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인 고문 조작의 피해자들과 무고했던 그들의 삶을 폐허로 만들었던 가해자들의 이야기가 모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을 통하여 전파를 탔다. 끔찍했다. 암울했던 군부 독재 시절 얼떨결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고통에 못 이겨 없던 범죄를 자백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공권력에 의해 통째로 망가진 그들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고문보다 더한 그때의 기억과 공포를 되씹으면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상징되는 인권유린의 현장은 이제 역사책에나 나오는 아득히 먼 일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관심에서 잠시 멀어져 있었을 뿐 죽은 역사가 결코 아니었음을 텔레비전을 보며 깨달았다. '지옥에서 온 장의사'로 불렸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과 치안본부 대공분실, 중앙정보부, 안기부,보안사에서 근무했던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가해자들. 어디 수사관들만 나쁘다고 말할 수 있으랴.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의 진술조서에 의거 둑재자들의 편에 서서 재판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들. 그들 역시 이 좁디좁은 땅덩어리 대한민국에서 두 눈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그때의 피해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의문의 죽음으로, 자살로 하나 둘 사라지는 동안 가해자들은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대법원장으로 승승장구하며 편안한 삶을 누려왔다. 당시 판사로서 1심 재판을 담당했던 여상규 의원은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는데 책임을 느끼지 못하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 하면서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평생 살다 보면 누구나 때로는 실수도 하고, 몸쓸짓도 하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의 잘못이 모두 드러나고 있는 이 마당에 발뺌을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화까지 낸다는 건 그는 이미 인간의 품격을 잃고 자신이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꼴이니 말해 뭣하랴.
생각해 보면 군부독재에 부역했던 많은 사람들이 불법과 탈법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죄가 철저히 숨겨질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북한 정권의 도움이 컸다고 하겠다. 물론 북한 정권도 남한 보수 정권의 반공주의 덕분에 추악한 권력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반공'이라는 한 단어로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부를 축재하고, 대대손손 권력을 누릴 수 있었으니 그들 또한 북한 정권에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추악한 범죄자들이 이 땅에서 떵떵거릴 수 있도록 한 일급 도우미는 북한 정권이었다. 여상규 국회의원 그를 기억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