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에는 어느새 산수유가 피었다. 마치 노란 아지랑이와도 같은 그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한 채 슬그머니 피었다 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봄의 전령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산수유는 그 존재감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든 못 받든 그렇게 피었다 지는 꽃, 산수유가 거기 있었다. 산수유가 피는 봄이면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그 대목이 생각나곤 한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훈의 글은 미술의 '초정밀화'처럼 그 세밀하고 적확한 표현이 읽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봄은 이렇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는데 어제 아침의 등산로에는 눈이 소복이 샇여 있었다. 볼에 닿는 바람은 그닥 차갑지 않았고, 겨울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지만, 새벽에 보는 눈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오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식은 가까이 온 봄소식도, 어제 내렸던 눈 소식도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를 외쳤던 전직 대통령의 구속 소식. 자신의 욕심을 전부 내려놓는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나이인 그는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려서 사람들과 격리된 채 마치 산수유처럼 잊히려 하는지. 아무도 보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그렇게 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겠지,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