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
김산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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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스운 말이지만 남자들의 로망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년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꿈이다. 비록 그것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의 지인 중 한 사람만 하더라도 그렇다. 평생을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지인은 퇴직 후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더니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정말로 시골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겠노라 선언하며 고급 자재를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닥 좋아 보이지 않는 조립식 주택을 짓는 데 수억 원의 건축비가 들어갔던 것으로 안다. 집이 완성되고 지인들을 불러 집들이도 거하게 치렀다. 산비탈에 위치한 그의 집은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조용하고 풍광이 좋은 집이었다. 그러나 더없이 좋아하는 지인과는 다르게 그의 부인은 서울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시골 생활은 지인 혼자 꾸려가게 되었다. 부인과 자식들은 이따금 시간이 날 때마다 한두 번씩 들를 뿐이었다. 말하자면 시골 별장을 찾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족을 떠나 홀로 사는 삶이 외로울 법도 한데 지인은 그 생활을 무척이나 즐기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심심하면 강이나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도 읽고... 그러다 아주 가끔 가족이나 지인의 왁자지껄한 방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나름 즐거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남짓, 지인은 결국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복귀하고 말았다. 시골에 지었던 집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폐가가 되고 말았다.


"수년간 난로에 불을 피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아 있다는 걸요. 비울 때는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잘 버려야 합니다. 아직 식지 않은 재를 함부로 버리면 화재가 나고, 바람 부는 쪽으로 재를 털면 고스란히 다시 나에게 날아옵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려야 할 게 있을 때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뇌는 재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요."  (p.214)


김산들 님의 에세이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를 읽는 사람들 중 몇몇은 작가와 같은 시골 생활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 터를 잡은 작가의 삶은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해발 1,200미터의 고산 지대에서 보냈던 경험을 사계절로 나누어 펼쳐 놓은 그녀의 삶에서는 마치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열대 바람에 섞여 달콤한 과일 향기가 풍기는 듯도 하고, 고산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정이 현대인의 이기심에 쾅쾅 대못을 박는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인간의 허술한 면을 봐주는 법도 없다. 자연은 연약하고 서툰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법 없이, 그들의 방식 대로 담담히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방식에 적응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통이 가중될 뿐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비스타베야는 해발 1,200미터에 자리한 고산 마을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산 능선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맑은 날에는 멀리 지중해의 푸른 기운까지 시야에 스민다. 산과 바다가 서로를 향해 길게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풍경이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산과 계곡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대신 마치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고대의 터전처럼, 고요하고 기름진 고산 평야가 불쑥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오래 머물다 가는 넓은 땅, 시야가 트이는 맑은 하늘, 계절의 숨결이 천천히 스며드는 그 평야의 한 산자락에 우리는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삶의 터를 내렸다. 이 땅의 오래된 시간 속에 살며시 끼어든 것처럼."  (p.5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산들무지개'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가와 그녀 가족의 일상을 이따금 훔쳐보곤 한다. 지금은 고산 마을을 떠나 카스테욘 근교의 한 목조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꼬맹이였던 아이들도 훌쩍 자라 제법 숙녀 티가 나지만, 고산 마을에서 깃든 순수함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시시때때로 묻어 나오는 듯해서 별것도 아닌 그녀 가족의 일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수십 년 도시 생활에 찌든, 한 명의 도시내기가 보내는 '순수'에로의 열망 또는 익숙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디디는 '순수'로의 착지가 아닐까 싶다.


"계절이 내어 주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비움'과 '채움'의 태도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면, 열매와 잎을 하나씩 내려놓는 추운 계절이 찾아옵니다. 계절은 그렇게 비우고 채우며 다시 이어집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자연은 비우고 채우는 순환을 합니다. 모든 게 풍성할 것 같은 열대에서도 나무는 잎갈이를 하고 익은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에 맞추어 비축해야 할 때가 있고, 비축된 걸 다시 비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p.258)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우리는 동시에 2026년의 6월 한 달을 지우고 있다. 서로가 별것도 아닌 일로 아웅다웅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왜 나는 매사에 초연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한다. 나의 삶을 이렇게 빠르게 지워나가다 보면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애쓰던 모든 것들이 그저 헛되고 헛된 것으로 인식할 날이 곧 오고야 말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하는가. 어깨가 처지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10년 이상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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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햇살에 외출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선크림 없이 햇빛을 쪼이면 금세 화상을 입을 듯한 날씨에 사람들은 다들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듯, 휑한 거리에는 이따금 먹이를 찾는 비둘기 떼만 오가고 있습니다. 곧 7월인데 장마는 여전히 감감무소식. 덕분에 우리는 열대야 없는 쾌적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럽은 요즘 40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데 열대야도 없는 건조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진으로 도시 전체가 사라진 베네수엘라의 처참한 모습을 뉴스 영상으로 볼라치면 가슴 한 켠을 도려내는 듯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렇듯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하게 됩니다.


