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모습은 매일매일이 다르다. 셀 수조차 없는 지구의 역사에서 하루쯤 서로 같은 날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봄밤은 대개 헛헛한 허기와 함께 시작된다. 배고픔과는 사뭇 다른, 방금 저녁을 먹고 돌아서도 그 순간에 이미 무언가에 대한 열망으로 한없이 배고파지는 그런 밤이면 나는 종종 아내의 잔소리를 듣곤 했다. 잠자기 직전에 먹는 주전부리가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도 물론 그럴 거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머리와 몸이 한 몸처럼 움직였던 적은 많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아내와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게 되면서부터 나는 주전부리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절대적인 의지가 필요햇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귀찮았을 뿐이다. 혼자 청승을 떨며 주전부리를 찾아 헤맨다는 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그닥 끌리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내의 눈을 피해 몰래 하던 묘미와 스릴감이 사라지자 나는 금세 시큰둥해졌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건 주전부리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의 깊은 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젯밤의 모습은 아마도 '반듯함'이 아니었나 싶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어제, 늦은 시간부터 시작된 개표방송과, 한동안 건조했던 대기를 적셔주던 봄비와, 봄꽃들이 초록의 생명력으로 전환하는 순환과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렸던 우리 주변의 모든 뒤틀림을 하룻밤의 기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반듯함의 행렬. 반듯했던 밤은 그렇게 흘러갔고 사람들은 또 다시 바쁜 일상을 맞기 위해 분주했다.

 

다시 일상을 맞은 오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침에 내린 비로 찔레꽃 향기가 은은했고, 아카시아 꽃이 조금씩 지기 시작했고, 청설모의 잰 발걸음 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19대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제자리를 찾듯 반듯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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