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지음, 최윤영 옮김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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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성장기에서 길냥이 '키라'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아들은 아파트 주변을 떠도는 길냥이 무리들과 가까워졌고 그중에서도 흰색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는 '키라'는 아들과 눈만 마주쳐도 배를 내보이며 아양을 떨곤 했다. 아내의 코치로 이제 막 줄넘기를 배우기 시작하던 때에도 '키라'는 주변을 얼쩡거리며 채 한 번도 넘지 못하고 번번이 다리에 줄이 걸리는 아들을 보면서 그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한지 '야옹 야옹' 열심히 응원을 했었다. '키라'의 응원 덕분인지 아들의 줄넘기 횟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놀이터 한편에서 줄넘기를 하는 아들을 대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겨울이면 아내와 아들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키라' 역시 지하주차장으로 따라왔다. 햇볕이 잘 드는 창턱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줄넘기를 하는 아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스르르 눈이 감기곤 했다. 아들의 성장과 함께 '키라'의 행동도 부쩍 느려지더니 언젠가부터 '키라'는 우리들 시야에서 영영 사라졌지만 나는 지금도 해를 등지고 지하주차장 창턱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던 '키라'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 곁에서 우쭐한 모습으로 줄넘기를 하던 어린 아들과 함께.

 

다케요시 유스케의 <펫숍 보이즈>를 읽는 내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길냥이 '키라'가 생각났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었던 아들과 털이 날리는 걸 질색하던 아내 때문에 '키라'를 집에 들일 수는 없었지만 아들과의 끈끈했던 우정만큼은 아내나 나나 늘 고맙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미조 지역에 위치한 유어셀프 펫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독자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쯤 있었음직한 동물과의 교감을 쉽게 떠올리지 않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동물이라는 가족을 원합니다. 함께 지내게 된 반려동물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려 애씁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동물이 정말로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함께 생활하는 펫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먹이사슬을 뛰어넘어서까지 다른 동물을 품에 안으려고 하는 습성을 지닌, 동물계에서 가장 외로운 생물입니다." (p.394)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을 읽으며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소설을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거나 대사 하나로 위로를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펫숍 보이즈>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 감동 리얼스토리로 읽힌다. 마치 우리 주변의 이야기나 미담을 책 속에 담은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펫숍이 그저 동물이 그저 하나의 물건처럼 거래될 듯한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한 가족처럼 융화되는 교감의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나쓰카와라는 사람과 마키타 씨의 아련한 사랑을 떠올렸다. 모든 감정이 생존 본능에 의한 거라 단정한다면 마키타 씨는 옛 추억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았겠지. 더구나 인류가 진보한 것도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상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충돌을 제대로 고민하며 소통을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을 미치지 않았을까." (p.241)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 미나미 가쿠토와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 구리스 고타를 비롯하여 그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가시와기 씨 및 마키타 씨, 아카이 씨, 미코 씨 등과 더불어 직원은 아니지만 펫숍을 자주 찾는 구도 씨, 꼬마 아가씨 유리, 아야메 선생님, 호프만 씨, 브라운 씨 등 다양하다. 펫숍의 직원과 손님, 펫숍의 동물들이 펼치는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반려동물 한 마리쯤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다. 동물에 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공 가쿠토,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 수의학도였던 까닭에 동물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고타, 누구보다 성실한 가시와기 씨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들 앞에 닥치는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간다.

 

펫 하면 무조건 개와 고양이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책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아메리칸 숏헤어, 사모예드, 잉꼬의 일종인 유리매커우, 도롱뇽의 일종인 일본얼룩배영원 등 습성도 생김새도 낯선 동물들이지만 이야기는 결국 우리네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취업, 사랑, 가족관계 등 인류 보편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만 인간과 동물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을 뿐.

 

"고타는 예전의 자신을 오메가 개체라고 불렀다. 분명히 말하지만 왕따를 시키는 인간은 최악이라 여겨왔다. 오메가 개체를 자주 예로 들며 "동물 세계조차도 왕따가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인간이 있는데, 웃기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것이 본능이라고 해도 우리는 동물 중에서 본능을 다스릴 줄 아는 유일한 생물이다." (P.306)

 

길냥이 '키라'를 쫓아다니던 아들은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파트 화단을 어슬렁거리며 걷다가도 아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던 길냥이 '키라'. 아들이 가슴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으로 성장한 데에는 '키라'와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이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봄볕 완연한 3월의 휴일 오후, 양지바른 곳에서 느긋이 털을 고르던 길냥이 '키라'가 문득 떠오른다. '고마웠어, 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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