인터넷 포탈에서는 우리나라의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32강 진출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축구에 그닥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소식인지 살짝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나 정몽규 축구협회장에 대한 욕을 하면서도 대표팀의 32강 진출을 바라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듯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잘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한 번쯤 완전히 망해보는 경험이 필요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적당히 잘하고, 국민의 기대에 적당히 부응하다 보면 축구협회를 비롯한 우리나라 축구계의 개혁이나 발전은 점차 늦춰질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분노나 질타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재의 시스템을 굳이 뒤엎을 이유도 찾기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작금의 민주당도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처럼 정권도 잡고, 여대야소의 국회 구도 속에서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기까지 어렵게 어렵게 온 것인데,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이제 자신들의 권력다툼에만 매몰되어 상대방을 헐뜯고 조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도 어쩌면 축구협회의 전철을 밟으려고 지금부터 준비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총선에서 철저히 망하고, 한동안 여소야대의 설움을 겪다가 정권마저 내주고 난 후에야 그들의 잘못을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멀리 아파트 정문에 들어서는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등이 굽은 채로 무거워 보이는 성경책가방을 들고 오시는 걸 보니 교회에 다녀오시나 봅니다.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교회에 내는 헌금이나 절에 내는 시줏돈을 모아 종교시설이 아닌, 그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나 절에 나가는 사람이 가난한 이웃을 돌보겠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는 까닭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느님이나 부처님께서 이루어 줄 리도 없고, 목사나 스님의 배만 불리고 있을 테지요. 그 사실을 정작 돈을 내는 본인들만 모르고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걸 태워버릴 듯 쏟아지던 햇살도 잦아들고 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자야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담장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인간도, 동물도 현실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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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 - 일터를 잃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염재현 지음 / 은빛물결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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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평범한 진리가 우리들 삶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라고 믿는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이렇게 믿는 이들 중 다수는 주변의 다른 이들은 계획하지도 않았던 여러 행운들이 덤으로 마구 쏟아지는 듯한데 유독 자신은 단 하나 계획한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러한 믿음을 갖는 이들이 단지 비상식적인 몇몇 사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것인 양 포장하면서 짐짓 슬픔을 과장하고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슬픔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알고 있었고, 해고를 하더라도 최소 한 달 전에는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혹시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어쩌나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둔 9월까지 회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오래 근무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해고 통보였다.  그것도 계약 만료 하루 전에."  (p.14~p.15)


<실직, 연단, 그리고 다시 시작>을 쓴 염재현 작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은행에 근무하던 저자가 은행을 나와 계약직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말이다. 40세의 가장이었던 그가 1년 4개월이라는 긴 실직 기간을 통과하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이 책은 삶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사실 인생에서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을 잃은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고, 일각이 여삼추였을 터이다.


"잠시 줄을 서서 기다린 뒤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화면에 '잔액 부족'이라는 경고 문구가 떴다. 다시 확인해 보니 통장에 남은 돈은 만 원뿐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통장 잔액이 이렇게까지 바닥난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p.106)


나도 주변에서 갑자기 실직을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삶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실직과 같은 불행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까닭은 대개 그들의 조급함에 있다. 불행의 늪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일들을 벌인다는 점이다. 장기간 취업이 되지 않는 이들이 식당이나 카페 등 자영업에 눈을 돌리는 게 그 대표적인 일이다. 경험도 없고, 자본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낯선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곳저곳 헤매면서 돌아다닐 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 환경을 살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 우리는 먼저 다른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면서 상황을 살피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1년 4개월의 실직 기간을 끝내고 다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잠시 멈춤'의 시간이 있었던 까닭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종종 실업급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한다. 누군가는 실업급여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니 구직을 늦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실업급여를 받으며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이야기까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실직을 겪어 본 사람에게 실업급여는 '여유 자금'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시간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숨을 고르게 해주는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p.216)


