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말도 못 하게 힘들 때는 내 삶으로부터 잠시 내려 방관자처럼 또는 구경꾼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금 있는 여기에서 잠시 벗어나 아무도 없는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삶으로부터 도망쳐 회피하거나 숨고 싶다는 게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내가 견디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삶의 불안이 가라앉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내 삶으로 다시 돌아와 처음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얘기다. 이러한 갈망은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되어 학창 시절의 흔한 상상이나 꿈에서 머물다가 나이가 들어 고통의 횟수가 증가하고 느껴지는 강도가 심해질수록 강한 집착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삶으로부터 영원히 결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 결단코.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던 몇 년 전, 내가 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충분히 힘들었었고, 비록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힘들거나 아파하는 누군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교감하는 방법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었기에 서툰 글일지언정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글이라는 게 원래 많이 쓰다 보면 없던 실력도 생겨나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나는 처음으로 다시 읽어봤고, 부끄럽지만 내 글쓰기 실력은 영 진전이 없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닭살이 돋는 걸 참아가며 열심히 다시 읽어봤는데 말이다.
오전 내내 집안에서 뒹굴거리다가 점심을 먹은 후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에 나섰다. 목덜미에 와 닿는 바람이 선득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어둡고, 미세먼지 탓인지 시야마저 뿌옇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세상은 오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하고 나의 게으름은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