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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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내와 심각하게 다툰 후 아내를 잘 아는 수녀님께 상담을 청했던 적이 있다. 조용한 곳에서 나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던 수녀님은 성당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고,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내놓으셨다. 그렇게 커피 한 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때 마침 주임 신부님이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나와 수녀님의 얼굴 표정이 어둡고 심각하게 보였던지 신부님은 무슨 일이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수녀님은 자신의 난처한 자리를 물려줄 적임자라도 만난 양 내 사정을 짧게 요약하여 빠르게 말씀드리고는 자리에 앉을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그러자 신부님은 아주 냉랭한 말투로 "답은 이미 본인이 잘 알고 있다."고 하시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자리를 뜨셨다. 그때 나는 속으로 '어쩜 저렇게 냉정한 사람이 신부를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위로의 말은 못 해줄지언정 무 자르듯 그렇게 냉정한 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 나는 그때 하셨던 신부님의 말씀을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 다만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대안을 듣게 되면서 자신의 내부에 있던 해결책과 일치하거나 비슷한 대안에 반응을 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마음속에는 이미 안테나가 달린 여러 해결책이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 내놓는 여러 가지 고민 해결책 중에서 내 안의 것과 일치하는 어떤 것에 "삐~~"하고 반응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아무리 좋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한들 그것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한 나는 시큰둥하거나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해결책을 제시하는 쪽의 지적 수준이나 경험과는 무관하게 수용하는 자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신부님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들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거야. '반드시 행복해져'라는 말." (p.275)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 신부님의 짧은 가르침을 생각했다. 2015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보노보노 공식 웹사이트 보노넷에서 모집한 고민과 답변을 토대로 집필된 책이라고 한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집필한 김신회 작가가 번역을 맡았다. 개인적으로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나로서는 내심 기대가 컸었던 게 사실이다.

 

"세상이 온통 인생 상담이나 잘 사는 법, 자기계발서로 넘쳐납니다. 그런 책이 왜 그렇게 넘쳐나게 되었느냐 하면 팔리기 때문이겠지요. 왜 그렇게 팔리느냐 하면 다들 고민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들 그렇게 고민을 갖고 있다면 나도 한번 고민에 대답해보자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팔릴지도 모르니까요." (p.308 '작가 후기' 중에서)

 

우리가 고민이 있을 때 많은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데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내부에 있는 해결책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그것에 반응하고자 하는 이유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신이 반응하는 해결책이 객관적으로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형편없는 해결책에 공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단 한 번의 삶을 사는, 삶에 있어서는 누구나가 초보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조언을 할 입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우리는 먼저 살았던 다른 누군가의 어슴푸레한 경험을 길잡이 삼아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상담을 위해 작가는 많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주인공인 보노보노를 비롯하여 너부리와 너부리 아빠, 포로리와 포로리 아빠, 울버와 린, 야옹이 형, 보노보노 아빠 등 만화의 주인공이었던 대부분의 캐릭터가 등장하여 각각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되고 싶은 걸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게 되어 괴롭다는 고민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일에서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 등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익한 인생 상담뿐만 아니라 토마토를 못 먹는 23세 여성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다양한 고민 해결책이 책에는 빼곡하다.

 

대화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각의 캐릭터가 내놓는 짤막짤막한 말마디로 이루어져 있지만 짧은 문장 속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3월의 마지막 주말,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화창한 봄날에 보노보노로부터 배우는 인생의 참맛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가족들과 함께 꽃구경을 가는 행복한 풍경이 있는가 하면 이 좋은 날에도 어두운 골방에 누워 세상 고민을 모두 떠안은 듯한 어두운 풍경도 있다는 걸 우리는 이따금 잊고 지낸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수많은 방법들을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다만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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