낮에 점심을 먹고 아파트 인근에 있는 공원을 잠시 거닐었다.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주말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중에도 갑자기 직장을 잃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이 더러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쉽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급한 일일수록 여유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둘러 일을 처리할 게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벌써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는 여전히 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쨍한 하늘만 이어지고 있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장마도 잊은 채 마냥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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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가을도 한참이나 지났건만 아침저녁 기온은 제법 선선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등산로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먹이를 찾아 나선 청설모 한 마리가 등산로를 가로질러 빠르게 달아납니다. 걷기에도 유행이 존재하는지 얼마 전부터 나는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팔자걸음을 걷는 어느 아저씨가, 그리고 얼마 후 마른 체격의 어느 할머니가 조심스레 맨발 걷기를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할머니 한 분과 손녀인 듯 보이는 어린 학생이 서로 팔짱을 꼭 낀 채로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의 기분 좋은 선선함이 그들 모두를 산으로 모여들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나는 안과 검진을 받았습니다. 다른 데는 별 이상이 없는데 전에 비해 시력이 조금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이를 먹는 까닭이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청력이 떨어져서 다른 이의 험담이나 나쁜 말을 귀담아듣지 않게 되었으며, 시력이 떨어져서 타인의 단점을 세세하게 살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이순(耳順)'은 어쩌면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귀가 부드러워졌다'는, 즉 청력이 약해져서 타인의 귓속말(주로 험담이겠지만)을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건망증이 갈수록 늘어서 챙겨야 할 물건을 한 번에 다 가져가지 못하고 하나씩 둘씩 빼먹는 경우가 빈번해지는 바람에 갔던 걸음을 여러 번 반복하여 오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움직이는 걸 점차 기피하는 까닭에 이를 예방하고자 건망증이라는 자구책을 선물로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 나는 김산들 님의 에세이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를 읽고 있습니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작가의 일상을 나는 그녀가 만든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이따금 보아왔던 까닭에 나는 마치 이웃의 일상을 글로 만나고 있는 듯 전혀 거리감이나 이질감 없이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들무지개'라는 그녀의 유튜브 채널은 특별한 재미나 웃음을 선사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잔잔한 일상을 꽤나 아름답게 풀어놓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가의 집이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작가가 이사를 하여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비스타베야의 고산 지대에서 살았던 시기의 마지막 사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높은 이곳은 거친 자연에 맞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가 켜켜이 쌓인 땅입니다. 그 지혜는 세대를 거치며 말이 아닌 생활 습관이 되었고, 지금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잇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깊이 감동받은 지혜 중 하나가 바로 '물의 법칙'이라는 사회적 약속이었습니다. 처음 물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고 바다로 이어지는 물리적 법칙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의 법칙이란 대개 그런 의미일 테니까요. 모든 물은 흐르고 결국 바다로 간다는 단순한 원리 말입니다. 비스타베야에서 말하는 물의 법칙은 전혀 다른 뜻이었습니다. 이곳의 물의 법칙은 물이 어떻게 흐르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순서로 물을 쓰느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땅에서 솟아오른 샘물은 가장 먼저 깨끗한 상태로 사람에게 쓰입니다. 그다음, 사람에게 쓰이고 남은 물은 도랑을 따라 흘러 구유에 모여 동물의 물이 됩니다. 그리고 동물이 마시고 난 물은 다시 수조로 모여 텃밭을 적시는 관수용 물로 사용됩니다."


나의 여동생 역시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작가의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할 때마다 뉴욕에 있는 여동생을 떠올리곤 합니다. 오늘 아침 등산로에는 뻐꾸기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고, 거목이 된 참나무 숲 사이로 까치 한 마리가 멋지게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어느 할머니와 손녀가 맨발 걷기를 하며 멀리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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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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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엮어 판타지 소설로 쓴 작품은 그 수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 작품 대부분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게 끝이 나 버리는 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설 속에서 우리의 미련이나 아쉬움을 죽음 이후로 조금 더 연장하거나 확장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게 아닐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부르는 소리가 비껴간다'고 썼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칼로 무 자르듯 죽음과 함께 명확히 나뉘는 이승과 저승의 구분을 우리는 동화와 같은 판타지를 통해 슬쩍 넘나들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번복하고 싶은 간절한 꿈일 테니까 말이다.


"고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고 싶은 시절로 돌아가서 1년간 지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고인의 혼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동안, 현재의 육체는 이곳 BCD 카페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인에게 기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는 BCD 카페의 직원입니다."  (p.21)


봄비눈 작가의 소설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역시 그와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백여름은 철학과 교수이다. 학기의 마지막 강의를 마친 여름은 1년 사귄 예비 배우자와 만나 웨딩드레스를 함께 고르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여름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깨어난 곳은 BCD 카페, 저승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여름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려 보면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절을 선택하게 된다. 여름은 21살에 만났던 첫사랑 유현을 떠올렸고, 안유현과 보냈던 그 시간이 그녀의 짧았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던 첫사랑의 순간을 선택하는 여름.


"그의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딘 지 네 달, 남자 친구와 헤어졌지만 바로 연락할 순 없었다. 차갑게 밀어냈으면서 그에게 다시 손내밀기가 두려웠다. 그는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날 맞이해 줄까. 아님, 내가 그랬듯 차가운 손짓으로 날 밀어낼까. 선뜻 연락하기가 두려워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렸다. 우연히 마주치면,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p.120)


유현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여름의 두 번째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여름은 1년이라는 한시적 삶이지만 좀 더 잘해 내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게 예상하는 대로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은 D-3, D-2, D-1, D day 그 끝을 향해 나아간다. 여름의 첫 번째 삶과는 다르게 마음에도 없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유현을 선택한 여름의 간절하고 애틋한 사랑이 이어진다. 마냥 풋풋하고 아름다워야 할 여름의 첫사랑은 1년이라는 시간의 제약 탓에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이 감싼다.


"내일의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까. 내가 머문 시간은 고작 1년뿐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몸에 밴 습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바라며 핸드폰을 열었다. 9시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어쩌면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p.352)


현실의 사랑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할수록 애틋함은 배가 되고, 간절함으로 인한 몰입도는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방해하는 여러 장벽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랑을 원하는 남녀 커플의 열정도 높아지고, 두 사람의 결합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장벽인 '죽음'은 소설을 통해 종종 소환되곤 한다. 현실에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장벽마저 뛰어넘고 싶은 것이다. 그 판타지를 우리는 소설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에 우리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그렇게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그 절절한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애써 태연한 척 눈물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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