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기온이 빠르게 오르더니 낮에는 조금 덥다 싶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며칠 지속되던 미세먼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탁 트인 시야에 날씨마저 더할 수 없이 좋았던 탓인지 괜스레 마음만 싱숭생숭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근처 공원을 찾아 가볍게 산책을 했습니다. 공원에는 나처럼 산책을 나온 사람, 아이와 함께 봄을 즐기는 사람, 벤치에 앉아 장기를 두는 사람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벤치에 앉아 소일거리 삼아 정치 얘기를 하는 할아버지들도 보였습니다. 화이트데이를 맞아 들뜬 마음으로 검찰에 출석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더군요. 죄가 있으면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은 듯 보였습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풍경이지요. 포토라인에 서서 그가 했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한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많은 분과 이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는데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다는 말씀드립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핵실험이라도 한 번 더 했더라면 이 전 대통령의 말에 수긍을 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 탓인지 그의 말은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가오가 서지 않았죠. 그 바람에 공원을 찾은 할아버지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말을 아껴야 한다고 다짐했던 건 잘한 일인 듯합니다.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하고 일갈했던 그의 말을 타인의 음성으로 듣게 되었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검찰 조사를 받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습니다. 완연한 봄기운에 없던 사실도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어지니까 말이죠. 안타까운 소식은 '빅뱅 이론'으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생일이 같았던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탄생일인 오늘 죽음을 맞았습니다.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현대 물리학에 크게 기여했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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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6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