 눈치 챌까, 싶으면 짜증과 화로 덮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스스로가 외모에 자신감이 없을때는 더 그런 일을 겪게 된다. 상대방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왜 나를 택했지? 그러다보면 합리화할만한 이유를 찾게 되고, 그 이유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윽고 불안에 빠지게 된다. 정말로, 정말로 나같은 사람이라도 괜찮나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마지막은 사실 정말 당황스럽게 끝난다. 작가의 장치겠지만, 마지막의 디렉터스 컷, 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따라 엔딩이 분기가 되는 거야. 읽은 사람들 중에는 작가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마지막 디렉터스 컷에서는 본편의 결말을 바로 부정해버리거든. 나는 비난하는 사람 쪽이다. 본편에서 그 많은 고생을 거쳐서 이제서야 '나라도 괜찮냐' 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고 하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다니. 물론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결말을 여기다가 끄적거리는 일은 삼가겠지만, 나로서는 비난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것을 겨우 꾹 눌러참았다. 하지만 한결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면 왜 그렇게 마무리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사실 그게 삶이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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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애니의 여주인공은 사실 예쁘고 스타일도 좋다. 남주인공은 그에 비하면 우엉에 비실비실거리는 녀석이다. 위급할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여주인공이다. 이런 관계는 마치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철이와 살짝 비슷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나같은 사람이라도 괜찮나요' 라는 질문은 여주인공이 아니라 남주인공이 말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데 사실은 외모만 연인들에게 서로 자격지심을 부여하는 조건은 아니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다면 그렇게 느낄 가능성은 더 커지겠지만, 설령 아무리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녀라도 서로에 대해서 부족함을 아예 안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남들이 볼때는 정말 괜찮아보이는데 서로는 서로에 대해서 항상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 물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서로가 서로의 장식품이 되는 그런 관계라면 또 모르겠지만 정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결국에는 부족함을 깨닫고 더 나은 관계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석하면 저 애니의 여주인공이 저렇게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고, 박민규의 소설에서의 여주인공의 외모를 외모로만 해석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부족함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금술에서는 남녀추니를 완전성의 상징으로 보던가?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몸이었다고 플라톤이 밝혔던가? 아무리 다가가도 우리는 한 몸이 될 수 없다. 아무리 포옹을 하더라도 너와 나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에게 내가 부족함을 느낀다. 내가 너라면 부족함도 넘침도 느낄 일이 없을텐데.
그런데 그런 나라도 괜찮나요?
대답은 예, 다. 애니든 소설이든..... 그리고 현실이든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