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은 오래 계속되었다. 농사를 짓거나 내수면 어업에 종사하지 않는 나 같은 도시내기들에겐 눈에 띄는 불편이 지금 당장 몸에 달라붙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해가 떨어지는 즉시 선선해지는 날씨나,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바싹 마르는 빨래나, 그늘에 몸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더위를 떨쳐버릴 수 있는 것 등 가뭄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 아닌 혜택이 반가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불안한 것이다. 농작물 가격의 상승 등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불안 때문이 아니다. 폭풍전야의 숨 죽인 정적처럼 너무나도 길게 이어지는 건조한 날씨가 가까운 장래에 가져올 파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뉴스 말미에서 정말 기분 좋은 장면을 보았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20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한민국의 지식인 중에 저런 분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감탄과 탄복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주식시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발언이 얼마나 정직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삼성그룹 합병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신 나간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나라 증권회사의 보고서나 코멘트라는 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부실한 것인지에 대한 그의 정확한 진단과 눈치 보지 않는 소신 발언 때문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기사도 있었다. 옛 새누리당 의원들이 5대 개혁과제 미이행시 1년치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7년 5월 31일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1년치 세비를 기부형태로 국가에 반납하겠다고 서약하고 당시의 계약서에 56명의 의원들이 서명했고, 이 중 31명이 20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는데... 어처구니 없는 뉴스는 또 있다. 성주 골프장에 반입된 2기의 사드 발사대 말고 문재인 정부도 알지 못햇던 4기의 사드 발사대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념이나 정체성을 떠나 국가의 안보와 이익에 직결된 문제인데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기에 새로운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지금 내부의 적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뭄이 문제라지만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걸러지지 않는 인재 가뭄에 오랫동안 시달려 왔던 것이다. 자연적인 가뭄은 장마가 오면 해결된다지만 암덩어리처럼 부푼 인재 가뭄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 해갈을 기다리고 있다. 적폐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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