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산이 그렇지만 정상을 몇 미터 남겨둔 지점의 경사는 가파르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늘 다니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곳에서는 유난히 무거워지곤 한다. 내가 아침마다 오르는 산도 다르지 않아서 정상 부근에는 계단과 함께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매일 겪는 일인데도 그 계단을 오르는 일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호흡이 가빠지는 건 물론 마지막 몇 계단은 안전로프에 의지하여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삶의 마지막 고비를 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계단을 반쯤 올라온 지점에서 웬 할머니 한 분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 일 년 마실 맑은 공기를 오늘 하루에 다 몰아서 들이마실 것처럼 말이다. 어찌나 가쁘게 숨을 쉬던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괜찮으시냐, 여쭈었더니 손을 홰홰 내저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억지 웃음을 지으셨다.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올라가실 거면 내가 부축해드릴 테니 가시자, 했더니 할머니는 그제사 나의 부축을 거절하지 않고 천천히 마지막 남은 계단을 마저 올랐다. 정상 한 편의 경사면에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는데 할머니의 목적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발길을 멈춘 어느 묘지 앞까지 할머니를 부축하여 드리고 발길을 그곳에서 돌려 산을 내려왔다.
한낮 기온이 한여름처럼 더워진 요즘, 할머니는 더위를 피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아침 시간에 산을 오르려 했을 게다. 그러나 노인의 발걸음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법, 할머니 역시 거뜬히 올랐던 지난 날만 생각하고 집을 나섰을런지도 모른다. 마지막 몇 계단만 더 오르면 목적지인데 그곳에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찾았던 묘의 주인이 할머니의 영감님인지, 자신을 앞서 간 아드님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고비는 누구나 힘들었을 터, 산 자의 추모에는 항상 망자가 넘었을 마지막 순간이 문신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8주기이다. 그날의 순간은 이리도 선명한데 흘러간 시간이 벌써 8년이란다. 나는 벌써부터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