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그의 말은 옳았다. '사람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사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법'이라고 그는 주장했었다. 오래 기억할 만큼 가치가 있는 말은 아니라는 듯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공을 향해 가볍게 던졌다. 그의 말은 커피숍의 희끄무레한 조명 속에서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러므로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 내리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아. 편파적이기 때문이지.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잖아?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을 평가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하지만 시시때때로 듣는 게 사람에 대한 평가이고 보면 신뢰할 만한 나름의 평가 기준 한두 개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의 평가는 믿지 않는다는 거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과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야박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지. 공정함이란 있을 수 없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조차 없는 듯한,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정한 사람의 평가는 그나마 믿을 만하다는 게 내 지론이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탓인지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선약이 있었던 나는 이후의 토론을 듣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저녁 모임에 나를 비롯한 다섯 명의 멤버 전원은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한다. 따로 정한 규칙은 없지만 정치적 주제는 가급적 삼가자는 게 모임 전원이 찬성하는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저녁을 함께 먹고 자리를 옮겨 술을 한 잔 하거나 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귀찮으면 같은 자리에서 오래 앉아 있다가 가볍게 헤어지곤 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바쁜 순서로 먼저 자리를 뜨고 마지막 한 명이 남겨질 때까지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모임 같지 않은 모임. 나는 그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렇다고 발언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이나 반대되는 생각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할 수 있다.

 

어제는 배우 김주혁이 세상을 떠났다. 젊다면 젊은 나이인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거나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생이 별게 아니구나' 하는 헛헛한 느낌도 들었다. '오인회'의 다음달 주제는 '죽음'이 될지도 모르겠다. 뒤돌아보면 삶은 그야말로 한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