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에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어느 현장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수백 가지 공정으로 이루어지는 아파트 건축은 분야별로 하도급을 맡은 오야지가 각자의 팀을 짜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주로 설비팀의 일원으로 따라다녔다. 특정한 기술이 없는 나로서는 어떤 팀을 쫓아다니든 큰 차이는 없었지만 설비팀의 잡역부는 다른 일에 비해 일당이 조금 더 높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웠던 나로서는 육체적으로 고되다는 단점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팀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설비팀의 사람들은 마치 가족처럼 느껴졌다. 일도 함께 하고 밥도 같이 먹으러 다니니 사실 한 식구나 진배없었지만 말이다. 팀원 중에는 지금도 이따금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그분은 텁수룩한 수염과 구레나룻에 걸맞게 덩치 또한 산만 하여 먹는 것 역시 범상치 않았다. 일반인의 서너 배를 먹는 것은 물론 소화가 되지 않아 탈이 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식사 후에는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습관처럼 "아, 배불러 죽겠다." 하면서도 먹을 것을 보면 또 손이 가곤 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법정 스님의 수필 '먹어서 죽는다'가 실려 있다.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서구화되고 있는 식생활 문화를 지적하며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고기 중심으로 바뀌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설파한 글이다. 뜬금없이 이 글이 떠올랐던 이유는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요 며칠 동안의 끔찍했던 기억 때문이다. 산이고 들이고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이 다른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크게 대두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차량의 보유 대수가 한 가구에 서너 대씩 이르게 된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다들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 탓만 한다. 2040년까지 휘발유와 디젤 엔진 차량의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미세먼지 발생의 심각성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다고 하겠다. '먹어서 죽는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에 더하여 '편해서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대량학살의 공범이 되는 셈이다. 100여 미터의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한, 화석연료 차량의 운행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시행되지 않는 한 맑은 하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는 지금 '편해서 죽는'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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